군 영창은 왜 공포의 대상인가…복무기한에 포함되지 않아 이중처벌 논란도

한해 평균 1만명. 1개사단 규모의 병사들이 영창에 간다. 지휘관의 결정에 따라 15일 이내에 갇히는 징계입창자들이다. 잘못한 군인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까.
“쥐꼬리 월급을 깎을 수도, 자유시간을 줄일 수도 없으니 그저 가둬두는 거죠. 효과는 커요. 영창에 가 있는 날짜가 복무기간에 포함되지 않으니 그만큼 군생활이 늘어나요. 가장 공포스러운 징벌이에요.”
보내고 안 보내고는 지휘관 맘대로
한 전방사단에서 근무하는 육군 상병 ㅈ씨의 말이다. 군대생활이 주는 혜택이 있어야 징계 차원에서 빼앗을 것도 있으리라는 얘기다. 영창은 사실상 군대에서 유일하게 ‘효과 있는’ 징계수단이다.
영창 외에 병사들에게 해당하는 징계로는 강등·휴가제한·근신 등이 있다. 하지만 강등의 경우 짬밥 수로 따지는 군대생활에서 별다른 지장이 없다. 휴가제한 역시 복무기간 동안 총 제한일수가 15일 이내고 횟수는 줄일 수 없으므로 치명적 징벌은 아니다. 근신도 마찬가지다. 정상근무를 하지 않고 징계권자가 정한 장소에서 ‘비행을 반성하게 하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 고행인 군대생활에서 커다란 어려움은 아니다. 그러면 남는 것은 영창이다. 군기를 잡기 위해 효과적인 징벌로 공인된 영창은 예로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영창은 군대 내 구금시설 가운데 미결수용시설이다. 그러나 6개월 이하로 확정판결을 받은 기결수와 미결수, 그리고 징계입창자들이 뒤섞여 지낸다. 수용자 가운데 80%가량은 징계입창자들이다. 징계를 받는 이들은 “군인으로서 군율에 위반해 군풍기를 문란하게 하거나 그 본분에 배치되는 행위를 한 자”(군인사법 56조)지만, 똑같은 일을 해도 영창에 가는 병사가 있고 포상휴가를 받는 병사가 있다. 영창에 보내고 안 보내고가 전적으로 지휘관의 재량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영창에 대한 공포심은 가중된다. 군복무 중 한번쯤은 영창과 관련해 아찔한 경험을 한 이들이 많다. 회사원 이민수(29)씨도 그 가운데 한명이다. “어느 날 내무반 보안검사가 있었다. 중대장이 내 관물대를 뒤지다 란 책을 발견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을 모아놓은 책으로 ‘우리 시대의 소설가’는 조성기씨 작품이었다. 중대장이 책을 압수하며 ‘불온서적을 소지 탐독했으므로 영창에 가야 한다’고 겁을 줬다. 책 제목에 ‘우리’도 들어가고 ‘시대’도 들어가서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 않았다. 꼼짝없이 끌려가는 줄 알았다. 그러더니 다음날 ‘내가 특별히 한번은 봐줄 테니, 근무 똑바로 하라’고 말했다.”
