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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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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에서 탈북자를 만나다

등록 2006-01-06 00:00 수정 2020-05-03 04:24

정치적 난민 지위가 허용되는 북한 출신으로 망명을 신청한 사람은 현재 5명
살길을 찾아 중국 거쳐 벨기에까지 오게 된 23살 A씨와 46살 B씨 인터뷰

▣ 브뤼셀=글·사진 도종윤 ludovic@hanmail.net

벨기에에는 매년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씩 난민들이 망명 신청을 한다. 대부분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이다. 놀라운 것은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이 중에 북한에서 온 사람들도 있다. 지금까지 벨기에 당국에 망명 신청을 한 북한인은 모두 5명이다. 벨기에에 최초로 난민 신청을 한 북한 사람은 1998년에 신청서를 제출한 C씨이며, 그는 얼마 전 까다로운 심사 절차를 마치고 벨기에 당국으로부터 정식 체류 허가증을 받았다.

유럽연합은 아직 공통의 난민 지위 보장제도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각 국가마다 심사 절차나 생활보장 정도가 다르다. 벨기에의 경우, 난민 지위 신청을 하면 정부는 최소 24일간 무조건 이들을 수용소에 입소시켜 관리한다. 수용소에 머무는 동안은 숙식을 제공받으며, 일정한 체재비를 받는다. 임시 거처로 옮겨야 할 경우에도 주거를 제공받으며 1주일에 50유로씩 받는다. 외출도 자유롭다. 또 정부가 지정해주는 곳에 가서 벨기에 언어(네덜란드어 또는 프랑스어)를 배운다. 체류 허가가 나면 당국의 관리하에 취업이 될 때까지 최저생활보장 대상자(C.P.A.S.)가 되고 정부로부터 일정 생계비(매월 625유로)를 지원받는다. 물론 체류 허가가 나지 않으면 추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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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과 구별하는 게 관건

벨기에에서 북한은 정치적 난민 지위가 허용되는 국가로 인정되므로 북한 사람인 것이 확인되면 체류 허가를 내준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조선족과의 구별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일부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조선족들은 북한인 행세를 하며 난민 신청을 시도하기도 한다. 따라서 벨기에 당국은 이들을 가려내기 위해 몇 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여전히 북한인과 조선족의 구분은 쉽지가 않다.

최근 국내에서 중국, 몽골,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에 퍼져 있는 탈북자들에 대한 연구가 늘고 있지만, 유럽에 정착하는 탈북자들의 사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북한인권 정보센터의 윤여상 소장은 “현재 국내에서 유럽에 있는 탈북자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으며, 폴란드와 노르웨이에 소수가 체류하고 있다는 정도가 알려졌다”고 말했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UNHCR)의 2004년 자료에도 유럽에 난민 신청을 한 북한인 통계가 나와 있지 않았다.

걷고 숨으면서 서너 달 걸려 도착

지난 12월17일 벨기에 당국에 난민 신청 중인 탈북자 두 사람을 만나 그들의 탈북 경위를 들었다. 탈북자 A(23)씨는 160cm 정도의 키에 다소 자란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있었다. 녹색 점퍼와 검정 구두를 신고 있었고 나이에 비해 앳돼 보였다. 그러나 정착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곤궁한 기색이 역력했다. 먼저 이민 당국에 제출한 진술서를 토대로 한 그의 이력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16살 때인 1998년 7월에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 처음에는 와룡이라는 곳에서 버섯 재배 일을 도왔다. 5년 동안 그곳에서 일하다가 옌지로 옮겼다. 거기서는 대중목욕탕에서 때밀이로 일했다. 한 2년쯤 일했을 때 주인의 아는 사람 중에 남한에서 온 사람이 유럽에 갈 것을 권했다. 유럽에서는 배고픈 사람에게 나라에서 먹을 것을 공짜로 주며 잠도 그냥 재워준다고 했다. 그동안 중국에서 번 돈 1만위안(약 120만원)을 주고 한국 위조 여권을 샀다.”

같은 자리에서 만난 다른 탈북자 B(46)씨 역시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감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정착한 지 1년이 넘었고 궁색한 기색은 없었다. 다음은 그의 이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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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에 결혼했으나 3개월 만에 이혼해 자녀는 없다. 2000년 겨울 광산에서 일을 하다가 실수로 광석 운반차를 탈선시켰는데 그로 인해 한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이 다쳤다. 처벌이 두려워 두만강을 넘었다. 이후 중국 농촌에 숨어살면서 3년간 허드렛일을 도우며 근근이 버텼다. 이때 남한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을 알게 되어 유럽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벨기에엔 어떻게 왔나?

A: 남한 아저씨의 권유에 따라 프랑스로 가기로 하고 모스크바를 거쳐 2005년 9월1일 파리 공항에 도착했다. 같이 온 사람들이 한 20명쯤 있었는데 모두 여행객을 가장했다. 북한 사람은 나 혼자였고 나머지는 중국인이었다. 거기서 모두 헤어졌다. 같이 온 안내인이 프랑스보다는 벨기에가 관대하니 그쪽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리고 브뤼셀행 기차표와 10유로를 줬다. 이때 한국 여권은 안내원이 도로 가져가버렸다. 브뤼셀에 도착해서는 길거리를 배회하며 혹시 한국 사람이 있나 열심히 찾았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경찰서를 찾아갔다. 경찰서에서는 말도 안 통하고 체격이 작아서 그런지 나를 고아원으로 보냈다. 고아원에서는 내가 한국말을 하는 것을 보고 한국대사관에 연락해줬다.

