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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일등주의, 프로야구는 운다

등록 2004-12-03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사상 최고 60억원에 심정수 영입한 삼성… 프로스포츠 못 살리는 ‘자유계약선수제도’의 거품을 아는가 </font>

▣ 박원식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pwseek@hani.co.kr

지난 11월23일 오전, 국내 프로야구 강타자로 손꼽히는 심정수(29)가 현대에서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4년간 최대 60억원(옵션 포함)을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날 ‘월급쟁이’들은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고, 초등학생 학부모들은 ‘백만장자’의 야무진 꿈을 꿨다.

심정수가 실제로 받는 돈을 계산해보면 입이 더 벌어진다. 심정수는 4년 동안 해마다 15억원씩 받는 셈이다. 계약금 20억원과 옵션 10억원을 제외하면 순수 연봉은 7억5천만원이다. 이를 하루 일당으로 계산하면 약 400만원이다. 실제 경기 수를 기준으로 하면 그의 몸값은 더 뛴다. 팀당 133경기를 치르는 것으로 계산하면 한 경기 출전 수당으로 심정수는 1100만원을 받고, 평균 3시간 걸리는 한 경기에 시간당 약 375만원이 지급된다. 그야말로 국내 프로야구 최고 수준이다.

관중 수입 육박하는 연봉 7억5천만원

메이저리그와 비교하면 어떨까. 정확한 비교를 위해 삼성 구단이 심정수 때문에 지급해야 할 돈을 모두 그의 몸값으로 계산하면, 심정수의 공식 몸값은 총 87억원(삼성이 현대에 지급해야 하는 보상금 27억원 포함)이다. 이를 달러(1천원 기준)로 환산하면 심정수는 연평균 217만달러 연봉의 선수다. 이는 메이저리그 연평균 최고 연봉자인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의 평균 연봉 2520만달러의 10분의 1도 채 안 되고 팀 평균 연봉 최고팀인 양키스의 평균 연봉 310만달러에도 못 미치지만, 메이저리그 최저연봉인 30만달러 선수 7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양키스와 삼성을 비교해보면 심정수의 연봉은 과한 측면이 있다. 양키스는 올해 377만명 관중으로 1억1600만달러(1160억원, 순수 입장 수익)를 벌어들였다. 이 수익은 로드리게스 평균 연봉의 5배에 달한다. 하지만 삼성의 올 한해 관중 수입은 8억5천만원(약 20만명)이다. 심정수의 순수 연봉이 7억5천만원이니까, 삼성은 관중 수입을 심정수의 연봉 지급에 거의 다 소진하는 셈이다.

국내 프로야구 구단은 선수단 연봉, 운영비, 숙박비 등 지출이 한해 150억~200억원이다. 반면 수입은 관중 수입 20여억원이 전부다. 매년 130억~180억원 이상의 적자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삼성의 이번 베팅은 ‘거품’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실제로 한 인터넷업체에서 최근 프로야구 자유계약 선수들의 몸값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 가운데 85.5%가 지나치게 높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팬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고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구단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선수들의 협의체인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FA 제도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프로야구 선수들에 대한 보상 차원의 제도다. 상품이나 용역이 기대치보다 비싸면 구매하지 않듯이 상품의 적정가치는 시장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라며 “야구위원회가 만든 450%에 달하는 선수 보상금이나 옵션을 포함하면 그다지 많은 금액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선수협회 대표를 맡고 있는 현대 전준호(35)는 “9년 동안 부상 없이 꾸준한 성적을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고액 계약으로 선수가 비난을 받을 일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강변’과는 달리 구단들은 삼성의 이번 베팅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오랫동안 프로 구단 운영 경험이 있는 SK 최종준 단장이 총대를 멨다. 최 단장은 “일부 자유계약 선수들의 몸값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삼성이 지향하는 일등주의가 프로스포츠계 질서를 혼란에 빠뜨린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과거 거액을 들여 유망 선수들을 싹쓸이했던 삼성화재 배구단과 수원 삼성 축구단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비난했다.

LG화재 배구단장과 LG축구단장을 지낸 최 단장은 98년 12월 삼성화재 배구단이 4개 구단이 합의한 드래프트 방식 안을 깨고 자유계약을 고집한 것이 배구판의 파행과 인기 하락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또 LG축구단 소속의 서정원이 프랑스 진출 뒤 국내로 복귀할 때 LG로 온다는 계약을 깨고 수원 삼성으로 옮긴 것도 축구판을 위축시킨 경우라고 설명했다.

삼성 “우승 위한 투자가 ‘돈질’이냐”

삼성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재하 삼성 단장은 “선수들이 돈을 받은 만큼 실력으로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 프로야구 성장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스카우트는 우승을 위한 투자다. 우리가 투자를 하면 왜 ‘돈질’이라고 야단인지 모르겠다. 삼성은 손 놓고 우승하지 말라는 얘기냐. 야구판이 축소 지향으로 간다면 FA도 폐지하고 스카우트도 하지 말아야 한다. 큰 틀에서 프로야구 전체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의 ‘투자’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프로야구에서 2000년부터 시행된 자유계약선수제도에서 늘 ‘큰손’으로 군림해왔다. 지난 2000년 자유계약 1호 김동수와 김현욱, 김기태 등에게 투자했다 낭패를 본 경험도 있다. 자유계약 선수들에게 거액을 투자하고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싼값에 다른 팀에 넘긴 것이다. 이런 엄청난 투자를 했음에도 한국시리즈 때는 별다는 재미를 못 봤다. 이정호 등 신인 투수들을 거액에 영입하고도 성적을 내지 못해 해당 선수 계약에 관련된 스카우트에게 손해배상을 물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터져나왔다.

삼성은 김응룡, 선동열 감독 영입 규모를 제외하고 지난 2∼3년간 자유계약 선수에만 230억원을 쏟아부었다. 결과는 딱 한 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2002년)으로 이어졌다. 최근 김응룡 감독의 사장 승진, 선동열 감독의 전격 취임, 총 166억원대의 자유계약 선수 영입 과정에 삼성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재용(36·삼성전자 상무)씨의 야구 사랑이 그것과 맥을 같이한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6월에는, 불발로 끝나긴 했지만, ‘다저스 대주주=삼성’ ‘구단주=이재용 상무’ 시나리오가 떠돌기도 했다. 야구광으로 알려진 이 상무는 2002년 삼성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 때 1차전과 5차전을 관전했고, 올해는 시즌 중에는 물론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지난 10월17일 잠실 야구장을 찾았다. 삼성의 최근 행보가 내년 시즌에 어떤 성적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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