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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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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붕괴 2시간 전에 대피 경보 나왔다”

SK건설 참여 라오스 댐 붕괴 피해 현장에서 제기되는 의문들
등록 2018-08-07 16:47 수정 2020-05-03 04:29
라오스 참파사크주 팍송의 중등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는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라오스 참파사크주 팍송의 중등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는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해가 지고 사방이 깜깜해진 7월23일 저녁이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큰 소리가 나더니 마당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10분이 지나자 물이 목까지 차올랐고, 1시간 뒤에는 5~8m 높이의 지붕이 잠겼다. 마당에 물이 찰 때 곧바로 산비탈로 몸을 피한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살아남았다. 흩어진 가족들을 챙겨 대피하려던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밀려든 엄청난 물에 휩쓸렸다. 나무를 붙잡고 살아남았지만 가족을 잃었다.”

‘댐 무너진다’ 정보 누락돼 대피 못했나

지난 7월27일과 28일 이틀간 만난 라오스 남부 아타푸주 사남사이군 홍수 피해 생존자들의 말과 사고 직후 외신이 현장 취재한 생존자들의 증언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사고 당시 상황을 종합한 것이다. 목격담은 이어진다. “해마다 우기에 경험하는 세피안강 범람이라 생각하고 대피하지 않은 많은 사람은 그대로 물살에 휩쓸려 실종됐다. 살아남은 이들은 사고 나고 이틀이 지난 7월25일 임시 대피소에 도착해서야 홍수의 원인이 댐 붕괴 사고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생존자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또 다른 증언도 있다. 대피 경보가 댐 붕괴 1~2시간 전에야 전해졌다는 점이다. “대피하라”는 소식은 이웃들의 말과 마을 스피커로 전달됐다. 대피 경보를 전혀 듣지 못했다는 증언도 많다. 무엇보다 “댐이 무너질 수 있다”는 핵심 정보가 빠져 있었다. 수많은 주민이 대피하지 못하고 실종된 이유다.

사남사이 주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당한 재앙의 원인은 7월23일 오후 무너져내린 SK건설이 공사에 참여한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 D 보조댐’ 이다. 이 댐은 2013년 건설을 시작해 막바지 공사를 벌이던 총 길이 770m, 높이 25m의 ‘사력댐’으로 알려져 있다. 사력댐이란 점토, 자갈과 모래로 다진 제방 위에 돌을 쌓아 만든 댐이다.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에는 2개의 본댐과 본댐의 급작스러운 방류로 인한 수위 변화를 조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5개의 보조댐이 있다. D 보조댐은 5개의 보조댐 중 세피안강 지류에 가장 가깝다.

“사력댐이라고? 말도 안 된다. 아무리 보조댐이라도 콘크리트로 만들었을 거다.” 라오스 남부 경제·교통의 중심지 팍세에 거주하는 베트남 도로건설업자 잭 리의 말이다. 그가 사고 댐이 콘크리트 중력댐이었을 거라고 생각한 까닭은 세피안강이 낙차가 크고 유량이 많아서다. 매년 우기 때마다 어김없이 범람한 강이기도 하다.

“사력댐 맞다. 현장 사람들이나 나같이 자주 SK건설 현장을 오가는 사람들은 댐 아랫부분 토양이 수압에 쓸려가면서 내려앉은 것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라오스 중고 중장비 업체 관계자는 잭 리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SK건설의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 건설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 기자에게 신원이 공개되는 것을 꺼렸지만, 현장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줬다.

