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회사 바그너(와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주도한 무장반란의 파장이 가라앉고 있다.
‘푸틴 체제 종말의 시작’이라는 평가가 쏟아졌으나, 그 ‘종말’은 한참 뒤에나 볼 공산이 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건재를 과시하고, 러시아의 전쟁 수행력에도 별다른 영향이 보이지 않는다.
푸틴은 반란 사태가 해소된 지 이틀 만인 2023년 6월26일부터 이례적으로 연일 왕성한 대외 공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특히 그는 6월28일 남부 접경지역으로 카스피해에 접한 다게스탄의 데르벤트까지 방문했다. 몰려든 주민들은 그에게 ‘셀카 공세’를 했다. 푸틴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부에서 주민들과 직접 접촉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푸틴은 7월4일 중·러가 주도하는 유라시아 국가들의 협력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해 화상연설을 하며 다자외교 무대에도 복귀했다.
프리고진의 반란이 중단기적으로 러시아에 큰 영향이 없을 것임은 무엇보다 미국의 물밑 반응에서 시사된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프리고진의 무장반란 사태 해소 뒤 세르게이 나리시킨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국장과 한 통화에서 “미국은 관여하지 않았다. 이는 러시아 내부 문제”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6월31일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민감한 문제의 통로 구실을 한 번스 국장이 이런 입장을 전한 것은, 반란 사태가 푸틴의 권력 등 러시아 지도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진정됐다는 판단을 드러냈다.
미국 관리들은 반란과 이후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의 외부 적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재료를 크렘린에 제공하지 않기를 원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린 트레이시 주러 미국대사가 “우리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는 러시아 체제 내 다툼의 일환”이라는 6월26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말을 러시아 관리들에게 전했다고 국무부도 6월30일 밝혔다.
푸틴 지지율도 큰 변화가 없다. 러시아의 반체제 언론 <메두자>는 6월30일 러시아의 독립적 여론조사 회사인 ‘레바다센터’를 인용해 푸틴의 지지율은 반란 사태 전에 82%였는데, 반란 당일 79%로 떨어졌다가 위기가 해소되자 다시 82%로 복귀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크렘린이 공유하는 내부 보고에 따르면 6월29일 현재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9~14%포인트 떨어졌다고 보도했으나, 근거는 밝히지 못했다. 러시아의 프로파간다 싱크탱크인 정치연구소(IPS)의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6월27일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80%대였는데, 그 사태 이후 90%대가 됐다”며 “사람들은 푸틴에게 ‘이 모든 혼란으로부터 우리를 단지 구하소서’라고 기도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반란 사태가 일어나자 푸틴의 권력이 약화되리라는 분석이 대다수였으나, 시간이 지나자 이번 사태가 푸틴의 장악력을 더 공고히 하리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반란이 일어난 지 이틀 만인 6월26일 <폴리티코>가 전문가 14명의 의견을 게재했는데, 그중 푸틴의 권력 누수와 체제 이완을 예측한 이는 4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별 영향이 없거나, 푸틴이 오히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장악력을 높이려 하거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 주력하리라 내다봤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러시아유라시아프로그램 국장인 유진 루머는 7월3일 <폴리티코>에 게재한 ‘프리고진 사태는 보기보다 훨씬 별것이 없다’는 기고에서 “프리고진 반란은 푸틴 체제 출범 이후 최대의 ‘스트레스 테스트’였다”며 “크렘린은 깃발을 휘날리는 성공은 아니었지만 시험을 잘 통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푸틴 정권의 몰락을 희구하는 사람들은 푸틴 체제가 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무엇이 일어났을까 생각할 수는 있다”며 “오히려 그들은 러시아의 핵무기 발사 암호를 통제하는 부대의 잔혹성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프리고진)을 보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푸틴보다 좋다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반란 사태에서 서방이 가장 관심을 보인 측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영향이다. 전쟁에서 큰 몫을 했던 막강한 전투력의 바그너 부대가 우크라이나의 반격 공세가 시작된 상황에서 러시아 정부에 반기를 든 사태는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서 전력이나 사기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란이 하루 만에 해소되자, 그 영향이 별로 없을 것으로 서방의 군사 소식통들도 인정했다. 서방 언론이 우크라이나 전황의 취재원으로 삼는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반란이 해소되자, 바그너 부대가 최대 격전지이던 바흐무트 함락 작전 뒤 전선에서 이미 빠진 상태여서, 러시아군 전력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바그너 부대원들은 벨라루스로 가거나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하기로 했다. 유진 루머는 “바그너 부대가 국방부로 흡수된다면, 러시아군의 수적 전력에 거의 영향이 없거나 부정적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벨라루스로 가는 바그너 부대원들이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제2의 전선을 열 것이라는 우려도 우크라이나에서는 나온다.
