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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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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라오족이 중국을 위협한다

등록 2006-02-23 00:00 수정 2020-05-03 04:24

빈둥거리며 늙은 부모를 등쳐먹다 살인까지 저지른 중국의 젊은이들
65%의 가정에서 컨라오 현상 “제발 아이를 끔찍하게 사랑하지 마세요”

▣ 베이징=박현숙 전문위원

2005년 9월12일 아침 7시께, 중국 신장 우루무치의 한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아들이 친아버지를 살해했다. 살인범은 당시 27살의 무직 청년으로, 매일 하는 일이라고는 집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거나, ‘때’ 되면 아버지가 해주는 밥을 먹는 것이었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던 날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일 나갈 준비를 하던 아버지에게 아들은 “담뱃값 2위안(약 240원)만 달라”고 했다. 아버지가 매정하게 “돈 없다”고 하자, 아들은 순간 화가 난 나머지 아버지를 밀쳐버렸다. 아들의 어이없는 행동에 분노가 치민 아버지가 몇 마디 욕을 하며 꾸짖자, 아들은 곧바로 근처에 있던 흉기를 집어들어 아버지를 찔렀다.

담뱃값 2위안, 용돈 10위안 때문에…

그는 경찰 조사에서 왜 일할 생각을 안 하고 아버지를 ‘갉아먹고’ 사느냐는 질문에, 배운 것이 없어서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나마 아버지의 소개로 고향 사람이 청부하는 건설현장 인부로 일을 해봤지만 너무 힘들어서 며칠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들은 그를 ‘컨라오 살인범’이라고 지칭했다. ‘컨라오’(口+肯老)란 주로 일정한 직업이나 수입이 없이 늙은 부모에게 의지하는 현상을 뜻하는 신조어로서, 이렇게 부모를 ‘갉아먹고’ 사는 사람들을 ‘컨라오족’이라고 한다.

‘컨라오족 살인사건’은 지난해 톈진에서도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엄마가 매일 주는 용돈 10위안(약 1200원)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19살의 무직 청년이 엄마를 살해했다. 그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자리를 찾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부모에게 의지해 사는 컨라오족이었다.

쪄우홍은 올해 23살로, 베이징에 있는 한 전문대 회계학과를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조그만 정보기술(IT) 회사의 경리로 취직을 했지만 몇 달 안 가 그만뒀다. 회사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 몇 군데 회사들을 다녔지만 대부분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업무가 단조롭고 월급도 너무 적어 계속 다니고 싶은 생각이 안 들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몇 개의 직장을 전전하다가 최근에는 아예 구직을 포기하고 ‘잠시’ 쉬는 중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눈치가 보여 용돈이라도 벌 요량으로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집 앞이라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고작 상점 판매원이나 하냐고 비웃는 듯한 사람들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한 달도 안 돼 그만뒀다. 그 뒤로는 집에서 인터넷이나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렇다고 앞으로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다. 그냥 뭘 좀 ‘배워볼까’ 생각 중이란다.

과잉보호 속에 자란 독생 자녀 1세대

34살 리링의 남편은 연구기관의 연구원이자 박사과정 학생이다. 연구원이라고 해봤자 월급이 2천위안(약 24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둘이 생활하기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다. 리링은 지금 3년째 대학원 석사과정 시험에 도전 중이다. 이른바 ‘카오옌족’(考硏族·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지칭)이다. 중국에는 현재 리링처럼 대학원 입시를 위해 몇 년째 ‘고시족 컨라오’ 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다. 최근 들어 중국의 실업률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는데다 대학 졸업생들도 최악의 구직난을 겪으면서 이를 ‘잠시’ 피하고자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카오옌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산둥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대학원 시험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베이징의 한 경마회사에서 일했다. 그러나 몇 년을 일해본 결과 ‘길이 아니다’는 판단이 들었다. 월급도 문제였지만, 자신의 학벌로는 평생 좋은 직장을 갖지 못할 거라는 것을 깨닫고 대학원에 가기로 결심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고시족’이 된 뒤로 자신의 모든 용돈과 생활비는 고향에 있는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다. 남편에게는 차마 손을 벌릴 처지도 아닐뿐더러 2년을 연거푸 낙방하다 보니 남편 얼굴 보기조차 민망하다고 했다. 올해도 떨어지면 어떡할 거냐는 질문에 리링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일축한다. 나이가 많아서 다시 취직하기도 힘들 거라며 벌써 3년째 부모님의 퇴직금을 ‘갉아먹고’ 사는 컨라오족이 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최근 들어 중국에서 20~30대 연령층을 중심으로 컨라오족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어떤 신문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사스처럼 번지는 컨라오족”이라는 다소 호들갑스러운 제목으로 이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일본이나 서구에서 1990년대부터 사회문제로 등장한 ‘캥거루족’(대학을 졸업해 취직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취직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 살거나, 취직을 했더라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젊은 세대)이나 ‘니트족’(일할 의지조차 없는 청년 무직자) 또는 부모에게 기생충처럼 빌붙어 사는 ‘패러사이트 싱글족’처럼 중국에서도 ‘컨라오족’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세대가 중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사회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실제로 중국노령과학 연구센터는, 지난해 중국 성인들의 30%가 부모에게 의지해서 생활하는 ‘컨라오족’이며, 65%의 가정에서 이러한 ‘컨라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연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국 <남방망>(南方網) 보도에 따르면 컨라오족은 “아직 정신적으로 부모의 ‘젖’을 떼지 못한 부류로 대부분 20~30살의 독생 자녀 1세대들이다. 어릴 때부터 과잉보호 속에서 크다 보니 환경적응 능력이 떨어지고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또 부모들 역시 이런 자녀 문제를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젊은 컨라오족이 증가하면서 앞으로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그들이 나이가 들면서 구직 기회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사회 실업인구가 증가하고 사회 안정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컨라오족이 나타난 가장 중요한 원인이 자립심보다는 의존심을 더 많이 배우고 자란 ‘중국 특색의’ 독생 자녀 세대의 출현에 있다는 얘기다.

한편, 이와는 달리 ‘사회구조적’ 문제를 컨라오족 출현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의견들도 있다. 이들은 현재 중국 사회가 직면하는 최악의 청년 실업률과 구직난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컨라오’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과거 일본이나 서구에서도 실업률의 증가가 캥거루족이나 니트족, 패러사이트 싱글족을 양산했던 것처럼 중국 역시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대부분의 컨라오족이 독생 자녀 세대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컨라오족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조기교육’을 언급한다.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자녀에게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워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조기교육?

한 네티즌은 “만일 컨라오족이 계속 ‘발전’하면 이는 미래 중국의 가정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가정 파괴범’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면서, 자녀가 무능력한 컨라오족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부모들이여, 제발 아이들을 그만 좀 끔찍이 사랑하라”고 주문했다.

중국 푸젠성의 한 초등학생이 쓴 작문 내용에는 ‘자라나는’ 중국의 미래 컨라오족의 ‘고민’이 담겨 있다. “우리 세대는 아들이 용이 되기를 바라고 딸이 봉황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단지 우리에게 사력을 다해 공부해라, 공부해라고만 하지 우리의 자립 능력을 키우는 것에는 의외로 소홀하다. 교과서는 단지 지식만을 줄 뿐 우리에게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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