B: 브로커를 소개받아 중국 돈으로 3만위안(약 360만원)을 주고 유럽까지 가는 모든 편의를 제공받기로 했다. 우수리강 근처에서 조선족을 만나 그가 안내를 해줬다. 그때 남자 1명과 여자 1명도 동행했다. 화물차에 숨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동안 머물러 있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네덜란드까지 왔다. 다른 두 사람과는 네덜란드에서 헤어졌는데 영국으로 갈 거라고 했다. 나는 영국 입국이 힘들다는 말을 듣고 벨기에로 왔다. 벨기에에 와서는 경찰서를 찾아갔는데, 그때가 2004년 9월1일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서너 달 정도 걸렸다.

대사관 “탈북자는 처음 듣는 이야기”

한국대사관과 접촉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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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아원에서 9월7일인가 8일인가에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해줬다. 처음에는 여자랑, 그 다음에는 남자랑 통화를 했다. 북한에서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쪽에서는 북한에서 왔다는 증명서나 신분증(공민증)이 있는지 물었다. 어릴 때 중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그런 것은 없다고 했더니 자기들도 어쩔 수 없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를 끊고 한참 울었다. 많이 섭섭했다. 그리고 곧 난민 수용소로 옮겨졌다. 거기서 비로소 한국어 통역을 소개받았다.

왜 한국에 안 가고 벨기에로 왔는가?

B: 어떻게 한국에 가는가? 중국에서도 북한에서 온 것이 들통나면 당장 끌려간다. 고발하면 보상금도 준다. 웬만하면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그냥 살길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중국에 유럽으로 가려는 생각을 가진 탈북자들이 많은가?

A: 잘 모르겠다. 거의 숨어서 지냈기 때문에…. 간혹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북한 사람은 한눈에 서로 알아본다. 체격이 작고 옷이 워낙 남루해서…. 그래도 서로 아는 체 안 한다.

한국에 갈 생각이 있는가?

A: 한국에 가도 여기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여기서 군인이 되고 싶다.

B: 그냥 여기서 정착하고 싶다. 현재 프랑스어를 배우는 중이다.

한편, A씨가 지난해 9월에 한국대사관과 통화했다는 말을 듣고 벨기에 주재 한국대사관에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았다. 대사관 쪽의 한 인사는 통화에서 “대사관에서는 탈북자의 전화를 받은 적이 없으며, 만약 탈북자이더라도 공민증 등 북한인임을 확인할 만한 서류가 없으면 도움을 줄 수가 없다”고 밝히며, “혹시 조선족이 북한인이라고 거짓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되물었다. 덧붙여 “벨기에에 탈북자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귀순 및 망명자 처리 지침에 따라 탈북자가 직접 대사관에 와서 서면 접수하지 않으면 업무 처리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동포들, 탈북자에 관심 없어”

[인터뷰_ 원용서 한인 가톨릭 공동체 사목회장]

탈북자들도 남한 사람들에 대해 경계심 많아

원용서(68)씨는 탈북자들의 벨기에 정착을 도와주고 있다. 그는 30여 년 전에 벨기에로 유학했다가 이곳에 정착했다. 이후 조그만 무역회사를 경영하다가 최근에 일선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벨기에 한인 가톨릭 공동체 사목회장직을 맡고 있다.

탈북자들을 도와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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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벨기에 이민국에서 탈북자 C씨에 대한 통역을 의뢰하면서부터다.
주로 어떤 도움을 주나.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관청에 조사를 받으러 간다거나 서류를 처리할 일이 있으면 대리해준다. 한인 단체에 그들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가끔씩 집으로 불러 식사를 같이 하기도 한다.
벨기에 당국에서는 탈북자들에게 어떤 조사를 하나.

탈북자들은 불법 입국자이기는 하지만 난민 자격이 있다. 현재 유럽의 난민 신청 조건이 점차 까다로워지는 추세이지만, 북한은 정치적 망명이 허용되는 국가로 인정된다. 때문에 신청한 난민의 국적이 정말 북한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북한의 일상을 묻거나, 국기를 그려보라거나 또는 국가를 불러보라면서 일관성을 찾는다.
벨기에 당국은 탈북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민 신청을 하는 북한 사람들이 아직 소수여서 그런지 그다지 우려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요즘은 중국 조선족들이 탈북자 행세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특히 이 점에 신경을 쓴다.
한국대사관이나 한인 동포 사회에서는 이들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

전에는 탈북자들이 오면 그때마다 한국대사관으로 알려달라고 하더니 요즘은 관심이 없다. 탈북자들이 벨기에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탈북자들을 한인 종교단체 등에 가끔씩 데리고 가는데, 동포들이 그들에게 큰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탈북자들도 남한 사람들에 대해 아직 경계심이 많다. 동포들이 그들에게 먼저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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