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자 석방 뒤 잊혀져버린 아프간 기자 아즈말 나카슈반디, 납치 5주 만에 참수당하고 말아
▣ 카불(아프간)=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지난 3월 초 탈레반이 납치한 아프가니스탄 현지 기자 아즈말 나카슈반디가 납치 5주 만인 4월8일, 납치범들이 정한 ‘데드라인’도 채우지 못한 채 참수당하고 말았다. 탈레반의 잔인함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노림수처럼 외세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있는 아프간 정부의 취약함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아즈말 참수 사건이 벌어지자 국제사회는 ‘즉각’ 경악과 비판을 쏟아냈고, 5주 동안 납치 사건을 단 한 줄 보도하지 않던 언론들도 예외 없이 기사를 썼다. 이런 ‘법석’이 조금만 일찍 나타났더라면, 분명 아즈말을 살릴 수 있었을 게다.
살릴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아즈말은 지난 3월5일 오전 탈레반 강성 지역 중 한 곳인 헬만드 지방에서 납치됐다. 그는 이탈리아 기자 다니엘 마스트로지아코모의 통역으로 일하고 있었고, 아프간인 운전기사 사이드 아가도 함께였다. 이들은 이날 오전 11시로 미리 ‘약속’이 돼 있던 물라 다둘라와의 인터뷰 장소로 향하던 길에 납치당했다.
납치범과의 협상은 운전기사 사이드 아가가 참수를 당하면서 본격화했다. 지난해 10월 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자국 프리랜서 사진기자 납치와 석방 드라마로 곤욕을 치렀던 이탈리아 정부에 아가의 참수는 발등의 불이 됐다. 아프간 병력 파병에 대한 자국 내 거센 반대에 직면한 이탈리아 정부는 ‘외세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아프간 정부를 ‘병력 철수’라는 카드로 압박했다. 급기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어명’을 내렸고, 다니엘과 탈레반 5명이 맞교환 형식으로 모두 풀려났다.
혼자 풀려난 다니엘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환호하며 만세를 불러댔지만, 아즈말은 납치범의 손아귀에 남겨진 채였다. 그로부터 나흘 뒤 다니엘이 며칠 전 그랬던 것처럼 아즈말이 머리에 모자를 얹고 천을 두른 채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그러나 아프간 언론을 제외하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냉정히 말해 아즈말을 살릴 기회가 두 번은 있었다. 첫째, 애초 탈레반이 요구한 건 ‘동지의 석방’이었다. 처음부터 5명의 석방을 고집한 것이 아니었다. 하여 ‘1명 대 5명’식 ‘불공정 거래’를 최소한 ‘2명 대 5명’ 정도로는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탈레반의 납치 전술에 불을 지폈다는 비난에 ‘생명을 구한 것뿐’이라며 ‘인도주의’로 맞섰던 이탈리아 정부에도, 셀 수 없는 죽음이 수십 년 일상화해서인지 ‘생명 감각’이 무뎌져버린 아프간 정부에도 아즈말의 목숨은 계산에 없었다.
둘째, ‘납치극 2라운드’에 해당하는 다니엘의 석방 이후 3주 동안 이탈리아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아프간 정부도, 국제사회도, 언론도 아즈말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프간 기자들의 국회 앞 연좌시위, 이탈리아 시민들의 석방 요구시위, 유엔 아프간지원단(UNAMA)의 석방 촉구 성명과 국경 없는 기자회의 성명이 두어 차례 나오긴 했지만, 다니엘 납치 당시 연일 이어지던 보도에 비하면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줄어든 관심 한편으로 탈레반은 국제사회의 압력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제사회가 아즈말 석방 압력을 높이는 시점에서 그를 풀어줌으로써 이미지 쇄신에 보탬이 되는 거래를 하고 싶어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제사회도, 아프간 정부도 이런 ‘탈레반의 마음’을 몰라줬다. ‘인도주의’를 강조하던 이탈리아 외무부는 다니엘 석방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젊은 운전기사 사이드 아가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그의 죽음에 대해 연대와 깊은 슬픔을 전한다”고 밝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석방 협상에 노력을 다하면 얼마든지 살릴 수 있었던 아즈말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신경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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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수, 탈레반 내의 불협화음도 드러내
“이탈리아 기자가 풀려난 건 조건 없이 환영한다. 그러나 정부는 한 생명이 죽기 전에 왜 서둘러 협상을 진척시키지 않았으며, 자국 국민의 안전 문제는 팽개쳐놓고 외부의 압력으로 다니엘 석방에만 분투했는가.” 지아 부미아 아프간 기자보호협회 회장은 다니엘 석방 직후 남겨진 아즈말에 대한 아프간 정부의 무관심을 이렇게 꼬집었다. 아즈말의 아버지 역시 이렇게 한탄했다. “불공평하다. 이탈리아 기자 1명 빼내려고 탈레반 5명을 석방시키면서, 내 아들 석방을 위해서는 단 1명의 탈레반도 석방시키지 못한단 말인가?”
