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애국주의- 대만]
“대만인이야 중국인이냐” 양심선언을 강요당하는 현실
일본 우익 비위 맞추기 작전 상상을 초월한다
▣ 타이베이=천이중(陳宜中)/ 중앙연구원인문사회과학연구원
오늘날 동아시아를 돌아보면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중국·한국·일본·대만에서 동시에 일어나 서로를 부추기는 꼴이다. 일본부터 보자. 우익세력은 시민들의 애국심을 탓하며 일본 민족은 ‘정상적인 것’이 부족하다고 소리쳐왔다. 또 군국주의 냄새가 강하게 밴 신사참배를 지속해온 정치가나 공무원들은 온갖 수법을 동원해 역사 교과서를 왜곡함으로써 일본군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숨겨왔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중국과 한국의 강한 반발은 역사를 핑계 삼아 일본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반일 애국주의’가 필요한 일본 우익
따라서 최근 일본 정부가 독도 문제에서 보인 태도나 중국과 마찰을 빚어온 동중국해의 유전 탐사는 한국과 중국의 반일 정서를 통해 일본 내 민족부흥 운동을 강화하려는 의지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말하자면 일본 우익 정치가들에게는 한국과 중국의 ‘반일 민족주의’ ‘반일 애국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대쪽 한국, 중국한테도 상당 부분 이런 일본 우익의 협력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두 나라 정치가들에게도 ‘반일 민족주의’와 ‘반일 애국주의’는 더할 수 없이 훌륭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중국과 한국에서 드러난 반일 양상은 비록 정부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두 나라 정부가 반일 정서를 이용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그건 지금까지 정부 차원에서 국민들의 역사 화해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만은 또 어떤가. 몇년 전부터 대만 민족주의 운동이 강해지면서 ‘대만 사랑’이라는 구호가 시끄럽게 울려퍼진다. 이런 정치적 구호 아래 사람들은 서로에게 “너는 대만인이냐, 중국인이냐”를 놓고 양심선언을 강요하면서 ‘대만심(心)’과 ‘중국정(情)’ 사이에서 양심의 비중을 점검해왔다. 예컨대 누군가 자신을 ‘중국인’이라 여긴다면, 그이는 곧장 ‘대만 민족의식’과 ‘대만 사랑’이 부족한 것이 되고 만다. 마찬가지로,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거나 중국과 화해를 주장하는 이들은 모조리 대만을 사랑하지 않는 ‘중공동행인’(中共同行人)이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뤼슈롄 부총통 같은 이들은 “대만이 대중국 ‘성전’을 선포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오늘날 대만에서는 중국 대륙에서 온 ‘외성인’ 15%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본성인’이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항일 경험이 있는 외성인 가정은 중국과 일본이 충돌할 때 비교적 중국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여왔고, 본성인의 30~40%는 대만 독립운동의 확고한 지지자들이다. 대만에서 대만 독립은 반중을 의미하고, 반중은 거의 친일을 의미한다. 나머지는 ‘항일 친중’과 ‘반중 친일’이라는 두 극단 사이에서 중국과 일본의 정치 분쟁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이다.
이런 현상은 약 절반에 이르는 대만 시민들이 중국의 반일운동을 ‘나와 상관없는 일’로 여긴다는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잘 드러났다.
대만의 위안부는 모두 자원자였다?
최근 몇년 동안 집권 민진당 정부는 ‘중국 제거화’ 운동을 크게 촉진했으며 “대만인은 중국인이 아니다”라는 정치의식을 주입하는 데 국가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중·고교 역사 교과서 개정이라는 ‘정치 공정’은 큰 정치적 논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 사이에 분쟁까지 일으킨 이 역사 교과서 문제는 대만 언론의 제한된 보도로 시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사이 민진당 정부는 ‘중국 제거화’ 운동을 추진함과 동시에 일본 식민통치가 대만 현대화에 공헌했다고 찬양하며 일본 우익 매파 정치가들에게 아첨해왔다. 이런 정치 의식은 의심할 여지 없이 ‘친미’(미국 신보수파), ‘숭일’(일본 우익매파), ‘경한’(우호적인 중-한 관계 탓), ‘반중’(중국이 대만 독립을 반대해온 탓)이라는 대만 민족주의에 기여해왔다.
이런 가운데 대만 독립파 정치가들이 최근 일본 우익세력의 비위를 맞추고 나선 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만 독립을 주장해온 민진당과 그 핵심 지지자들은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충돌에서 일본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일본 우익으로부터 대만 독립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대만 독립파 정부는 이미 여러 차례 공공연히 중화민국의 댜오위다오 주권 선포를 포기하기까지 했다. 독립파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댜오위다오가 본디 일본 것”이라고 말해왔다.
“댜오위다오가 원래 일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독립파 인사들은 심지어 대만도 일본에 속하기를 기대한다. 올 4월 초, 대만 독립을 대표하는 기본교의파 정당인 ‘대만단결연맹’은 도쿄로 신사참배를 가서 마치 대만인이 최대한 빨리 ‘황민’ 신분 얻기를 희망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 그런 신사참배에 대해 대다수 대만 시민들은 찬동하지 않지만, 대만의 독립파 언론은 오히려 ‘반중 친일’ 나팔수 노릇을 자임하고 나섰다. 또 한 총통부 고문은 공개적으로 “대만의 위안부는 모두 자원자였다”고까지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에 대한 대만의 태도는 어떨까? 한국이 근년 들어 중국에 우호적이란 사실은 대만 독립파 정부를 자극하여 오히려 ‘반중 친일’을 강화했다. 비록 대만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고, 배용준과 이영애를 환영하고, 한국 무선전화기를 구입하지만, 대만 정계와 여론은 늘 한국을 경시해왔다. 최근 한국과 일본 사이의 독도 분쟁도 대만 시민들에게 아무런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만약 대만 시민들이 그런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대부분 한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이 일본처럼 대만의 민족주의 운동을 지지해왔다면 상황은 달랐겠지만.
민족주의 조작은 역사의 반역
이런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강렬한 종족주의 경향의 ‘세속 종교’를 동반한다. 이런 세속 종교는 사상의 깊이와 상관없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쉽고, 따라서 자주 정치적 도구로 전락해왔다. 그래서 이 세속 종교는 동아시아 정치가들이 공동으로 복용해온 아편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분노에 찬 눈길로 바라보지만, 사실은 서로를 매우 필요한 도구로 여겨왔다. 다른 이들의 민족주의를 이용해 자신들의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다른 이들의 애국 정서에 기대어 자신들의 애국심을 조장하는 것이 전형적인 정치조작 수법이었다.
동아시아는 식민주의, 제2차 세계대전, 냉전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에서 숱한 피를 흘렸다. 이미 유럽이 화해와 통합을 향해 가고 있는 오늘, 19세기 유럽에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수입한 동아시아는 여전히 낡은 수입품에 함몰된 채 역사적 반역을 거듭함으로써 미국이라는 새로운 주도 세력에게 이용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어찌 깊은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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