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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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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절망, 그 사이 어중간한…

등록 2005-03-10 00:00 수정 2020-05-03 04:24

[쓰나미, 그 뒤]

타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팡응아 지역에서도 가장 처참하게 당한 반남켐 마을 어민들의 속사정

▣ 팡응아=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asianetwork@news.hani.co.kr

“이젠 겁날 것도 없고, 그냥 바다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야.” 사람들은 바다를 그리워한다. 바다는 하느작대며 간지러운 물결을 일으킨다. “물이, 봐, 전보다 훨씬 맑아졌어. 고기란 놈들이 더 많아졌다는 거지. 빨리 오라는 거야.” 그렇다. 바다는 그 전보다 더 맑고, 더 부드러운 손길로 사람들을 꼬드긴다.

탁신은 왜 ‘보답’을 약속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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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6일 안다만 해역을 낀 타이의 6개 주를 덮친 쓰나미는 418개 마을을 휩쓸어갔다. 그날, 팡응아(Phang Nga)주는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처참하게 당한 곳이 반남켐(Ban Nam Khem) 마을이었다. 고기잡이를 대물림해왔던 1500가구 1만여명 주민 가운데 15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마을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삶을 부쳐왔던 고기잡이배도 모조리 부서졌다. 그 괴물 파도가 지나간 뒤, ‘작은놈’ 270척 가운데 30척과 ‘큰 놈’ 130척 가운데 30척만 겨우 살아남았다.

“이번 난리통에 한수 단단히 배웠어. 파도가 뭔지, 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도….”

25년째 바다를 넘나들어 더 배우고 말고 할 것도 없을 법한 솜끼앗(42)이 새삼스레 배움을 말하는 사이, 괴물 파도를 경험한 반남켐 사람들은 저마다 “이젠 어떤 파도도 무섭지 않다”고 맞장구친다. 그들 얼굴에서는 쌀랑이는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한데 사람들이 바다로 뛰어들고자 안달해온 반남켐에는 좀 ‘수상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 ‘절망류’도 있고 ‘희망류’도 있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뒤 64일이 지난 2월28일, 눈에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절망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아주 없어 보이지도 않는 어중간한 상태다. 사실은 희망이 너무 넘치면서 생긴 이상기류인 듯도 싶고.

동네를 돌아보면 이런 느낌이 든다. 예컨대 검은색 다음에는 흰색이 돋아나 ‘흑백사진’의 완성도를 높여가야 할 판에 느닷없이 ‘총천연색 사진’이 태어나고 만, 그런 당혹감 같은.

문제는 바로 그 다채로운 ‘색깔’이다. 이 한적한 반남켐이 “쓰나미에 가장 심하게 얻어터졌다”고 세상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부터 마을에는 정치판이 벌어져 온갖 ‘색깔’을 뿌려댔고, 사람들은 그 현란한 ‘색깔’에 취해버렸다.

“신세진 이들에게 반드시 보답하는 게 내 성격이다.” 탁신 시나왓 총리는 지난 2월6일 총선이 끝난 뒤, 팡응아주 주민들에게 비록 그 보답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매우 감성적인 인사치레를 했다. 그 탓에 반남켐 사람들도 한껏 들떴다. 제1야당 민주당의 전통적 요새인 남부지역을 깨고자 쓰나미 피해복구를 진두지휘하며 이른바 ‘쓰나미 정치’를 통해 남부 원정을 벌였던 탁신 총리의 타이락타이당은 기어이 남부 54개 선거구에서 1석을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바로 그 1석을 건진 곳이 쓰나미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팡응아주였다. 그 뒤 팡응아주 반남켐에는 온갖 ‘색깔’의 정치적 약속들이 몰려들었다. 반남켐은 피해 규모 못지않게 지원사업 약속들도 덩치를 더해갔다. 국제지원단체들도 보란 듯이 몰려들어 세계적 ‘색깔’을 한껏 덧칠했다. 2월 들어선 칼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에 이어 조지 부시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함께 반남켐을 거쳐가면서 ‘색깔잔치’ 판을 키워놓았다.

