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이선주 전문위원 koreapeace@free.fr
프랑스에서 매년 11월1일부터 3월14일까지는 실행될 수 없고, 밤 9시에서 새벽 6시까지의 시간과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도 금지되는 게 있다. 그게 뭘까? 정답은 바로 집에 세든 사람을 강제로 추방하는 일이다. 강제추방 대상은 물론 집주인이 더 이상 집 빌려주기를 원치 않는 이들이며, 그들 대부분이 집세를 내지 않은 사람들이다.
한국식 전세가 아닌 월세 형태로 임대를 하는 프랑스에선 임대차 계약의 당사자인 집주인과 세든 이의 권리·의무의 내용이 무척 까다롭다. 주인이 세입자를 추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면, 이 권한이 행사되는 범위에서 추방당하는 이의 최소한의 인권을 고려한 보호법이 있다. 한겨울은 피하고, 여차하면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관공서가 문을 닫는 시간이나 날도 피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정말 오갈 데 없는 이들에게 부여하는 최소한의 인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집세를 내지 않는다고 모두 강제로 추방되는 건 아니다. 주인과 세든 사람이 사태 해결을 보지 못할 때, 집주인은 추방 소송을 낼 수 있다. 이런 요청에 따라 법원이 추방 여부에 대한 판결을 내리게 된다. 통계를 보면, 임대차 문제로 갈등을 겪는 사례 10건 가운데 4건 정도는 소송으로 해결된다.
최근 5년간 집세가 밀렸다는 이유로 낸 추방소송 건수가 37% 늘었고, 이에 따른 강제추방 판결도 45% 증가했다. 1990년대 말 좌파 정부가 실시한 ‘소외를 반대하는’ 사회정책에 힘입어 잠시 주춤한 이후 계속해서 상승 곡선을 타고 있는 것이다. 소송이 엄청나게 는 주요 원인으로는 최근 급속도로 오른 집세가 꼽힌다. 유로화로 바뀐 뒤 물가 상승과 더불어 최근 부동산 업계가 ‘자유시장’의 공격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의 집세만 봐도, 2002년 이후 연평균 4~5%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평균 물가상승률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집세는 웬만한 월급쟁이에게도 큰 부담이다. 올해만 해도 14만 가정이 강제추방 대상이 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겨울이 긴 프랑스에서 봄기운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3월15일은 강제추방이 시작되는 날이다. 추방을 반대하는 사회단체들과 추방 대상자들이 매년 거리로 나서 ‘주거권’을 외치며 시위를 하는 때도 이즈음이다. “추방은 사람들을 더 큰 불안정과 소외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일종의 폭력이다”가 올해 구호 가운데 하나였다. 2006년 3월15일 프랑스 전역은 불행 중 다행으로 화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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