군 풍기문란이나 본분 배치 행위는 지휘관에 따라 해석이 다양하다. 개인적 징계 차원이라기보다는 군기 잡기의 일환으로 ‘찍히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군대에서 트집을 잡으려면 무엇이든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거나, 근무시간에 매점에서 빵을 사 먹었다거나, 쳐다보는 눈빛이 불손하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선임자로 하여금 구타를 유발하게 했다는 이유로도 영창에 간다. 앞서 현역 상병 ㅈ씨 부대에서는 “‘때린 놈’이나 ‘맞은 놈’이나 함께 영창에 집어넣는다”고 한다. 때린 사람은 때려서 잘못한 것이고, 맞은 사람은 맞을 짓을 했으니까 잘못한 것이므로. 하지만 똑같은 행위에 똑같은 처벌이 따르지는 않는다. ㅈ씨 부대에서는 지휘관이 바뀐 뒤에는 후임자에게 욕을 했다가 ‘가장 센’ 14박15일 영창에 간 선임자도 있었고, 선임자에게 대들고도 ‘용감하다’며 포상휴가를 간 병사도 있었다.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2002년 국감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영창은 모두 97개(국방부 1개, 육군 66개, 해군 12개, 공군 18개)가 있다. 실태는 천차만별이다. 군행형법상에는 미결수용시설(영창)에 관한 관련조항이 없고, 공식적 실태조사도 아직 이뤄진 일이 없는 탓이다. 당연히 징계입창자의 권리나 처우에 관한 규정이 없다. 영창별로 제창자 수칙에는 10여 문항으로 “정신무장을 갖춘다”,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진 자숙하라” 등 추상적인 선언이 열거돼 있다. 유일하게 구체적 내용으로는 “구치소장님의 검열·허가를 얻어서 책 또는 신문 등을 차입 요구할 수 있으며, 반성문을 제출할 수 있다”는 정도가 들어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영창에 다녀온 뒤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91년 국보법 위반 혐의로 9개월간 영창에 있던 권태호(34)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이 영창에 있는 줄로 여긴다. 밤마다 9시50분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 6시에 일어난다. 방의 모든 물건은 ‘각’을 잡아 나열해놓고, 학교와 집과 거리 등 날마다 똑같은 장소를 왔다갔다한다. 길을 걸을 때는 늘상 자기 얼굴을 때린다. 권씨와 같이 영창에 있던 서재호(37)씨는 “10년 전만 해도 영창에서는 구타와 기합, 얼차려, 폭언이 횡행했다. 나도 3개월째부터는 스스로 폭발하는 줄 알았다. 아주 작은 차이로 미치고 안 미치고가 갈린 셈이다”라고 말한다(상자 기사 참조).

그러나 지옥과 같은 영창의 풍경은 90년대 후반 들어 많이 달라졌다. 군대 내 구금시설을 관리하는 헌병 당국의 변화와 함께 사병들의 의식변화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영창은 영창이다. 98년께 휴가 나온 뒤 자대 복귀를 하지 않았다가 잡혀가 경남 사천의 헌병대 영창에서 4개월간 지낸 정아무개(29)씨는 “밖에서 들은 것과는 달리 구타나 기합은 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정씨를 괴롭힌 물리적 고통은 추위, 화장실 이용 불편, 정좌 자세였지만 정신적 고통이 더 컸다. 언제까지 갇혀 있어야 하는지 기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변호사 선임문제와 가족 면회, 재판 절차 등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헌병 당국이 영창제도 개선에 아무리 애를 써도, 군대문화 안에서 당하는 쪽은 힘이 약한 쪽, 계급이 낮은 쪽이다. 헌병대 내부에 문제가 있을 경우 근무자 성향에 따라 수용자들이 고스란히 보복을 당하기도 한다. “헌병대장 ‘빠따’ 1대가 헌병으로 내려오면 ‘빠따’ 10대, 철창 안으로는 ‘빠따’ 100대로 바뀐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수용자들 사이에서 죄질과 복무기간에 따른 ‘군기잡기’도 여전하다.
아무도 모르는 징계항고권
2002년 포항의 해병대 1사단 헌병대 영창에서 근무하던 헌병 둘이 징계입창자인 한 일병을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수양 명목으로 쓰는 반성문에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썼다는 이유였다. 처음에는 주먹과 경봉으로 머리를 때리고 몸을 찌르다 나중에는 “기합받는 자세가 불량하다”며 철창문을 열고 들어가 군홧발로 전신을 폭행했다. 과거에는 영창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타사건으로 넘어갔겠지만, 가해 헌병 두 사람은 구속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일을 계기로 헌병들의 사고예방 교육, 근무여건 개선, 전문 교정인력 확보 등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한 헌병대 출신자는 “철창 안팎의 차이만 있을 뿐이자 영창에서는 수감자나 감시자나 똑같이 갇혀 생활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런 까닭에 집단 히스테리가 일어나기 쉽다는 것이다.
