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도 부자만큼 자유롭다. 부자에겐 마차를 타고 다리 위를 지나갈 자유가 있다. 가난한 이들은 그 다리 아래서 굶주릴 자유가 있다.”(아나톨 프랑스)
서기 1963년 1월1일은 화요일이었다. 그해 비틀스는 첫 앨범 를 내놨고, 데이비드 린 감독은 로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케냐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나이지리아가 공화국을 선포하는 등 아프리카 대륙이 탈식민의 열정으로 달떴던 그해, 소련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보스토크 6호’에 올라, 우주로 간 사상 첫 여성이 됐다.
영국 축구 프리미어리그 명문팀 첼시의 감독 조제 모리뉴와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이 그해 태어났다.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와 배우 브래드 피트, 가수 휘트니 휴스턴도 1963년생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가수 에디트 피아프와 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 존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그해 세상을 등졌다. 그리고 1963년 1월14일 미 앨라배마 주지사에 취임한 조지 월러스는 “오늘도 인종분리, 내일도 인종분리, 영원히 인종분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때였다.
그해 8월28일의 일이다. 막바지 더위로 달궈진 워싱턴 중심가, 에이브러햄 링컨 기념관 아래쪽 워싱턴몰이 사람으로 산과 바다를 이뤘다. 줄잡아 25만 명이 이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미 전역에서 몰려들었다. 역사는 이날의 행사를, 미국에서 인종분리 정책이 폐지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참정권이 확대되는 기폭제가 됐다고 기록한다.
‘워싱턴 행진’이라 불린 이날 행사에서 인권·평화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저 유명한 ‘내겐 꿈이 있습니다’란 연설을 남겼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사는 꿈…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과 노예주의 후손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형제애를 나누는 날이 오는 꿈”을 말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해방령을 내린 것은 킹 목사의 연설보다 꼭 100년 앞선 1863년의 일이다.
지난 8월28일 오후 워싱턴몰에서, 킹 목사의 연설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크게 열렸다. 이날 행사의 기념사에 나선 사상 첫 ‘재선 흑인 대통령’은 지난 반세기가 몰고 온 ‘변화’를 온몸으로 웅변하는 듯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그들의 행진으로 기회와 교육의 문이 열렸고, 그들의 딸과 아들이 누군가의 옷을 세탁하거나 구두를 닦는 일 대신 자신을 위한 삶을 꿈꿀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행진 50주년, 미국은 킹 목사의 ‘꿈’에 얼마나 다가서 있을까? 일간지 는 8월29일치에서 윌리엄 대러티 듀크대학 교수(공공정책·경제학)의 말을 따 “워싱턴 행진 이후에도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상대적 지위는, 특히 경제적 측면을 놓고 볼 때 크게 바뀌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빈곤율이 큰 폭으로 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인종 간 빈곤율 격차는 1963년 당시와 비슷한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는 게다.
백인은 1달러 벌고, 흑인은 55센트 벌고대러티 교수의 설명을 종합하면, 1963년을 기준으로 백인 가정이 1달러를 벌 때 흑인 가정은 55센트를 벌었단다. 2011년을 기준으로 이 수치는 1달러 대 66센트로 바뀌어 있다. 1959년 미 흑인 인구의 빈곤율은 55.1%로, 백인 빈곤율의 3배 이상이나 됐다. 1960년대 민권운동에 힘입어 흑인 인구의 빈곤율은 1972년 32.2%까지 급격히 떨어졌지만, 이후엔 하락폭이 크게 둔화됐다. 미 통계청(CB)의 자료를 보면, 2011년 흑인 인구의 빈곤율은 27.6%에 이른다. 같은 시기 백인 인구의 빈곤율은 9.8%를 기록했다.
고용 측면은 어떨까? 1963~2012년 흑인 인구의 평균 실업률은 11.6%, 같은 기간 백인 인구의 평균 실업률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미 노동통계국(BLS)의 자료를 보면, 2012년 현재 흑인 대졸 이상 학력자의 평균 실업률은 12.1%에 이른다. 반면 백인 고졸 미만 학력자의 실업률은 이보다 낮은 11.4%를 기록했다. 는 데바 페이저 프린스턴대학 교수(사회학)의 논문 내용을 따 “전과가 없는 흑인 구직자와 전과가 있는 백인 구직자의 취업 가능성이 엇비슷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미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인종 문제에서만 찾는다면, 킹 목사의 ‘꿈’을 절반만 받아안은 꼴이다. 워싱턴 행진 당시 미국 경제는 전례 없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부터 1979년까지, 거의 모든 직종에 걸쳐 미국 노동자의 임금수준이 엇비슷한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1979~2007년엔 직종·직책 간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이 시기 임금 상승분의 63%가 소득수준 상위 10%에 몰렸단다. 한 가지 지표를 더 살펴보자.
