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국책사업 운영하는 한국정부가 주목해야 할 대만 제4핵발전소 논란
55년만에 여당 됐지만 꾸준히 건설 반대하며 국민투표 위해 노력중
▣ 타이베이·공랴우=이버들 녹색연합 녹색평화국 간사 swithy@greenkorea.org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바람이 몰려든다. 서울~제주도 왕복 거리인 대만이지만, 날씨만큼은 열대기후다. 그래서인지 타이베이 시내 어디를 가도 냉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실제 대만은 1인당 연간 에너지소비량이 3.63TOE((석유환산톤·2001년 기준)으로 에너지 다소비 국가이지만, 국가적으로 핵발전소를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환경운동단체 활동가로서는 가히 충격적인 일이다. 대만의 원전 발전용량은 5144MW. 전체 전력의 16%다. 모두 6기가 가동 중이며 논란의 대상인 2기는 건설 중이다.
공랴우항에서 인천 앞바다를 떠올리다
6월3일 타이베이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북쪽으로 달렸다. 제4핵발전소(대만에서는 원전 2기를 묶어 ‘제1발전소’로 부르기 때문에 모두 8기가 가동·건설 중인 현 상황에서는 제4발전소까지 있는 것임) 2기가 건설 중인 타이베이현 공랴우 지역이 나왔다. 다른 6기 원전은 1960년대에 계획해 1980년대 중반 모두 가동됐지만, 이곳은 1980년대 중반 계획돼 1992년 공사를 시작했으나 거센 저항에 부딪혀 현재 공적률은 59.8%이다. 20년 이상 반핵운동을 하고 있는 린민산(林旻善)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그는 먼저 우리를 공랴우향 푸롱 지역의 샨시강 근처로 안내했다. 대만에서 가장 산세가 좋다는 이곳은 바위절벽과 해안선이 일품이었으나 원전 건설을 위한 해변 골재 채취로 바다와 강의 경계마저 모호해졌다. 그는 “수심이 10m 이상 깊어지고 일부 해안선이 붕괴해 익사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며 “지역 주민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여름 휴가기간에만 다른 곳에서 모래를 실어와 콘서트를 여는 등 임시방편으로 대응한다”고 말했다. 바닷모래 채취로 몸살을 앓는 인천 앞바다의 모습이 겹쳐졌다.
대만 남쪽 제3핵발전소를 빼고는, 모든 원전이 대만 북쪽 끝에 나란히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원전이 배출하는 온배수로 속을 끓인다. 필자가 방문했던 제1발전소에서는 1초에 90t의 온배수가 쏟아졌다. 원전 건설 전에는 바닷모래 채취와 부두 건설로 환경 피해를 입고, 원전 가동 뒤에는 어장이 파괴돼 이중고에 시달린 것이다. 전기는 타이베이에서 쓰고, 피해는 공랴우 주민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주민들이 더욱 분노하는 것은 시공사가 일본의 히타치·도시바라는 점이다. 일제 치하 암흑기(1895∼1945)를 거친 탓에 반일 감정은 여전하다. 발전소 터가 항일기념관 근처인 점도 분노를 촉발시켰다. 시시민 대만국립대학 교수는 “반핵운동은 기본적으로 환경운동이지만, 지역간·세대간 형평성 문제가 심하게 일어난다는 점에서 보면 정치운동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제4핵발전소는 사연이 많다. 국민당 정부는 1980년에 터를 사놓고도 발전소 건설계획을 공개하지 않았다. 1989년 발전소 건설계획을 알게 된 주민들 사이에서 저항이 싹텄다. 1992년 공사 시작으로 본격화한 저항에는 당시 야당 민진당과 대만 환경보호연맹 등 진보세력 시민사회가 함께했다. 이들은 국민당의 강압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집권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와 정권 교체 운동의 기치로 원전 반대운동을 선두에 내세웠다. 숨쉬기조차 힘겨웠던 1960년대에 건설 여부가 결정된 제1·2·3발전소와는 달리 제4발전소는 반대운동의 여지가 충분했다. 또 원전 건설은 국민당의 일방적 정책 결정의 표상으로 비쳐졌다.
