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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탱은 제국주의자?

등록 2007-08-24 00:00 수정 2020-05-03 04:25

벨기에 거주 콩고인, 에 대해 인종 편견·외국인 혐오 이유로 판금 신청

▣ 브뤼셀=글·사진 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만화를 제법 아는 사람이라면 이라는 만화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어로 출간된 탓에 일부에서는 프랑스 만화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 만화는 분명히 벨기에 만화가 에르제(1907~83)가 그린 24권짜리 연작물이다. 처음에는 벨기에 일간지 에 연재됐으나 곧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이어서 영어·독일어·한국어 등은 물론이고 에스페란토어와 티베트어까지 모두 40개 언어로 번역돼 전세계에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연극, TV 만화영화 등으로 각색됐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미국의 드림웍스가 나서 영화화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사회적 공로도 적지 않아 2006년에는 편(1960)이 티베트의 문화와 현실을 알리는 데 공헌했다고 해 달라이 라마가 직접 이 만화에 ‘티베트를 위한 국제운동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어리석은 토착민, 잔인한 동물 학대

주인공 탱탱은 벨기에 출신의 신문기자다. 포마드로 말아올린 금발의 앞머리와 하늘색 티셔츠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흰색 애완견 밀루는 때로는 영리하게, 때로는 충직하게 그의 주인 탱탱을 돕는다. 둘은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취재하고 그 과정에서 우연찮게 마주치는 악당들과 싸운다. 1929년 제1권에서 처음 소련 땅을 밟은 탱탱은 에르제가 미완성으로 남긴 24권에 이르기까지 미국·이집트·중국 심지어 ‘달나라’까지 매권 장소를 달리해 세상을 누비며 모험담을 전한다.

그런데 이번 여름, 탱탱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7월 말, 벨기에에 거주하는 콩고인 한 사람이 제2권 (Tintin au Congo)에 대해 판매를 금지해달라는 진정서를 브뤼셀 검찰청에 냈기 때문이다. 브뤼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음부투 몽동도 비엔브뉘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탱탱의 판권을 소유한 물링사르사를 상대로, “인종 편견과 외국인 혐오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만화가 출판되거나 팔려서는 안 된다”고 진정서를 낸 이유를 밝혔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제2권은 지난 1931년에 처음 출간된 것으로 벨기에가 콩고를 식민지배하던 시절이 배경이다. 어느 날 탱탱과 밀루는 아프리카(콩고)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콩고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이 빌린 자동차를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밀루의 도움으로 부족민의 부락에서 자동차를 발견하지만, 도둑은 오히려 부족의 주술사와 협력해 탱탱 일행을 위험에 빠뜨린다. 다행히 벨기에 선교사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지만 악당들과 탱탱의 대결은 더욱 격렬해진다. 마침내 악당들을 물리친 탱탱은 이들의 뒤에 미국 범죄조직의 대부인 알 카포네가 있음을 알게 된다. 알 카포네 일당은 콩고의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광산을 지배하며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르고 있었기에 신문기자인 탱탱을 껄끄러워했던 것이다. 이에 분개한 탱탱 일행은 알 카포네에 맞서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며 제3권 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탱탱 제2권은 출간 당시부터 논란이 예상됐다. 아프리카인들을 원숭이에 비교하며 토착민들을 어리석게 묘사했을 뿐 아니라 코뿔소를 잔인하게 죽이는 등 동물 학대 장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1946년 원작자인 에르제는 여론의 비난에 못 이겨 시판되던 작품들을 회수해 문제가 된 장면들을 일부 삭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 소동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영국에서 판금조치 내리자 판매 3800% 급등

그러다 최근 영국에서 이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지난 7월 영국의 데이비드 엔라이트라는 한 인권변호사가 가판대에서 우연히 이 만화를 보게 됐던 것이다. 흑인 아내를 둔 이 변호사는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묘사에 흥분해 곧 법원에 제소했고, 영국 인종평등위원회는 편을 가판대에서 철수시키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런 소동은 오히려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영국 신문 는 지난 7월14일치에서 “이 소동으로 탱탱은 오히려 3800%에 이르는 폭발적인 매출 신장을 기록하며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전체 판매 순위 5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에 브뤼셀에서 벌어진 비엔브뉘의 진정 사건은 이면에 콩고와 벨기에 사이의 식민지 문제가 얽혀 있어 좀더 복잡하다. 벨기에와 콩고의 악연은 국왕 레오폴드 2세(1835~1909)가 왕좌에 있던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부분의 열강들이 그랬듯이 레오폴드의 제국주의 작업은 식민화 틀에서 한 치의 벗어남이 없었다. 그는 먼저 그곳에 자신을 대리할 회사- 국제아프리카협회- 를 설립했고, 이어서 이곳 원주민들에게 돈을 빌려주며 고리대금업을 했다. 그리고 헨리 모턴 스탠리라는 당대의 이름난 식민주의자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콩고자유국’을 수립하고 그 후견인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1884~85년에 열린 베를린 정상회담에 참석해, 15개 열강들로부터 이곳이 자신의 주권이 미치는 곳임을 확인받음으로써 식민화를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그의 식민화 작업은 여타 식민지와는 다른 점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콩고의 모든 자원을 국가가 아닌 국왕 개인의 재산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는 이곳에서 생산되던 값비싼 상아와 고무를 사유화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콩고인을 착취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 지금도 브뤼셀 남동부 테르뷔렌에 가면 볼 수 있는 ‘아프리카 박물관’은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이름난 아프리카 전문 박물관이지만, 그 내부의 모든 박물들은 바로 레오폴드와 식민주의자들이 저지른 만행이 ‘유물’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된 것들이다.

하지만 레오폴드 국왕이 콩고에서 저지른 식민화와 폭정은 당시나 지금이나 벨기에인들 사이에서 큰 논란거리다. 이 시기에는 모든 열강들이 식민지 경쟁을 했기 때문에 도덕적 판단은 무리일 뿐 아니라 오히려 알짜배기였던 콩고를 식민화한 것은 대단한 업적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한 국가를 국왕이 사유화한 것은 식민사에서도 드문 희극이었다는 대비적인 비판도 있다. 당시 벨기에 의회는 폭정에 반발한 국제사회의 비난에 굴복해 레오폴드 국왕이 사망한 뒤인 1909년, 콩고를 국왕 개인의 것이 아닌 벨기에령 콩고로 주권을 이양시키며 논란을 잠재웠고 이들의 콩고 지배는 1960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지난 1999년에 이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과거 벨기에의 식민지배가 얼마나 비열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 공개돼 벨기에 사회에서 다시 한 번 큰 논쟁을 일으켰다.

에르제 그리고 모든 제국주의자의 치부

사실 이번 여름의 판매 금지 진정 건은 시대의 변화에 비해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제국주의의 후손들이 먼저 나서 자신들의 편견을 바로잡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번 사건은 원작자인 에르제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벨기에인, 더 나아가 구 제국주의자들이 모두 부끄러워해야 할 치부가 드러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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