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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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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네, 사별 후유증

등록 2005-04-14 00:00 수정 2020-05-03 04:24

[마음살리기]

▣ 우종민/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drwoo@freechal.com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게다가 꼭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어난다. 졸지에 미망인이 된 그의 경우도 그랬다. 평생 공무원 남편을 내조하며 살다가 이제 자식들 결혼만 시키면 그럭저럭 안정된 노년을 보낼 것 같았다. 그런데 아들 결혼을 한달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남편이 보증을 잘못 서서 퇴직금을 몽땅 날리고 빚까지 안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 그런 바보 짓을 했냐며 부부 싸움이 끊이지 않던 어느 날 남편은 집을 나갔고, 먼 동네 공사장에서 관리소장을 한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중환자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쫓아다닐 때는 그래도 나았다. 희망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남편을 잃고 상까지 치르고 나니 죄책감과 원망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편이 그리운 것도 아니었다. 사실 남편과는 둘째를 낳고부터는 잠자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 자식들 앞에서 내색은 안 했지만 무심한 남편과는 갈등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일을 치르니 내 탓에 그가 죽은 것 같아 괴롭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사별을 한 사람들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 복잡한 감정을 겪는다. 생전에 금슬이 좋지 않았다면 후유증이 더 크다. 이 미망인도 자식에게 도움은 못될지언정 경제적으로 이 지경을 만든 남편이 원망스럽고 미웠다. 그러나 내가 너무 몰아붙이는 바람에 돈 벌러 나갔다가 쓰러진 게 아닌가, 나 말고 다른 사람 만났더라면 천수를 누리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상태가 심해지면 비정상적인 ‘애도 반응’을 보이게 된다.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자기 몸에도 신체적인 이상이 와 건강을 잃기도 한다.

이럴 땐 믿을 만한 사람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 혼자 있으면 자책의 늪에 자꾸 빠지기 때문에 상담기관이나 정신과를 찾아서 속을 털어놓는 게 좋다. 이런 사연은 가족에게도 고백하기 어려운 법이다.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사람과 속마음을 공유하는 것도 좋다. 특히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감정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그의 죽음이 슬픈 것인지 내 감정에 빠져 있는 것인지 구별해야 한다. 죽은 사람 원망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오히려 자신을 더 괴롭게 할 수 있다. 제3자의 처지에서 그 사람을 탓할 부분이 있다면 탓할 수도 있다. 상실의 극복은 느리고도 어렵다. 떠난 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다면 대신 다른 사람에게 속죄하자. 서두르지는 말되, 산 사람은 살 방도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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