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전역 위험신호에도 “값 내렸을 때 닭고기 실컷 먹자는 분위기”… 유대교·이슬람 종교계만 서로의 죄악이 재앙을 불렀다며 목소리 높여
▣ 암만=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국산 닭은 100% 안전합니다.”
요르단 방송은 물론 길거리 공익 광고판에서 매일같이 접하는 내용이다. 그런 와중에 지난 3월24일 조류독감 감염 소식이 보도됐다. 조류독감 경계경보가 공습경보로 바뀐 것이다. 이미 이라크와 이집트에서 조류독감에 감염된 어린아이들이 사망했다. 요르단도 최근 공식적으로 조류독감 경보를 발동했다. 인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리아는 물론 쿠웨이트를 비롯한 걸프 연안 국가들도 비상이 걸린 지 오래다. 이제 아랍 전역은 조류독감의 공습을 받고 있다.
랍비와 이맘이 종교적 공조 이룬 셈
닭고기는 양고기나 소고기보다 값이 싸기도 하지만, 아랍 현지인들이 즐기는 기본 음식의 하나다. 이 때문에 조류독감의 여파는 식생활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요르단의 암만 구시가지는 물론 주요 마켓의 육류 코너는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일부에선 닭고기 구입과 요리를 기피하지만, 값이 내린 닭고기를 마음껏 즐기려는 사람들도 있다. 조류독감 감염 사례가 공식 확인된 직후 닭이나 조류를 취급하는 매장이나 시장, 농장은 물론 가정집 식탁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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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의 한 대형 마켓 닭고기 코너 앞, 여성 판매원들이 서로를 확신시키고 있었다. “굽거나 삶아 먹으면 조류독감의 영향을 받지 않아요. 닭고기 맛있잖아요!” “양계장에서 사육하는 이런 닭들은 조류독감에 100% 안전하답니다.” 또 다른 대형 몰 3층 식당가의 한 식당, 버펄로윙을 주문한 한 고객에게 덜 익은 닭고기가 배달됐다. “어, 이 고기 덜 익은 것 같아요. 피가 보이는데요.” 직원은 이내 “미안하다”며 곧 제대로 익힌 음식을 내왔다. 이 업소 관계자는 “조류독감 여파, 그런 것 없다”며 “치킨 판매량에 변화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조류독감의 여파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 가열되고 있다. 이른바 ‘신의 재앙’ 논란이다. 요르단과 이스라엘 등지에선 조류독감 창궐의 원인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것은 신의 징계다”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유대교 랍비와 이슬람 이맘 사이에 조류독감은 신의 진노이며 재앙이라는 종교적 공조가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각론은 달랐다.
이스라엘 우파 정당인 ‘유대인국민전선’은 “조류독감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점령지역에서 이스라엘이 철수한 것에 대한 신의 진노다”라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의 유대교 신비주의 최고 지도자인 랍비 다비드 바스리는 조류독감을 “동성애 결혼을 허용하려는 이스라엘 좌파 정당의 선거운동이 빚어낸 재앙”이라고 규정하고, “성서는 신이 인간의 부패 행위에 대해 먼저 동물들의 재난을 통해 징계하신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반미 정서 편승한 음모론도 기세
반면 이스라엘 점령지의 팔레스타인 무슬림 성직자들도 이스라엘의 도덕적 해이와 반인도적 죄악이 이런 재앙을 불러일으켰다고 비판한다. 가자지구 북부의 이맘 셰이크 아부 모함메드는 “반인도적 죄악을 저지르는 유대교 정부를 향후 20년 안에 파괴하려는 신의 진노의 서막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반미 정서를 타고 ‘음모론’도 기세를 올리고 있다. 미국이 자국산 백신과 가금류 수출을 늘리기 위해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만들어 제3세계와 개발도상국에 퍼뜨렸다는 것이다. 중동에서는 조류독감을 유발하는 인플루엔자보다 더 영향력 있는 인플루엔자들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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