일본 시공사·국민당 압력에 공사 재개
대용량의 전력을 한꺼번에 생산·수송하는 중앙집중식 시스템인 원전은 전력소비 패턴에 상관없이 일정량의 전력이 소비돼야 한다. 또 원전의 가동 여부는 다른 소규모 발전원들의 가동 여부를 결정짓는다. 전력시장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 이유다. 이런 원전의 특성도 독재정권 이미지와 맞물려 민주화 반대운동에 힘을 더했다. 반핵운동 진영은 주민투표를 효과적인 수단으로 내세웠다. 공랴우향과 타이베이현, 타이베이시, 일란현에서 네 차례 주민투표가 이뤄졌고, 건설 반대가 우세했다.
반대운동 진영은 주민투표 결과를 인정하라고 촉구했지만, 국민당 정권은 “법적 효과가 없다”고 맞섰다. 그러나 55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천수이볜 정권은 공약대로 2000년 10월27일 발전소 건설 중단을 선언했다. 국민당 등 원전 추진 세력의 반격이 시작됐다. 국민당이 다수인 입법원(국회)에서는 총통 파면 논란까지 일었다. 제4핵발전소 제조사인 미국의 GE사와 일본의 히타치·도시바도 위약금을 내걸고 건설 요구 압력을 가했다. 보수 성향의 대법원회(헌법재판소)가 건설 중단을 위헌이라고 결정하자, 결국 행정원은 궁지에 몰렸고 이듬해 2001년 2월14일 건설 이행을 표명하고 말았다.
발전소 건설 공사는 재개됐지만 반대운동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환경단체들은 건설지역 주민들에게 요오드 대체재인 ‘포타슘’(방사성물질 대체재로 방사능 누출 사고 때 예방 효과가 있음)을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만 환경보호연맹의 허쭝쉰(何宗勳) 사무국장은 “전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방사능 예방약을 제공하는 것이며, 현재는 발전소 5km 이내 주민들에게 지급되지만 30km로 넓히기 위한 운동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국민투표 실시는 반대운동 진영의 주요 요구였다. 천수이볜 총통은 이에 호응해 국민투표를 약속했지만, 입법원을 장악한 국민당은 2003년 12월 주민투표법을 서둘러 통과시켰다. 총통은 국가안보 사안만 국민투표를 제안할 수 있고, 유권자 5% 이상의 촉구 서명과 입법원의 과반수가 찬성해야 국민투표를 치를 수 있도록 한 악법이었다. 민진당이 과반수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투표가 실시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반대 진영에서는 대법원회에 위헌 소송을 냈는데 현재 계류 중이다. 6월9일 대만환경보호연맹 전 의장 장궈룽(張國龍) 교수가 환경부 장관에 취임한 것도 반대 진영에는 희소식이다. 대만의 반핵운동이 거센 또 다른 이유는 핵폐기물 문제로 전체 사회가 이미 한번 ‘반핵 의식화’된 덕분이다. 통조림공장으로 속인 채, 중저준위 핵폐기물 저장고를 란위 섬에 지었던 정부는 주민들의 반대 여론에 의해 지난 2002년까지 중저준위 핵폐기물을 섬 밖으로 반출하기로 약속했다. 1997년에는 핵폐기물을 북한으로 보내려다 포기한 적도 있다. 현재 약 9만7천드럼이 그대로 란위 섬에 보관돼 있고 발전소별로도 폐기물이 쌓여 전체 19만드럼(2003년 기준)이 쌓여 있다.
정치권 “추가 건설은 없다” 이미 합의
대만 정치권은 ‘비핵가원(非核家園) 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 제4핵발전소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더 이상 원전을 짓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다. 대만 사례는 사회적 합의와 건강한 논의가 환경 문제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 6월16일 한국 정부는 또다시 핵폐기장 터 선정 공고안을 냈다. 20여년째 실패했다고 자평하면서도 20여년째 똑같은 방식을 고집한다. 거액이 투자된 국책사업에 관한 재고나 핵폐기물 처분 문제는 모든 나라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해결 과제다. 사회적 합의와 논의에 앞서 다시 한번 ‘터 사냥’에 나선 정부는 또 다른 ‘부안’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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