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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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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식이 상팔자?

등록 2001-07-18 00:00 수정 2020-05-02 04:22

책으로 보는 세계/ <차일드 프리 존>

결혼은 ‘선택사항’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결혼한 부부가 자녀를 갖고 부모가 되는 건 여전히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진다. “슬하에 몇남몇녀”라는 설명이 없는 행복한 가정을 보았는가. 굳이 종족보존이라는 거창한 명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불임도 아닌 부부가 아예 자녀갖기를 원치 않는다면 사회적 일탈의 한 범주에 속할 것이다. 나아가 부부간의 사랑까지 의심받을 일이다. 2000년 시드니에서 출판된 <차일드 프리 존>(Child-Free Zone)은 이러한 사회적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일드 프리 존>은 ‘자녀 없는 가정’을 의미한다. 자녀를 가지고 부모가 되는 건 결혼생활의 여러 가지 선택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저자인 수잔 무어와 데이비드 무어 역시 ‘자녀 없는 가정’을 실천하고 있는 부부다. 저자들은 스스로 ‘무자식’(無子息)을 선택한 80명의 삶을 통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없는 가정은 무조건 삭막하고 불행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려고 시도한다. 오히려 부모로서의 책임에서 해방됨으로써 더욱 다채롭고 자유스런 삶이 가능하다 걸 보여주고자 한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는 뭘까? 자녀양육의 육체적인 고단함을 피하려는 수동적인 이유에서부터 자아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선택까지, 한마디로 다양하다. 나아가 환경 및 사회문제의 원인 중 하나인 인구증가를 억제하기 위해서라는 자못 거창한 이유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개인이 스스로의 삶에 주체적으로 부여한 가치가 부모라는 역할에 부여된 사회적 가치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녀 역시 타인일 뿐이다. 어차피 타인일 수밖에 없는 존재에 대해 일방적인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관습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일견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보이지만, <차일드 프리 존>은 자녀가 없기 때문에 자녀를 둔 부모가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인 무어 부부 역시 자녀를 갖기엔 너무 바쁘고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탭댄스, 사교활동, 태권도, 밴드활동, 헬스 등등 다양하고 자유로운 삶은 자녀에 매여 사는 부모들로선 엄두도 못 낼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자녀를 둔 부모라는 이름의 주류집단으로부터 상당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토로한다.

이 책은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자조섞인 합리화라는 혹평도 받지만, 자녀 없는 가정을 선택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가장 강력한 금기를 깼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받고 있다. ‘부모’란 누구나가 거쳐야 하는 과정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선택 중 하나일 뿐이며 그것을 거부하는 선택 역시 일탈이 아니라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전개되고 있다. 이는 전체 가임연령 여성 중 25%가 출산을 원치 않는다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시드니=정동철 통신원 djeo8085@mail.usyd.edu.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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