이런 정서는 탈레반의 ‘탄생지’인 남부 칸다하르 같은 곳에선 종교적 색채를 띠고 탈레반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그 정서란 건 이렇다. “무슬림도 아닌 외국인(일부는 ‘외국인 스파이’라고 표현했다) 석방을 위해서는 그렇게 노력하면서 어떻게 우리 무슬림 형제를 위해서는 이토록 무관심할 수 있나.” 현지 기자 사피울라(가명)의 말이다. 이런 분노는 다시 ‘이교도는 살리고 무슬림 형제는 죽인’ 탈레반을 향해서도 이어지고 있다. 5명의 동지를 되돌려받고 로켓포까지 쏘아대며 자축했던 탈레반 역시 아즈말 살해라는 무리수를 둔 탓이다.
아울러 이 무리수는 탈레반 내의 불협화음도 은근슬쩍 드러내고 말았다. 아즈말 참수 다음날인 9일 오전 10시경 물라 다둘라의 개인 대변인 아탈은 일부 언론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소리를 질러댔다. “기자들이 우리를 테러리스트라 불러왔지만 우린 무자헤딘이다. 아즈말을 죽임으로써 경고하는데 당신들 태도를 바꿔라. 그렇지 않으면 기자들을 계속 납치하고 거래하고 살해할 것이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5시께, 이번엔 탈레반 대변인 카리무하마드유수프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기자들을 향한 협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건 탈레반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탈레반 내부의 불협화음까지 들춰낼 만큼 아즈말 사건은 아프간 정국 사방에 던져진 폭탄이 됐다.
많은 언론이 아즈말의 죽음을 전후로 ‘외국인 납치 사건’이나 ‘외국인 납치 위협’ 등으로 써왔지만, 실상 이번 사건이 못지않게 들춰낸 건 현지 언론인 혹은 통역이나 가이드, 운전기사 등 외국인과 함께 일하는 현지인들의 안전 문제다. 위험 지역에서 현지인이나 현지 언론인의 도움 없는 취재나 구호활동이란 거의 불가능한 게 현실이고 보면, 이런 분위기는 아프간 국내 언론과 외신 그리고 그나마 가느다란 명맥을 유지하는 남부 지역의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위험 지역에 삶터를 두고 있는 이 현지인들이 직면한 위험의 수준은 ‘떠날 수 있는’ 외국인과 비교하기 어렵다는 점도 현지(언론)인 보호에 더욱 신경써야 하는 이유다.
프랑스 구호요원 2명? 현지인 3명이 더 있어
다니엘 협상 거래로 재미를 본 탈레반은 ‘더 납치하겠다’는 약속을 지켜가고 있는 듯하다. 4월3일에도 2명의 프랑스 구호단체 요원과 3명의 아프간 동료들이 납치됐다. 불행하게도 현지인 인질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 역시 반복되고 있다. 적잖은 언론들이 ‘프랑스 구호요원 2명 납치’라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현지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납치 열하루 만인 4월14일 ‘2+3명’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제 프랑스 정부, 아프간 정부 그리고 국제사회와 언론은 이들 ‘2+3명’ 모두가 똑같이 소중한 목숨임을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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