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이틀하던 파타 알 이슬람 분쟁 두 달째 이어져, 민간인 거주지도 구분 않는 군의 작전이 겨냥하는 것은
▣ 나흐르 알 바레드·바다위·베이루트=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시작돼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군 ‘7월 전쟁’이 1돌을 맞은 지난 7월12일, 레바논 북부에선 또 다른 전쟁의 포성이 하루를 열었다. 북부 도시 트리폴리에서 북쪽으로 약 17km 떨어진 곳에 있는 ‘나흐르 알 바레드’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선 오랜 침묵을 깨고 재개된 폭격과 교전이 이날 새벽 5시부터 하루 종일 이어졌다. 지난 5월20일 레바논군이 무장세력 난민촌에 근거지를 둔 ‘파타 알 이슬람’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이래 이날이 가장 격렬한 전투를 벌인 날로 기록됐다.
‘아프가니스탄 공격’ 비슷한 시작
시리아 국경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라본 난민촌 건물은 마치 구겨진 종잇장처럼 간신히 버티고 선 모습이었다. 그렇게 버티던 건물들이 조금씩 무너져내리면서 잿더미로 차곡차곡 쌓여갔다. “오늘내일 새 끝장을 내려는 모양이야.” 인근 마을 주민들은 대략 3~4일 안에 전투가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7월12일 새벽 남아 있던 민간인들도 대부분 난민촌을 빠져나간 뒤라 레바논군으로선 부담도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민촌 안에는 여전히 여성 21명과 어린이 45명, 그리고 영아 6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모두 150명가량 남은 것으로 추정되는 파타 알 이슬람 조직원들의 가족이다.
7월30일 약 2주 만에 다시 찾은 현장은 ‘오늘내일’하던 그 싸움을 여태 하고 있었다. 군의 폭격에 응수하는 파타 알 이슬람의 총격과 박격포 공격도 그때나 지금이나 만만치 않게 들려왔다. 레바논군이 난민촌 안으로 제법 진입해 싸움이 본격화해서인지 교전 소리가 더 짙게 들려왔다. 이날 오전에만 레바논군 10명이 숨졌다. 지난 두 달하고도 열흘간 레바논군 120여 명이 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200명 내외에 불과하다던 파타 알 이슬람은 교전 3일째부터 미국, 프랑스 등에서 무기까지 지원받고 있는 레바논군과 지금껏 싸우고 있다.
레바논 북부 분쟁은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대강 현상으로 드러난 게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들어앉은 한 무장세력이 은행강도짓을 하다가 레바논군과 교전을 벌이게 됐고, 이들이 20여 명의 레바논 병사들을 사살하자 레바논군이 난민촌으로 쳐들어갔다”는 게다. 그러나 200여 명으로 추정되는 파타 알 이슬람을 잡겠다고 팔레스타인 난민 약 4만 명이 거주하는 난민촌을 공격할 때부터, 이 전쟁은 오사마 빈라덴을 잡겠다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아무런 상관없는 수만 명의 민간인을 죽인 ‘테러와의 전쟁’과 비슷한 냄새를 풍겼다.
“북부 출신 ‘미래블록’(2년 전 암살된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의 아들이 이끄는 주류 정치연합체) 소속의 한 의원이 셰이크 알 아부시(파타 알 이슬람 대표로 알려진 인물)를 만난 게 지난해 12월31일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그러니까 올해 2월13일 아카에서 (파타 알 이슬람이) 차량폭탄 공격을 벌이기 며칠 전이다. 미래블록 쪽은 헤즈볼라에 맞설 세력으로 키우기 위해 파타 알 이슬람 지원을 제안했다. 다른 수니파 정치인들도 파타 알 이슬람을 접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레바논 정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하마스 정치지도자 알리 바라케(41)는 다른 팔레스타인 인사들과 달리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바라케는 파타 알 이슬람이 “헤즈볼라에 맞서는 건 거부했지만 일부 지원은 받아들인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일부 언론의 보도와 맥을 같이한다. 미국 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시모어 허시는 지난 3월 ‘방향 선회’란 제목의 기사에서 일찌감치 이런 주장을 폈다. 그는 미국의 중동정책이 “이란과 시리아를 축으로 방향을 틀고 있으며,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을 지원하는 것도 이런 정책과 맞닿아 있다”고 주장했다. 허시는 지난 5월24일 〈CNN방송〉과 한 인터뷰에서도 “딕 체니 부통령 등이 사우디아라비아 정보국과 결탁해 시아파인 헤즈볼라를 겨냥해 파타 알 이슬람 같은 수니파 근본주의 세력을 지원해왔다”고 강조했다.
‘문제될 세력’ 여러 차례 경고 무시
난민들은 “지난해 10월께부터 파타 알 이슬람이 나흐르 알 바레드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며 “시간이 갈수록 탱크와 각종 중화기가 차곡차곡 난민촌으로 들어왔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레바논 주군 유엔군(UNIFIL·이하 유니필)에서 대변인을 지낸 군사평론가 티모르 곡셀 교수는 “외부 수니파 그룹들로부터 얼마든지 그 정도의 지원은 가능하다”고 조심스럽게 분석했다. 곡셀 교수는 “미국·사우디·레바논 정부의 파타 알 이슬람 지원설은 소문을 종합한 것에 불과하다”며 “하지만 레바논 정치권이 여러 차례의 조언에도 이 단체를 심각한 위협 세력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합리적 의심’을 할 만한 이유는 있는 게다.