시작한 지 한 달이 되는 우크라이나의 반격 공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기대했던 것보다는 느릴 것”이라고 말하듯 큰 진전은 아직 없다. 서방과 우크라이나에서는 ‘반격 공세가 느리지만 착실한 진전을 한다’며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러시아가 구축한 참호, 대전차 장애물 등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탐색 중이고, 이번 반격 공세의 주전력인 서방에서 훈련받은 병력이 아직 대기 중이라고 지적한다. 즉, 취약한 러시아 방어선이 드러나면 대기 중인 주전력을 투입해 본격적인 반격 공세를 펼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이런 전략이 통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통상적인 전쟁 교범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의 반격 공세는 전쟁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즉, 공세를 펼치는 쪽은 방어하는 쪽보다 3 대 1의 전력 우위를 보여야 한다.
인구나 무기, 병력에서 우세한 러시아는 2022년 하반기부터 현 전선의 굳히기에 들어갔다. 러시아는 1천㎞ 전선 전역에 참호, ‘용의 이빨’(용아)로 불리는 대전차 장애물 등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곳에 따라서는 3차 방어선까지 설정했다. 전력에서 우세하지 않은 우크라이나가 반격 공세에 성공할지 의문이 제기된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가 반격 공세로 러시아로부터 점령지를 탈환할 가능성이 작아, 그 성공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찌감치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6월10일 점령지 탈환도 중요하나 러시아군에 피해를 주는 게 반격 공세의 성과를 좌우할 것으로 서방 당국은 본다고 보도했다. 서방은 이번 반격을 우크라이나군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전술로 싸우는 현대적 군으로 재탄생시키려는 계획의 증거로 본다고 신문은 전했다. 서방의 무기와 전술로 운용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에 피해를 주고 러시아군의 공격을 충분히 막아내는 것을 보여준다면, 향후 우크라이나 안보와 러시아와의 협상을 담보할 수 있다는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 등 나토 국가들은 탱크·대포·전투기·보병 사이의 항시적 소통 시스템이 작동하는 복잡한 전투 형태인 통합무기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3만 명의 우크라이나 병사를 훈련해 이번 반격 공세에 투입했다. 즉, 이번 반격 공세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내용적으로 나토의 일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일 수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도 6월30일 사설에서 “전략적 인내가 조 바이든 행정부와 유럽 동맹국들에 가장 현명한 길”이라며 “향후 몇 달 동안의 전투 결과가 어떤 것일지라도, 그 이익은 러시아로부터의 지속적인 위협에 맞서 완전한 서방국가가 되려는 열망을 가진 우크라이나를 무장하고 훈련하고 방어하는 데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에 있다”고 결론 냈다. 전쟁연구소는 우크라이나의 점령지 탈환이 더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것은 우크라이나군이 병력을 보존하려는 ‘비대칭적 소모 비율’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즉, 방어하는 러시아군의 병력 손실에 초점을 맞춘다는 얘기다.
차제에 다른 식의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의 책 <예정된 전쟁>으로 유명한 미국의 보수적 전략가인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학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6월26일 <워싱턴포스트>에 실은 ‘키이우는 이 순간을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착이 불가피하다’는 기고에서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공격군은 매주 50제곱마일(약 130㎢)에 못 미치게 회복했다”며 “우크라이나가 앞으로 몇 주 동안 지금보다 더 성공적이지 못하면, 러시아가 점령한 모든 영토를 회복하는 데 16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하며 어떤 형태로든 전투 중단을 위한 협상을 주문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이번 여름을 지나면서 수렁에 빠진다면, 우리는 사태를 결정할 이 전쟁의 정치적 측면을 기대해야 한다”며 어떤 형태의 정전이 이뤄져도 양쪽은 자신들의 승리라고 선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몇 년간 전쟁이 중단되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는 사회와 군사력을 재건할 기회를 가질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가 국가를 재건하는 데 성공적일 수 있다면, 21세기의 서독이나 한국으로 출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 상황이라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동결된 전쟁’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는 러시아가 2022년 하반기부터 설정한 이번 전쟁의 목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동결화가 어른거리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정의길 <한겨레>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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