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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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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아시아 대륙평등!

등록 2006-05-12 00:00 수정 2020-05-03 04:24

인민민주주의공화국에서 천민자본주의국가, 군주국까지 모두 한통속…세계 69개 사형국 가운데 36개가 아시아… 폐지한 나라는 10개뿐

▣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이 세상엔 사형 없는 나라가 122개나 된다. 이건 아예 사형이란 말이 없는 나라 86개와 일반범죄에 사형을 적용하지 않는 나라 11개 그리고 사형은 있지만 집행하지 않는 나라 25개를 합친 수다. 말하자면, 유엔에 등록한 나라가 191개니 거의 모든 사회- 정신머리가 있는- 가 사형 따위완 상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근데 이걸 거꾸로 뒤집어보면, 아직도 법이란 놈을 내걸고 자기 국민을 죽이는 나라가 69개나 된다는 말이다. 대체, 어떤 나라들일까?

사형제 폐지, 동티모르까지 나서다

또, 아시아가 걸려들었다. 남세스럽게도 이런 일엔 꼭 아시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모든 인류문명 발상지에다 모든 종교 발원지까지 모조리 ‘아시아의 것’이라고 굳게 믿어온, 그리하여 먹고살긴 힘들어도 역사나 정신 같은 이야기만 나오면 꿀릴 게 없다고 여겨왔던 바로 그 아시아가 69개 ‘사형국가’ 가운데 36개를 당당히 채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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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아시아 46개 나라 가운데 사형 없는 사회가 딱 10개뿐이라는 뜻이다. 그나마 아시아 체면을 세워준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캄보디아, 네팔, 부탄에다 중앙아시아 쪽 투르크메니스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유럽 쪽에 붙어왔던 터키와 사이프러스가 그들이다. 여기에 신생독립국 동티모르도 동참했다. 그 면면들을 보면 모두 하나같이 독재정치와 분쟁으로 이름 날린 나라들이라 오히려 사형 폐지에 앞장섰다는 사실이 놀랄 만한 일이지만, 어쨌든.

뿐만 아니다. ‘아시아와 사형’, 이 반문명적 관계는 가히 절망적인 기록들로 이어진다.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2004년 한 해 동안에만 64개 나라에서 7395명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25개 나라에서 3797명이 사형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형집행국 25개 가운데는 일본, 싱가포르, 대만, 타이를 비롯해 아시아 쪽에서 이름을 올린 나라가 무려 20개나 된다.

게다가 사형된 3797명을 나라별로 따져보면, 중국이 3400명, 이란이 159명, 베트남이 64명 그리고 ‘인권 챔피언’을 자임해온 미국이 59명이었다. 이건 4개 나라가 지구상에서 한 해 동안 집행한 사형의 97%를 독차지했다는 뜻이다.

또 있다. 아시아는 ‘18세 이하 미성년자 사형 금지’를 규정한 국제법을 깨면서까지 아이들을 처형시킨, 그 야만성에서도 앞장섰다. 1990년부터 따져보면, 미성년자 46명을 사형한 8개 나라 가운데는 아시아의 중국,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파키스탄이 5개 자리를 차지했다. 참고로, ‘모든 챔피언’ 미국은 미성년자 19명을 사형해 이 부분에서도 챔피언이 되었다.

이렇듯 아시아는 사형 분야의 모든 신기록들을 독식하면서, 적어도 사형만 놓고 보면 ‘대륙 평등’을 실현했다. 거기엔 좌우도 높낮이도 없었다. 각종 인민민주주의공화국도 자본주의 풍운아도 또 군주국들도 사형 앞에선 모두 한통속이었다. 자나 깨나 자비를 외쳤던 온갖 종교들도 사형 앞에선 한 몸처럼 숨죽였다. 세계 최강국도, 세계 최빈국도 사형 앞에선 모두 하나였다.

사형 집행은 과연 범죄율을 억지하는가

자, 아시아를 두고만 볼 것인가? 이번주 ‘아시아 네트워크’는 이 순간에도 아시아 시민들 숨이 넘어가고 있다는 급박한 심정을 담아 아시아의 사형 실태를 독자께 올린다. 아시아 네트워크는 사형제 폐지가 시민들 손에 달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덧붙여, 아시아 네트워크는 ‘축구’ ‘야구’를 놓고 당치도 않는 민족주의 논쟁씩이나 들먹이면서 사형제 폐지 ‘따위’엔 관심도 없었던 이들에게 아래 몇 문장을 선물한다.

1. “사형 집행이 종신형보다 살인 범죄율을 억지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가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 유엔 1996년 보고서

2. “사형제도를 폐지하기 직전인 1975년 10만 명당 3.09명이었던 캐나다의 살인 범죄율이 사형 폐지 뒤 오히려 줄어들어 2003년에는 10만 명당 1.73명으로 떨어졌다.”

- 로저 후드(Roger Hood, The Death Penalty: A World-wide Perspective)

3. “1973년부터 미국에서만 사형선고를 받았던 이들 가운데 122명이 무죄로 석방됐다.”

- 국제사면위원회(Facts and Figures on the Death Penalty)

4. “사회 부유층 가운데 사형된 이들을 찾아 기록을 뒤지는 건 헛된 일이다.”

- 윌리엄 더글러스 판사(William O. Doug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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