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중국 페미니즘의 열린 가능성

등록 2000-12-13 00:00 수정 2020-05-02 04:21

책으로 보는 세계/

현대문명에서 과학이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지만, ‘과학성’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삼련서점 펴냄/ 2000년)은 중국의 페미니스트들이 과학 영역에 만연된 성적 불평등, 남성 편견주의를 비판하고, 페미니즘 시각에서 과학을 “새롭게 건설”하기 위해 발간한 학술서이다.

은 중국의 대학교 내에 여성학과 설립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의 편저자 중 한 사람이자 중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중 한 사람인 리샤오장 교수는 “학과가 설립되지 않으면, 또 학과를 기초로 한 연구 과정이 없으면 ‘과학’은 어디로부터 생기겠는가?”라고 묻고 있다.

‘여성연구 학과화 과정 중의 몇 가지 문제’ ‘중국 여성사학에 대한 이론과 실천’ ‘인구학의 시각에서 본 여성문제 연구’ ‘학과화 시야 중의 중국 여성 사회학’ ‘페미니즘 문학비평의 중국적 사고’ 등 20편의 소논문들을 싣고 있는 이 책은 중국의 페미니스트들이 부딪히고 있는 현실적 어려움을 다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여성학과 설립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 당국 및 기타 학과들과 밀고 당기기를 계속해야만 할 정도로 중국의 페미니스트의 입지는 좁기만 하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여성성’을 상실한 데에도 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회주의 건설기와 문화혁명기간 동안 중국 여성들은 “남성이 할 수 있는 것이면 여성도 할 수 있다”는 ‘비성’(非性)적 혹은 ‘무성’(無性)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자신의 여성성을 상실했다. 여성성을 회복하려는 새로운 흐름은 문화혁명이 끝난 뒤에야 시작되었다. 80년대의 성찰적 반성을 근거로 중국의 페미니스트들은 95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세계여성대회를 통해서 질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95년 이후 서구 선진국 및 발전도상국의 페미니스트들과의 폭넓은 대화와 교류, 젊은 해외 유학파들과 본토 페미니스트들과의 결합을 기반으로 각 대학교에서는 ‘여성연구센터’가 속속 설립되었다. 은 짧은 역사를 가진 중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이 구축한 역량을 기반으로 중국 당국을 향해 여성학과 설립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한 책이다.

“서구 페미니즘과는 달리 중국의 경우 이론적 잡초를 제거한다면 ‘주변’에서 ‘주류’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에서 나타나듯이 이 책의 저자들은 중국 페미니즘의 앞날을 대단히 낙관하고 있다. 서구의 급진적 페미니즘을 배제하고 이론의 본토화를 추구해나가려는 중국 ‘페미니즘의 학과화’ 추세는 막을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인다.

베이징=장영석 통신원yschang@public3.bta.net.cn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