쓰나미가 박살낸 고기잡이배가 6개 주를 통틀어 3304척에 이르건만, 어느덧 세계적 ‘사교장’처럼 변한 이 반남켐에 배 한두척은 기증해야 국제적인 구호단체나 자선사업가 대열에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

구호사업 혜택은 평등하지 않더라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반남켐 사람들은 ‘배신감’ 같은 걸 느끼기 시작한 모양이다. ‘총천연색 사진’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쓰나미가 강타한 뒤, 마을 사람들을 모아 반남켐 어협을 조직한 상이암 삼란랏(53)은 ‘총천연색’ 소문과 달리 피해지원 사업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지만 나라 안팎으로부터 약속받은 ‘작은 놈’이 300척도 넘어. ‘작은 놈’은 이제 더 필요도 없어. 어업이 될 수 있도록 ‘큰 놈들’ 수리를 지원해줘야지….” 바닷가에 엎어진 ‘큰 놈’을 수리하고 있던 사람들은 아직도 ‘희망기’가 영 사그라든 것 같진 않지만, 아무튼 저마다 “입에 발린 정부 말은 이제 듣지도 믿지도 않는다”고 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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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놈’들 피해는 어림잡아 한 척에 300만~400만바트(9천만~1억2천만원)다. 전체로 따지면 1억바트가 넘는다. 이걸 ‘작은’ 놈과 똑같이 취급해버리니… 바다 나가지 말라는 거지, 뭐.” 상이암이 핏대를 올린 것은 ‘작은 놈’ 피해에 3만바트, 그리고 완파나 분실에 6만6천바트를 보상하겠다는 정부가 ‘큰 놈’은 기껏 8만6천바트와 20만바트로 각각 뭉뚱거렸기 때문이다. 그는 “‘큰 놈’이든 ‘작은 놈’이든 피해 상태에 따라 보상하는 게 원칙이고, 그 보상금이 먹고 마시자는 게 아니라면 배를 수리할 수 있도록 현실에 맞춰주어야 한다”며 소리를 높인다. 둘러앉은 이들은 “정부가 관련 공무원을 파견해서 어선 피해조사도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고 발끈한다.

“정부가 뭐든 다 해줄 듯 약속해놓고, 우리가 말만 꺼내면 무조건 문서로 제출하라니! 평생 고기잡이만 해온 우리가 뭘 알아야 문서를 만들든 그림을 그리든 할 거 아냐?”

상이암은 ‘정부를 상대로 뭘 좀 해보자고’ 어협을 조직했지만 참가자가 15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이번에는 또 긴 한숨을 내쉰다. 실제로 반남켐에는 ‘상이암’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동네에 살면서 상이암과 다른 경로를 통해 지원을 얻어낸 아누삭(58)은 “정부를 타박한다고 될 일이 있나”며 상이암이 ‘설치고 다니는’ 이 어협에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낸다. 말하자면, 한 마을에서 복구자금을 타내는 일도 여러 갈래로 찢어져 있다는 뜻이다. 저마다 먹고살기가 시급한 판에, 누가 옳은지를 따지는 건 팔자 편한 이방인의 논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글깨나 배우고 말발 센 이들은 정부든 외국단체든 찾아다니며 개인적으로 지원을 받아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멍통이야.” 주고받던 말끝에 상이암의 입을 통해 반남켐의 분열상이 드러난다.

괴물 파도 쓰나미는 가진 자든 아닌 자든 ‘비교적’ 가리지 않고 휩쓸어갔지만, 그 뒤끝인 복구작업에서는 파괴를 통해 맛봤던 ‘평등’마저 사라지고 만 셈이다. 못 배우고 없는 이들은 ‘간 떼이고 또 장 떼인’ 꼴이 되었다. 누가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구호사업도 ‘잘난 놈’ ‘못난 놈’ 가려가며 집어주는 세상이라면.

그러니, 그 많은 약속들이 진짜 물건이 되어 도착할 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 마음에는 이미 온갖 빛깔 장미꽃이 한없이 피어올랐고, 그 마음속 장미를 놓고 사람들은 내 빛깔과 네 빛깔을 가리며 서로를 흘겨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총천연색 사진’에 눈만 아프다

햇살이 따갑게 쪼아댄다. 바다가 보석처럼 반짝일수록, 마주 본 마을은 어둑한 기운마저 든다. 복구작업에 나선 군인들도 흐느적거리며 응달로 기어든다. 마을 사람들은 그 군인도 또 무너진 집도 그저 ‘개 닭 보듯’ 지나친다.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그렇게 집보다는 배에 더 마음이 갈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정부가 안전지대에 만들어준 임시 숙소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루 종일 바다를 쳐다보다가 해가 지면 몇몇 바닷가 집들에 모여 잠을 잔다. 언제쯤 이들이 온전한 바다 사나이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튼 반남켐 마을에는 지금 너무 많은 ‘총천연색 사진’들이 나붙어 있다. 그러나 그 ‘총천연색 사진’들은 피사체에 초점도 잘 맞지 않을뿐더러 심도마저 너무 깊어 눈이 아리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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