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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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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모기, 피의 역사

등록 2002-07-17 00:00 수정 2020-05-02 04:22

선사시대부터 지독한 악연… 말라리아·뇌염 등 인류를 공포로 내몰아

미국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 유골이 전시돼 있는 최초의 인간 ‘루시’가 말라리아 감염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모기와 인간의 질긴 악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보다 수억년 먼저 지구상에 정착한 모기는 새로운 식단으로 인간을 반겼음에 틀림없다. 모기와 전염병에 관한 연구가인 앤드루 스필먼과 언론인 마이클 디 안토니오가 쓴 는 고대 로마에서 1999년 미국 뉴욕의 서나일 바이러스의 재앙에 이르기까지 모기와 인간의 지난한 전쟁사를 요약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고대 로마를 비롯해, 인도와 메소포타미아, 중국에 이르기까지 말라리아는 이미 5,6세기부터 지구적인 풍토병으로 자리잡았다. 이집트의 많은 미라들은 말라리아 때문에 비장이 부풀어 있다. 대륙 간 교류가 많아지면서 모기 사회의 외교영역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17세기 중반 노예선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건너간 황열병 모기(이집트숲모기)다. 배 안에 저장된 식수통에 알을 낳아 증식한 노예선의 모기들은 많은 선원들을 감염시켰고, 미국에 착륙한 뒤에는 3년 동안 6천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어린 시절 황열병에 대한 면역성을 키운 흑인들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흑인들의 면역성은 이들이 농장노동에 적합하다는 ‘의학적’ 선언에 이르러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사고방식의 형성에 기여하기도 했다. 반면 이 풍토병은 외부인들의 침입을 막기도 했다. 1802년 반란을 일으킨 아이티섬을 되찾기 위해 군대를 파병한 프랑스는 병원균으로 무장한 모기의 공격으로 인해 15만명의 아이티인을 학살하고도 결국 무기도 변변치 못한 아이티에 무릎을 꿇었다. 쿠바를 침략한 영국군도 같은 운명을 겪어야 했다.

이처럼 전쟁에서 모기로 인한 풍토병은 때로 무기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말라리아 전염경로가 밝혀지기 전 나폴레옹은 영국군을 물리치는 데 이미 말라리아 확산을 이용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발을 묶은 것 가운데 하나도 모기였다. 당시 남태평양에 있던 맥아더의 병력은 적의 포화가 아닌 말라리아 모기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때부터 군의 말라리아 퇴치 노력은 전쟁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1999년 미국 뉴욕 전역을 뇌염공포로 몰고 간 서나일 바이러스는 첨단의 과학도 모기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그해 여름, 노인들을 중심으로 뉴욕주에서 62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그보다 여섯배 이상의 사람들이 뇌염진단을 받았다. 뉴욕시 관리들과 보건센터는 뇌염의 원인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지만 별 소득 없이 시간이 흘렀고, 도시 전체가 공포로 휩싸였다. 동물원 병리학자인 트레이시 맥나마라는 발병 즈음에 수백마리의 조류가 죽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조류들의 조직 샘플을 분석한 결과 새-모기-인간으로 이어지는 서나일 바이러스가 뇌염 발생의 원인임을 밝혀냈다. 질병의 정체가 발견된 그해 가을, 병원균은 이미 뉴욕의 인근 도시까지 퍼져나가 2천여명의 사람들이 감염된 상태였다. 더욱 난감한 것은 서나일 바이러스를 옮기는 붉은집모기가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식하는 모기였던 것. 뉴욕시는 트럭·헬기를 동원해 모기와의 전면전을 펼쳤다. 줄리아니 시장은 서나일 바이러스로부터 시민을 보호려는 시의 노력이 그해 최고의 업적이었다고 밝혔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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