진보적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EPI)가 8월26일 내놓은 ‘존엄을 갖고 일하기 위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1963년 미국의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1.15달러였다. 이를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오늘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8.37달러란다. 당시 행진 참가자들은 최저임금을 2달러까지 85센트 인상해달라고 요구했다. 오늘의 돈으로 환산하면 8.8달러에 이른다. 각 주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2013년 미국의 평균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다. 반세기 동안, 1달러 이상 되레 줄어든 게다.
미국의 최저임금은 1968년 현재 화폐가치로 9.44달러를 기록하며 정점을 찍은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EPI는 보고서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높아진 생산성을 감안해 최저임금이 꾸준히 인상됐다면, 2012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16.54달러까지 인상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최저임금을 올리면 실업률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현실과 다르다는 게 EPI 쪽의 지적이다. 실제 1963년 당시 미국의 평균 실업률은 3.5%였다. 최저임금이 줄어든 2013년 8월 미국의 평균 실업률은 7.4%를 웃돌고 있다.
“2000년 이후 미국의 임금상승률은 급격히 둔화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엔 삭감되기까지 했다. 이에 따라 소득수준 하위 60%에 해당하는 노동인구는 13년 전에 견줘 실질소득이 되레 줄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버클리 교정 교수(경제학)는 8월26일 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2006년 전체의 12.3%였던 빈곤 인구가, 경기침체기를 겪으면서 2013년 14%까지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2013년 7월 말을 기준으로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미국인은 무려 3500만 명에 이른단다.
월마트 집안 자산 규모=소득 하위 40%의 자산흥미로운 것은, 2000년 이후 13년 동안 미국 노동자의 생산성은 25%가량 높아졌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노동자 60%의 소득이 줄었다면, 생상성 향상의 ‘과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라이시 교수는 ‘거대 기업과 소득 최상위층’을 지목했다. 그는 대형 유통업체와 패스트푸드업체의 대명사 격인 월마트와 맥도널드를 사례 삼아 이렇게 설명했다.
“월마트 노동자들의 평균 시급은 8.81달러에 그친다. 맥도널드 노동자 역시 시간당 평균 8~10달러를 받는다. 월마트 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30살이 넘지만, 3명 가운데 1명은 주당 노동시간이 28시간을 넘지 않는다. 의료보험 등 여타 혜택도 전혀 없다. 맥도널드 노동자의 3분의 2는 여성인데, 이들의 평균 나이는 32살이다. 맞벌이 부부이거나 홑벌이 가장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 위축은 패스트푸드 업계에는 되레 ‘기회’였다. 씀씀이를 줄이면서 ‘값싼 외식’의 수요가 늘어난 게다. 돈 톰슨 맥도널드 회장은 지난해 상여금으로만 1380만달러를 챙겼다. 타코벨·KFC·피자헛 등 체인점을 운영하는 ‘얌브랜드’의 데이비드 노백 회장 역시 1130만달러의 상여금을 챙겼다. 이 업체들의 주주도 15%에 이르는 넉넉한 배당금을 받았단다.
월마트 역시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월마트의 매출은 전년 대비 5% 상승한 4661억달러를 기록했다. 이 업체 마이클 듀크 회장이 지난해 챙긴 상여금만도 2070만달러에 이른다. 2011년에 견줘 260만달러나 많은 액수다. 이 업체의 지난해 주식 배당률은 10.6%였다. 월마트 창업자 집안이자 최대주주인 월턴 가문의 자산 규모는 미국 소득수준 하위 40% 전체의 자산을 합한 규모를 넘어선단다.
킹 목사는 1929년 1월15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살아 있었다면 올해 84살이 됐을 킹 목사는 ‘행진 50주년’을 맞은 미국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졌을까? 꼭 50년 전, 워싱턴몰을 가득 메웠던 이들이 내건 으뜸 구호는 ‘일자리와 자유’였다. 행사의 공식 명칭 역시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이었다. 인종차별 철폐의 염원을 담은 ‘자유’보다, ‘일자리’를 앞세운 데는 이유가 있다.
자유보다 일자리를 앞세운 이유킹 목사는 1968년 6월 두 번째 ‘워싱턴 행진’을 준비했다. 바로 ‘가난한 이들의 행진’ 캠페인이다. 그해 4월4일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제임스 얼 레이의 흉탄에 맞아 스러지지 않았다면, 킹 목사의 ‘꿈’은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기억되고 있을 터다. 숨지기 불과 3주 전 멤피스에서 한 대중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의 투쟁은, 진정한 평등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곧, 경제적 평등을 뜻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흑인과 백인이 한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불평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인종차별 없이 식당에서 그저 밥이나 먹을 수 있게 된다고 달라질 게 무언가? 우리에게 여전히 밥값이 없다면 말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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