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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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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 넘어>, 홍콩 민주화에도 ‘빛’ 됐으면

2022년 5월 출간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역본
홍콩 저항운동도 광주항쟁처럼 체계적 기록 출간할 수 있기를
등록 2022-10-07 17:48 수정 2022-10-08 00:21

최근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19년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굴된 신원 미상(무연고자) 유골 262구 중 1구가 광주시에 등록된 5·18 행방불명자(행불자)의 가족 유전자(DNA)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다른 2구도 행불자 가족 유전자와 일치할 가능성이 커서 정밀조사를 하고 있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 쿠데타 세력이 광주 시민을 학살한 뒤 암매장했다는 주장이 다시 한번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앞서 2022년 5월 영국 버소출판사는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이재의·전용호 지음, 1985년 초판 출간)의 영역본을 출간했다. 홍콩의 저널리스트 출신 화가 퐁소(71·方蘇)가 이 책을 읽고 홍콩 민주화의 염원을 담은 서평을 <한겨레21>에 보내왔다.
퐁소는 2021년까지 고향 홍콩에서 시사월간지 편집장을 하는 등 반평생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나이 쉰을 넘긴 2000년대부터는 아티스트로 변신해 스케치·수묵화·목판화 등으로 홍콩 민주화운동을 기록했고, 두 권의 작품집을 펴냈다. 그의 그림은 홍콩·한국·영국·미국 등지에서 전시됐다. <한겨레21>은 2021년 2월 퐁소와의 전자우편 인터뷰 ‘화가 퐁소 “내 붓을 움직인 건 분노”’(제1350호) 기사에서 퐁소의 삶과 작품, 홍콩 민주화운동의 단면을 전한 바 있다. _편집자

홍콩에서 벌어진 2014년 ‘우산 운동’과 2019~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를 현장에서 목격했던 나로서는 이 두 저항운동이 역사적인 기록물로 반드시 자세하게 기록돼야 한다고 확신한다. 나는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른다. 사실 2019~2020년 저항운동 이후 홍콩에서 자행되는 극심한 정치적 탄압은 더는 어떤 형태의 저항도 지속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 운동을 있는 그대로 진지하게 기록하기조차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악화한 상황 때문에 많은 사람이 박해를 피해 이미 홍콩에서 탈출했고, 더 많은 사람이 이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와 관련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근의 역사적인 기록물 사례는 1980년 5월 한국의 광주항쟁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항쟁이 일어나고 몇 년이 지나지 않은 1985년 발간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하 <넘어 넘어>)가 바로 그 책이다. 1990년대 후반 나는 이 책의 초고를 쓴 필자인 이재의 기자를 만났다. 그때 나는 억압적인 정부 아래 그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의 개정판이 (광주항쟁: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라는 제목으로 2022년 영어로 번역돼 출간됐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1980년 항쟁 이후 42년이 흘렀고, <넘어 넘어> 초판이 한국에서 나온 지 37년이 지났다. 영역본이 출간되기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나는 이 책의 부록인 ‘개정판 출판: 항쟁 기록의 역사’부터 읽었다. 14쪽 분량의 부록은 1985년 이 책이 어떻게 출간돼 대중에 알려졌는지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격동의 여행” 의미를 깨닫다

책에 수록된 이 부록과 간행위원회의 소개로 나는 초판과 개정판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훨씬 더 잘 알게 됐다. 그것은 “격동의 여행”이었다. 이 표현은 책의 편집팀이 그 과정을 요약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다. 개정판 출간은 2015년(광주항쟁 35주년) 이전에 계획했는데, 그 이유는 간행위원회가 “더 이상 침묵한 채 역사의 진실이 왜곡되고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언급한 “격동의 여행”이라는 의미를 개정판을 읽고 비로소 깨달았다. 그전까지 나는 광주항쟁이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자 한국과 전세계에서 이행기의 정의로운 행위로 인정됐다는 정도로 단순하게 알고 있었다.

이 책의 초판과 개정판은 1980년 항쟁의 체계적인 기록이다. 첫째 날(5월18일)부터 마지막 날(5월27일)까지 항쟁의 자세한 상황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열흘간의 사태 진행 일지는 부록 B에 수록됐다. 또 광주항쟁이 일어난 배경에 대한 정보는 첫째 장인 ‘10월(1979년)부터 5월(1980년)까지’에 나와 있다. 그 뒤를 이은 내용은 마지막 두 장인 ‘남겨진 이야기’와 ‘미완의 과제들’에 기록됐다. 이 책은 한국과 전세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 유용한 자료다.

2014년과 2019~2020년 두 차례의 저항운동 기간 홍콩에서 내가 목격한 상황으로 돌아가서, 나는 역사적 진실이 왜곡되고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며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을 전하려 한다. 두 항쟁은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역사적 이정표다. 나는 두 저항운동을 기록하기 위해 현장에서 상황을 스케치했고 그것을 (우산 스케치)(2014), (저항하는 도시)(2020) 두 권의 작품집으로 출간했다. 그러나 내 출판물들은 홍콩 민주화운동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아니다. 더 진지하고 정교한 기록물 작업이 필요하며, 그 작업이 더는 지체되지 않고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홍콩의 정치 탄압 배후에 있는 정권이 모든 담론을 독점하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려 한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다. 나는 홍콩에서도 누구든 홍콩의 저항운동을 위해 <광주항쟁>처럼 체계적인 기록을 편찬해 출간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홍콩=퐁소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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