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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단 후유증, 밥보다 잠

등록 2007-10-19 00:00 수정 2020-05-03 04:25

기도하느라 잠을 설치고 먹느라 잠잘 틈이 없고… 금식월 뒤 밀려드는 잠·잠·잠

▣ 암만(요르단)=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라마단 금식월이 끝났다. 금식월 덕분에 가장 결핍된 것은 영양이 아니라 ‘잠’ 이다. 지난 한 달간 낮과 밤 없이 지낸 덕에 잠잘 틈이 없었다. 경건과 절제 훈련을 하느라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낮 동안 참았던 음식을 해 진 뒤 먹고 마시느라 잠잘 틈이 없는 이들도 있다. 많은 무슬림들은 이런 저런 사연을 안고 라마단 기간 내내 졸음과 싸우면서 낮과 밤을 보냈다.

아이 돌보랴 음식 장만하랴, 한 달 내내 피곤

사이드(36)는 라마단 기간 동안 아침 7시에 피곤한 눈을 비비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잠시 숨을 고른 뒤 8시쯤에 조금은 한적한 거리를 차로 5분여 달려, 자신의 일터인 암만 시내 중심지에 자리한 문구용품 도매상점으로 향했다. 오후 4시 전후해 다시 집에 돌아온 사이드는 간단하게 몸을 씻고 라마단 금식을 마치고 처음 먹는 식사 ‘이프타르’ 전까지 잠시 잠을 청한다. 아마도 1 시간 안팎은 되는 것 같다. 이프타르를 한 다음 같은 건물 위층에 사시는 부모님을 찾아 가족들과 시간을 같이한다. 사이드는 4층 구조의 건물에 부모님과 형제들과 한 층씩 자리잡고 살고 있다. 새벽 4시 전후한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그전 금식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는 식사 ‘수후르’를 가볍게 먹는다. 아침 7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다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이렇게 하루하루 라마단을 살아갔다.

와파(27)는 삼남매를 둔 6년차 전업주부이자, 사이드의 부인이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뒤 설거지와 집안 정리를 하느라 잠잘 겨를이 없다. 잠시 잠이라도 청할라치면 7개월 된 나예프가 보챈다. 그나마 오전 중에는 잠시라도 단잠을 청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아이들 돌보랴, 라마단 음식 장만하랴, 금식월 내내 피곤이 쌓여 있다. 새벽 3시 안팎까지 밤잠을 자지 못하고 버텨야 하는 하루하루는 쉽지 않다. 거의 날마다 친척을 초대하거나 초대받아 오가곤 한다. “음식 장만할 때 간을 볼 수 없기에 그냥 감각으로 음식을 장만해야 한다. 완전한 금식은 낮 시간에 음식의 간을 보는 것조차 금지되기 때문이다.” 라마단 기간 내내 평균 잡아 하루에 4~5시간은 자는 것 같다.

라마단 기간에 만나게 되는 현지인들은 공통적으로 수면 부족을 언급한다. 명절에 먹고 마시면서 날밤을 새우는 사람들도 졸리지만, 경건하게 라마단을 지키려는 이들도 졸린 것은 매한가지다. 때를 따라 사원에 가서 기도도 하고, 쿠란도 읽고, 정성껏 금식을 지키다 보면 속은 개운해도 잠에 빠져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게다가 불규칙한 생활로 라마단 기간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다. 그야말로 불면과 수면, 졸림과의 전쟁이 벌어지는 셈이다.

드라마와 영화 밤새 트는 TV

이사(50)는 2년 전 메카 성지순례까지 다녀온 공무원으로 사남매의 아버지다. 라마단 기간 단축 근무 덕분에 평소 8시에 출근하던 직장을 9시에 출근한다. 그는 라마단 금식 정신을 잘 지키려고 애를 쓴다. 이사는 라마단 기간에 이프타르와 수후르 외엔 음식물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것은 “절식에 의미가 있는 까닭이고 급한 식사와 과식이 건강에도 라마단 전통 지키기에도 해롭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해야 하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다.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에 다니는 우르바와 제이나 두 귀여운 딸, 고등학교 졸업반인 함무데(15)와 대학생 무하마드(18)의 등하교도 도와야 한다. 올해부터는 초등학교 2학년인 막내 우르바도 처음 라마단 금식에 참여했다. 대개 10살 정도가 되면 라마단 금식에 참여시킨다. “어릴 때부터 라마단 금식에 훈련이 되지 않으면 커서는 더욱 힘들다”는 이사는, 우르바가 힘들어하면서도 잘 견뎌낸 것이 대견하단다. “졸린 것이 힘들다. 운전 중에도 순간 졸음운전을 하곤 한다.” 퇴근해 잠시 쉬었다가 이프타르를 한 다음 자정 무렵까지 잠을 청한다. 다시 일어난 이후에는 밤을 지새운다. 수후르를 먹고 난 다음에 다시 잠을 청하는 이들도 많지만, 이사는 뜬눈으로 있다가 아침 출근을 한다.

그런데 라마단 기간 내내 늦은 새벽까지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새벽 2~3시가 될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TV를 본다”는 사이드의 말처럼 이야기와 영상물 시청은 라마단 밤 문화의 필수적인 도구다. 위성방송은 라마단 특집 방송으로 가득 차 있다. 프로그램은 드라마와 영화가 대세다. TV 라마단 특별 프로그램에 몰입하곤 한다. 방송사들은 라마단 한 달 동안 시청률 경쟁에 매달린다. 광고수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주로 드라마로 승부를 건다. 아랍·이슬람 지역의 경우, 정보를 얻는 주요한 경로가 TV 같은 영상 매체다. 특별 프로그램들이 있는 한, 시간 보내기에는 문제가 없다. 시내 곳곳의 DVD 판매점에 가면 극장 개봉 중인 최신 영화조차 우리 돈 1500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물론 무단 복제품이다. DVD 판매점이 호황을 누리는 것을 보면 라마단의 저녁 시간 보내기에 일조하고 있는 듯하다.

수면 부족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은 라마단 기간 중에 택시를 타는 것은 때로 위험천만한 모험이다. “오늘도 택시를 탔는데, 아침부터 운전기사가 졸음운전을 하는 게다. 사고를 당할 뻔했다.” 요르단 생활 2년차인 한 한인 거주자는 라마단 기간 중의 졸음운전을 자주 목격한다고 했다. 평소보다 과속하는 차량들이 눈에 많이 보인다.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꿈쩍 않는 차량들도 목격된다. 운전자가 신호대기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꾸벅꾸벅 조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라마단은 끝나면 나흘(올해는 10월12~16일)간의 달콤한 연휴, ‘이둘 피트르’(이드)가 이어진다. ‘명절 연휴, 그럼 밀린 잠이나 자볼까?’ 그런 엄두도 내지 못한다. 더욱 분주하고 돈도 많이 드는 일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새 옷을 입히고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연휴 내내 가족들과 친지들을 방문하고 초대하는 일이 연휴의 가장 일반적인 일상이다.

경건한 졸음, 불경건한 졸음

한 달간의 알찬 라마단 금식을 마친 이들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된 기억으로 가득 찰 것이다. 일종의 종교적인 성취감도 얻는다. 절제와 경건을 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마단은 더 이상 종교의 영역에만 갇혀 있지 않다. 라마단 정신 없이도 라마단이라는 명절과 절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일상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변하고 있다. ‘금식월’ 라마단은 허기와 졸음을 이겨내야만 한다. 경건한 졸음과 불경건한 졸음, 그 깊이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깊은 단‘잠’에 빠지고픈 갈망은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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