“콘크리트 중력댐이었어야 한다”

두 사람의 짧은 대화는 현지에서 댐 건설 공사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강 하류 주민들은 누가, 어떻게 댐 건설 공사를 하는지 알지 못했다. 7월28일 사남사이 중등학교 임시대피소에서 만난 생존자 봉삭다(39)는 “댐을 짓는 큰 공사가 있는 건 알았지만 어떤 회사가 어떻게 하는지는 몰랐다”고 말한다. ‘SK건설’이란 회사 이름도 이날 기자와 통역한테서 처음 들었단다. 그는 “타이와 한국 사람들이 나서서 우리를 많이 도와준” 이유가, 타이 라차부리전력-한국 SK건설-라오스 국영기업 합작 사업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봉삭다가 아내, 두 아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던 곳은 사남사이 지구 힌랏 마을이다. 세피안강 하류와 해발 1000~ 1300m의 볼라벤 고원을 끼고 있는 ‘배산임수’형 농촌 마을이다. 7월23일 사고 이후, 이 마을 주민 800여 명 중 3분의 2 정도가 실종됐다.

힌랏 마을 대표로 생존자와 실종자 수를 파악하고 있는 그는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 우리 마을이다. 모든 집이 파괴됐고, 물이 빠진 지금은 진흙만 있다. 어제 아이 하나가 구조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흘째 실종 상태인 딸 다완(11)과 아들 판닌(6), 아내 폴라(33)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7월23일 밤 마당에 물이 차는 것을 보고 그는 가족들을 태우기 위해 가지고 있던 보트를 준비했다. 그러나 삽시간에 들어찬 강한 물살에 보트가 부서졌고, 그는 물에 빠져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나무를 붙잡았다. 아내와 두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3살짜리 아이를 구했다.

“헤엄쳐 가서 아이를 구할 때 내 아이를 구한다는 마음이었다. 아이와 함께 나무 위에서 하룻밤, 하룻낮을 버텼다. 구조보트가 와서 구조됐고, 그 뒤 20여 명의 사람들과 헬리콥터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 그는 사고 이틀 후 대피소에서 급작스러운 홍수의 원인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대피할지 몰랐다. 홍수 1~2시간 전에 대피 방송을 들었지만, 댐이 무너진 줄은 몰랐다”고 했다.

“건설 사업에 참여한 회사들이 이런 재앙을 만들었기 때문에 나와 마을 사람들이 가족과 집, 재산을 모두 잃었다. 사람 목숨을 잃은 것이 가장 큰 피해고, 인명 피해는 복구가 안 되는 거다. 사고에 책임 있는 회사들이 최대한 빨리 사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봉삭다가 “한국 언론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생존자들은 SK건설이 지난 7월26일 피해 보상을 약속한 사실도 몰랐다. 사고 발생 6일째였던 7월28일까지 SK건설이 대피소를 찾아와 생존자들에게 공식 사과를 한 적도, 구조와 보상을 책임지겠다고 한 적도 없다 했다.

누가 최악의 재앙을 초래했나

라오스 역사상 최악의 재난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구체적인 인명 피해 규모도 드러나지 않았다. 유엔이 7월28일 오전 발표한 상황 보고서를 보면, 이번 홍수로 주민 1만1034명이 피해를 보았다. 또 대피소에 등록한 생존자는 3060명, 실종자는 131명, 확인된 사망자는 19명이다. 사망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사남사이 지구 인구조사 담당 공무원 분수(26)는 사고 발생 6일째인 7월28일 오후부터 생존자 파악 업무를 시작했다. ‘세피안-세남노이 발전소 때문에 피해를 본 가구 목록’을 들고 다니며, 마을 세대주와 세대원 생존 여부를 확인한다. 사남사이 지구 40개의 큰 마을 중 힌랏, 타셍찬, 마이, 사몽, 타힌, 야이태 마을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 모두 해발고도 380m 이하에 자리한 강 하류 마을이다. 분수는 “아직 혼란스럽다. 모든 일이 갑자기 일어났다”며 “주민에게 들은 정보로는 댐의 수문을 너무 늦게 열어서 홍수로 이어졌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사고 수습 뒤 이어질 원인 규명 작업에 눈과 귀를 모아야 하는 이유다.

사남사이(라오스)=글·사진 이슬기 자유기고가 skidolm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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