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고급 전문인력 유출 심각… 선진국과의 격차·연내 불균형 발전 심화 등 악영향 우려
▣ 나이로비=양철준 전문위원 yang.chuljoon@wanadoo.fr
나이로비대학에 재직 중인 키네네와 무티소 교수는 점점 심화되고 있는 두뇌 유출을 이렇게 개탄한다.
“해외에 나가 있는 케냐인들이 본국에 송금하는 돈이 가족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데 요긴하게 쓰일 뿐 아니라 케냐 경제에도 상당히 기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대에 자신의 전문지식이나 역량을 펼쳐 보일 기회를 상실하면서까지 케냐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급인력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자신들이 연마한 전문지식을 활용하지도 못하고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심각한 손실이라고 생각한다.” 무티소 교수는 잇달아 문제점을 제기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실업 문제가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지만 정작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지극히 어려운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전문분야의 고급 두뇌들이 대부분 외국으로 빠져나가 정작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르네상스’라는 장밋빛 청사진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르네상스를 구현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들이 아닌가?”
해마다 2만명 이상 떠나
아프리카에서의 인력 유출이 결코 최근에 불거진 현상은 아니다. 4세기 이상의 오랜 세월 동안 진행된 역사적 현상이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강제적이었던 두뇌 유출이 오늘날에는 자발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 노예무역이 과거에 신대륙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한 목적의 단순 노동력 유출(brawn drain)의 성격을 띠었다면 오늘날은 선진 개발 지역으로의 두뇌 유출(brain drain)이 주류를 이룬다. 역사적으로 노예무역은 가장 대규모로 진행된 인력 유출로서 아프리카가 세계사의 후미진 구석에 자리잡을 수밖에 없게 된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돼왔다. 노예무역과 식민지 수탈이 신대륙과 유럽에서는 자본 축적과 산업 발달의 동인으로 작용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인적 자원의 수탈로 사회 발전의 가능성을 거세당하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기니의 대통령이었던 세쿠 투레는 “아프리카에는 노예상인들이 저지른 범죄적 행위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다. 오늘날까지도 아프리카의 잠재력이 인구 부족으로 인해 그 잠재적 실현 가능성을 제약받고 있다”고 통탄하며 노예무역이 아프리카 대륙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고발한 바 있다. 짐짝처럼 배에 실려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의 농장과 광산에 동원된 노예의 수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약 15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대부분이 청·장년층 인구였기 때문에 노예무역은 필연적으로 농업과 경제 발전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또 노예를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특정 부족을 이용하거나 노예무역에서 토착 지배계급과 협력함으로써 부족간 갈등과 반목을 부추겼고 이는 훗날 부족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노예무역이 강요된 형태의 인력 유출이었다면 현재 진행되는 인력 유출은 그야말로 푸른 풀밭을 찾아 떠나는 ‘자발적 아웃 오브 아프리카’인 셈이다. 구미 선진국에서 활동하는 아프리카 출신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3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인력 유출도 점점 급증하고 있는데 공신력 있는 기관들이 밝힌 숫자가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한다. 국제이주기구(IOM)와 유엔아프리카경제위원회(ECA)의 조사에 따르면 1960년부터 1975년까지 15년 동안 2만7천명 이상의 고급인력이 아프리카를 떠나 미국이나 유럽에 정착한 것으로 집계됐다. 1975년에서 1984년 사이에는 4만명, 1985년부터 1990년까지의 기간에는 의사, 대학교수, 기술자 등 6만명의 고급인력이 아프리카를 떠난 것으로 집계된 것으로 보아 두뇌 유출 혹은 인적 자본의 도피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해마다 2만명 이상의 전문인력이 탈아프리카 행렬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통계에 잡히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전문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에서 10만명 이상의 고급인력을 불러들이는 데 약 40억달러 이상을 지출하는 것으로 밝혀져 전문인력 부족이 아프리카에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케냐의 경우만 하더라도 지난 5년 동안 주요 국립대학 교원 100여명이 대학을 떠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거나 북미, 유럽 등지로 떠난 것으로 밝혀졌다. 케냐의 주요 교원양성 대학인 케냐타대학의 경우 지난 3년 동안 20여명의 교원이 빠져나가 학사 일정의 차질과 학문의 질적 저하를 부채질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교수, 의사, 과학자, 엔지니어 등 전문 기술인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으나 이들을 대체할 만한 인력도 없고 이들 핵심 인력을 잔류시킬 만한 뚜렷한 묘책도 없어 전문인력 시장의 공동화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빈국이 부국 의료 지원하는 꼴
물론 두뇌 유출의 근본 원인은 개인적 동기이고, 개인적 동기는 주로 경제적 이유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형편없는 급여 수준, 열악한 교육 환경과 불안정한 고용 조건,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한 잦은 학사 일정 변경, 양심적 지식인의 탄압 등 제반 요인이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해 전문인력의 탈아프리카를 재촉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구미 선진국으로 향하지만 나미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츠와나 같은 역내 국가로도 이동하는데, 고도로 숙련된 전문인력의 유출은 선·후진국간 격차의 심화와 역내 국가간의 발전에서도 불균형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부족한 전문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높은 임금을 지불하면서까지 주로 구미 국가들로부터 전문가들을 초빙해 해결을 모색하고 있지만 구미 지역에서 초청한 전문인력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직면한 난제들에 대한 현실적 맥락의 경험과 지식이 부족해 이들이 수립한 정책이나 계획이 현실적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문인력의 부족이 특히 두드러진 분야는 의료와 보건 분야이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가 점점 보건과 의료의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가나, 짐바브웨, 케냐,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영어권 아프리카 국가에서 양성된 의료인력이 미국, 캐나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주로 활동함으로써 빈국이 오히려 부국의 의료를 지원하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까닭에 정작 의료인력이 절실히 필요한 아프리카는 전문 의료인력의 부족에 직면해 있다. 선진국들이 인구 10만명당 평균 222명의 의사가 의료행위를 제공하는 데 반해 우간다는 6명에 불과하다. 또 인구 10만명당 간호사의 수가 선진국의 경우는 1천명 이상인 데 반해 아프리카 말라위는 고작 17명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어서 아프리카의 보건·의료 체계가 의료인력의 유출로 얼마나 큰 타격을 받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등 각종 질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가 험난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두뇌 유출은 곧 국부 유출
이와 함께 고급 전문인력의 유출은 국부 유출이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증폭된다.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많은 국가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성된 인재가 떠난다는 것은 결국 구미 선진국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저개발국 국민의 세금이 사용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국 내 대학 교육 수준의 질적 저하로 많은 학생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이 유학생들이 해외에서 지출하는 비용도 막대하다. 케냐 조모 케냐타 농업기술대학의 부총장을 역임한 라테모 미치에카는 해외에서 공부하는 케냐 출신 유학생들이 연간 지출하는 비용이 100억실링에 달하는 반면, 케냐 내 6개 국립대학의 연간 예산이 40억실링에 불과하다고 개탄하며 심각한 자본 유출을 우려했다. 결국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교육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오히려 자본 유출을 막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라의 발전에도 긴요하다는 것이다. 계속되고 있는 두뇌 유출을 반전시키지 못한다면 ‘아프리카의 르네상스’라는 구호는 공허한 수사에 그칠 것이다. 아프리카의 르네상스를 실현할 주체들을 머무르게 하려는 다각적인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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