영창에서 되풀이되는 중요한 일과 가운데 하나는 수양록과 반성문 작성이다. 이 내용은 입창 뒤 외우게 하는 수감자 신조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수감자 신조는 “군인답지 못한 행위를 하였음을 전우 앞에 진정 사죄하고…. 부모형제의 기대를 배반하였음을 깊이 명심해 수양하는 이 도장에서 과거의 과오를 전부 반성 개심한다…”는 내용이다. 쓰는 이들이나 검사하는 이들이나 형식적으로 시간을 떼우는 방법이다. 일부 군법무관 출신자들은 이러한 반성문 작성 강요가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일반병사들이 영창보다 군기교육대를 선호하는 까닭은 영창에 가면 그 기간만큼 복무기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영창징계는 사실상 이중처벌이다. 97년 병역법이 바뀔 때 영창구금 일수를 현역 복무기간에 넣지 않도록 한 배경에는, 영창이 예전처럼 힘들지 않으니 징계 효과가 없다는 정책결정권자들의 의식이 깔려 있다. 지휘관 재량에 따른 ‘자의적 구금’과 ‘이중처벌’ 문제는 영창에 관한 대표적 논란거리다.
병사들의 영창 처분은 민간의 구류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법관의 즉결심판에 따른 구류와는 형식도 내용도 다르다. 지휘관의 재량에 따르다 보니 같은 행동에 대해 같은 처분이 내려지지 않는다. 때론 형벌을 받아야 할 범죄행위가 지휘관의 재량에 따라 영창 처분으로 축소·은폐되기도 한다. 징계절차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장교와 선임 부사관 가운데 3인 이상 15인 이하로 징계위원회를 꾸릴 수 있도록 돼 있으나(군인사법 59조) 이들 역시 징계권자가 임명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징계항고권(군인사법 60조)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의 병사들이 모르고 있다. 2000년과 2001년 징계를 받은 2만2938명 가운데 징계항고권을 행사한 사병은 단 한명이었다. 지휘관이 명령한 징계를 항고한다는 것은 군대생활에서 제 무덤을 파는 짓이기 때문이다.
“지휘관 의식전환이 급선무”
지난해 전방의 한 육군 부대에서 영창 위협을 받은 병사가 부사관에게 징계항고권 운운했다가 “위계를 무시하고 잘난 척한다”며 군기교육대에 보내지기도 했다. 같은 부대에 있는 현역병 ㄱ씨는 “그 병사는 군기교육대에 다녀온 뒤로도 내내 영창 위협에 시달렸다”고 전한다. “걔가 어느날은 꼭지가 돌아 ‘하루라도 영창 보내면 죽어버리겠다, 내가 혼자 죽을 줄 아느냐’고 난리친 일이 있다. 그 뒤로 협박은 좀 잠잠해졌다. 80년대 군에 와서 말뚝박은 부사관들은 ‘요즘 영창이 옛날 내무반보다 좋다’면서 툭하면 영창에 보낸다고 협박을 한다. 위협만 한다고 군기가 잡힐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지난해 8월호에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육군 3사관학교 소속 장병 300명 대상)를 보면 병사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너, 군기교육대 갈래, 영창 갈래”라는 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넌 할 줄 아는 게 뭐야” 등 인격을 무시하는 말을 꼽았다.
과거에는 훈련소나 신병교육대에 입대한 이들은 군법교육 차원에서 영창을 견학하곤 했다. ‘군대에서 사고 치면 저렇게 된다’며 겁과 교훈을 주려는 의도에서였다. 과거와는 달리 구타·얼차려 등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복무 중인 병사들은 영창을 “암울하고 폭력적이며 신세 망치는 곳”으로 여긴다. ‘암울하고 폭력적이며 신세 망치는’ 내용만 달라졌을 뿐 병사들이 느끼는 공포감에는 큰 차이가 없다.
사병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한홍구 교수(성공회대)는 “최근 영창이나 육군교도소 등에서 눈에 띄는 가혹행위나 구타 등이 줄어들었다지만 지휘관의 의식전환이 급선무다. 법관의 판결을 거치지 않고 지휘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병사들의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유엔이나 인권단체가 말하는 자의적 구금에 해당한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인권침해인지 염두에 둬야 한다. 또한 이중처벌에 대한 체감지수가 얼마나 큰지 고려해야 한다. 이를 생각하지 않고 지휘관이나 정책결정권자들이 ‘요즘 영창 편해졌다’고 여기는 한 군대 내 징계방법은 합리적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영창이 좋아졌다면, 군대가 좋아진 딱 그만큼일 것이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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