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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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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피의 디스토피아 되나

장기전으로 들어서는 리비아 사태…
국제사회의 개입 여의치 않은 가운데 최소 6천 명이 숨지는 등 대학살 우려 커져
등록 2011-03-11 01:15 수정 2020-05-03 04:26

리비아 사태가 장기전으로 들어서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에 곧 쫓겨날 듯하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 지도자는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는 모양새다. 1월14일 튀니지에서 벤 알리 대통령이 해외로 달아난 지 두 달, 2월11일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전격 사퇴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카다피는 버티고 있다. 카다피는 3월3일 수도 트리폴리에서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2시간30분 동안 연설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넘겨줄 권력이 없다. 리비아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퇴진을 재차 거부했다. 카다피 진영은 친위대와 용병을 앞세워 반정부 시위대가 차지한 동부 지역 탈환에 나서고 있다. 대결은 동부에 집중된 석유시설을 차지하기 위해 밀고 당기는 공격이 계속되는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공방이 쉽사리 끝나지 않을 조짐이다.

3월3일 리비아 동부 아다비야에서 열린 공동 장례식에서 한 노인이 카다피 진영의 공격으로 숨진 조카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연합 AP

3월3일 리비아 동부 아다비야에서 열린 공동 장례식에서 한 노인이 카다피 진영의 공격으로 숨진 조카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연합 AP


중·러, 군사 개입 반대

국제사회의 개입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투기의 시위대 공격을 막기 위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이나 군사적 개입 모두 유엔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갖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내정 불간섭’ 등을 내세워 비행금지구역 설정 및 군사 개입에 반대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도 영국과 프랑스는 군사 개입에 적극적이지만, 독일은 역효과를 낼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NATO도 유엔이 군사 개입을 결정하지 않는 한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군사 개입 때 서방이 원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등 카다피의 선동에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도 부담이다. 아랍권에서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벌인 미국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고 미국도 두 전쟁에서 사실상 모두 패배한 게 부담이다. 카다피가 “외국 군대 개입 때는 피바다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3월2일 하원에서 리비아 영공 봉쇄를 위해서는 리비아 방공망의 파괴가 우선돼야 한다는 실무적 문제도 제기했다. 하지만 카다피 진영의 유혈진압이 계속되고 희생자가 늘어날 경우 군사적 개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커질 전망이다.

대화 중재는 가능성이 낮은 상태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반정부 세력과 카다피 사이의 대화를 주선해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하자는 중재안을 내놨지만 양쪽 모두 거부했다. 반정부 세력 과도정부인 ‘리비아 국가평의회’ 무스타파 게리아니 대변인은 3월3일 “(중재안이) 너무 늦었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며 누구와도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카다피의 유력한 후계자였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도 외국의 중재는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프랑스 등도 중재안에 회의적이다.

‘제2의 소말리아’ 되나

이처럼 외부의 개입이 어려운 가운데 희생자는 늘어나고 있다. 리비아인권연맹(LHRL)은 리비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2주 만에 최소 6천 명이 숨졌다고 3월2일 밝혔다. 일부에서는 캄보디아(1975년), 르완다(1994년), 수단 다르푸르(2003년)와 같은 대학살이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같은 날 리비아가 ‘제2의 소말리아’가 돼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의 기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카다피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대상으로 ‘인간성에 반한 죄’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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