파타 알 이슬람이 난민촌에 자리를 잡는 것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현지 지도부도 “레바논 정치권에 잇따른 경고를 보냈지만 귀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셰이크 알 아부시가 200명가량을 데리고 레바논으로 들어올 때부터 우린 레바논 정치인들에게 경고했다.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문제를 일으킬 조직이니 반드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레바논 내 최대 팔레스타인 난민촌인 아인 알 힐웨의 파타당 지도자 칼리드 아리프의 말이다. “사실 우리(파타)가 그들을 잡아들이려 했다. 그래서 레바논 정부에 무기와 병력을 지원해달라고 했는데 전혀 새겨듣지 않더라. 결국 바다위 난민촌에서 살상을 저지르고, 다시 나흐르 알 라베드에 가서 저 지경이 되지 않았나.”
느닷없이 시작된 교전 사태가 난민촌 전역을 순식간에 전쟁터로 돌변하게 만든 것은 레바논군이 민간인 거주지까지 무차별 공격을 퍼부은 탓이 크다. 전투에 나선 레바논군이 민간인 피해와 전선 확대 가능성을 몰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애초부터 난민들에게 닥칠지 모를 위험에 대해선 개의치 않았다는 점을 방증한다. 나흐르 알 바레드 난민촌의 구조를 꼼꼼히 살펴보면, 레바논군의 애초 ‘의도’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나흐르 알 바레드 난민촌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맞은 ‘나크바’(재앙) 이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주로 거주해온 구캠프와, 정착민 수가 늘어나면서 구캠프를 초승달처럼 둘러싸고 생겨난 신캠프로 구분된다. 파타 알 이슬람이 지난해 정착한 곳은 바로 이 신캠프다. 다시 말해, 민간인 주거지와 파타 알 이슬람의 거점이 적어도 전쟁 초기에는 아주 분명하게 나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레바논군은 전쟁 초기부터 신·구 캠프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퍼부었다.
“파타 알 이슬람 조직원은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도 그들은 우리 구역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난민촌에서 일찌감치 빠져나온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7월12일 마지막 소개 과정에서 빠져나온 이들도 파타 알 이슬람이 “민간 거주지와 떨어져 있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파타 알 이슬람이 레바논군의 공격을 피해 신캠프에서 구캠프로 위치를 옮겨왔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최근까지 난민촌에 남아 있던 이들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료팀 관계자들은 “레바논군이 처음부터 난민들의 위치를 파악하고도 별로 신경쓰지 않고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다”고 입을 모았다.
무기와 식량 이용, 6개월 이상 버틸 수 있어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수상한 낌새를 포착하기도 했다. 국제적십자사(ICRC)·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와 함께 민간인 대피 작업을 벌여온 레바논 적십자사(LRC)의 한 관계자는 난민촌의 신·구 캠프가 구분된다는 점을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한 뒤에야 설명해줬다. 민간인과 파타 알 이슬람의 거점이 전혀 달랐음을 알고 있었을 레바논군 당국의 ‘입단속’이 있었던 게다. 전투가 시작된 뒤에도 뒤늦게까지 난민촌에 머물다 빠져나온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료팀 소속 의사 사브리 카센(가명)은 레바논 당국의 입막음이 있었다는 점을 내비쳤다.
7월30일 현재, 전쟁은 장기화할 태세다. 전선도 되레 넓어지고 있다. 차량이 진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골목과 크고 작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난민촌 구조는 레바논군에 불리한 반면 구석구석 지리를 잘 알고 있는 파타 알 이슬람엔 게릴라전을 벌이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근접전을 펼치지 않는 한 파타 알 이슬람을 근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근접 교전은 더 많은 레바논군의 목숨을 요구할 것이다.
게다가 파타 알 이슬람이 팔레스타인의 각 정파가 난민촌을 빠져나가며 두고 간 무기를 활용할 것이란 점 역시 레바논군의 부담이다. 경제활동이 왕성했던 난민촌 창고에는 식량도 상당히 비축돼 있다. 현지 팔레스타인해방기구 관계자들이 “레바논 정부가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파타 알 이슬람은 앞으로 6개월 이상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안한 치안, 잇따른 정치인 암살, 헤즈볼라 중심의 야당 세력과의 극한 대립. 여러 달 째 위기에 몰려 있는 푸아드 시니오라 총리 정부는 “테러리스트를 뿌리 뽑을 때까지”를 외치며 이번 전쟁에 자존심을 건 듯하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조만간 파타 알 이슬람을 뿌리 뽑는다 해도 레바논 전역에 12곳이나 되는 팔레스타인 난민촌마다 각종 무장세력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제2, 제3의 파타 알 이슬람이 탄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7월16일 오전 남부 도시 가스미에서 유니필 소속 탄자니아군을 겨냥한 폭탄 공격도, 지난 6월24일 유니필 소속 스페인군을 겨냥한 공세도 모두 크고 작은 수니파 무장세력들의 소행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남에서 북까지 레바논 전역이 ‘잠재적’ 혹은 ‘현재적’ 화산지대로 꿈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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