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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와 악어새의 갈등

공생 관계 미국-파키스탄의 동상이몽과 상호불신…“빈라덴 은신처 제공” “허락 없이 군사작전 펼쳤다”
등록 2011-05-11 16:12 수정 2020-05-03 04:26

‘불신의 공생.’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다. 파키스탄이 알카에다의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을 그동안 숨겨줬는지 아닌지를 두고 두 나라 사이에 공방이 오갔다. 파키스탄은 부인하며 미국의 독단적 군사작전을 비난하고, 미국은 확실한 해명을 요구했다. 논란 속에 두 나라의 복잡한 관계가 얽혀 있다.

아프간전 병참로와 ‘돈줄’의 상호 의존

의심은 살 만하다. 파키스탄이 빈라덴의 은신처를 모른다고 주장해왔지만, 그는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기껏 50km 떨어진 아보타바드 시내의 은신처에서 사살됐다. 파키스탄 군사학교에서 1.6km 떨어진 곳이다. ‘정부 내 정부’로 불리며 파키스탄의 정보를 꿰뚫고 있는 파키스탄 정보국(ISI)이 몰랐다는 주장은 선뜻 믿기지 않는다.

지난 5월4일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된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은신처 주위에 취재진과 지역 주민들이 모여 있다.

지난 5월4일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된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은신처 주위에 취재진과 지역 주민들이 모여 있다.

ISI는 1980년대 초반부터 빈라덴과 밀접한 관계였다. 빈라덴이 반소련 지하드를 지원하려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자금을 파키스탄의 급진 이슬람 정치조직 ‘자마트에이슬라미’로 운반할 때부터다. 빈라덴이 수단에서 아프간으로 근거지를 옮길 때도 ISI가 도와준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은 1998년 8월 미국이 아프간에서 빈라덴 검거작전을 세웠을 당시 미리 알려줘 빈라덴이 피하게 해줬다는 의심을 받았다. 미국은 이번엔 작전을 비밀에 부쳤다.

파키스탄의 이중 플레이와 무장세력에 대한 태도는 탈레반과의 관계에서 잘 나타난다. 파키스탄은 9·11 테러 이후 탈레반 및 알카에다를 상대로 한 대테러전 공조 명목으로 미국에서 매년 20억달러 가까이를 받아왔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뒤로는 탈레반을 지원해왔다. 파키스탄이 숙적 인도를 누르려고 아프간에 대한 인도의 영향력 확대를 막는 데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간과 인도 사이에 위치한 파키스탄은 아프간 정권이 친인도로 기울면 양쪽에서 협공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파키스탄은 인도와 가까운 북부동맹 출신이 대거 포진된 아프간 정권을 견제하려고 탈레반을 지원했다. 파키스탄은 자국 내 무장세력들을 인도와의 동북부 국경을 지켜주는 장벽으로 여긴다. 파키스탄은 탈레반과 알카에다에 대한 영향력을 지렛대로 미국이 숙적인 인도 쪽으로 기우는 것도 견제한다. ISI는 탈레반이 아프간에서 파키스탄의 이해를 대변할 힘을 유지하기 바라지만, 미국은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궤멸을 추구한다. 탈레반과 알카에다는 미국이라는 공통의 적 앞에 공생해왔다. 위키리크스 폭로에서 탈레반 핵심 지도자들의 회동에 ISI 인사들이 참석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이 이를 모를 리 없고 수차례 경고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미국이 놓쳐서는 안 되는 전략적 핵심 요충지다. 미군은 항구가 없는 내륙의 아프간에 보급품을 공급하려고 파키스탄 카라치 항구와 북서변경주 주도인 페샤와르, 카불로 이어지는 산악도로 ‘카이버 패스’를 병참로로 활용해왔다. 연합군 보급품의 70% 남짓이 이 보급로를 통해 들어온다. 또 파키스탄은 핵무장국인데다 이슬람 군사조직 양성소로 불릴 정도로 무장세력이 활개쳐 지역 안정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다. 거슬러가면 냉전 시절 미국은 소련에 기운 인도를 파키스탄을 통해 견제하고,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에 맞서는 이슬람 무장조직을 파키스탄을 통해 지원한 바 있다.

은신 기간에 따라 불편한 공생 고비

미국이 빈라덴을 숨겼다며 파키스탄을 비난하자, ISI는 미국이 빈라덴을 자녀들 앞에서 사살했다는 등의 소식을 흘리며 미국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ISI의 위험한 줄타기가 다시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두 나라는 상호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없다. 미국은 알카에다와 탈레반 소탕을 위해, 경제가 붕괴된 파키스탄은 미국의 막대한 물적 지원을 받기 위해 서로가 필요하다. 불편한 공생은 빈라덴이 얼마나 오랫동안 파키스탄에 숨어 있었는지 밝혀지면 다시 한바탕 출렁거릴 전망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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