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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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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강박증

등록 2005-03-17 00:00 수정 2020-05-03 04:24

[마음살리기]

▣ 우종민/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drwoo@freechal.com

김 과장은 얼마 전 외국으로 출장을 떠났다. 호텔 방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은 노트북을 꺼내 인터넷에 접속하는 일이었다. 비행기 타고 오는 동안 중요한 이메일이 오지는 않았는지 확인을 해야만 마음이 놓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 시간 씨름한 끝에 간신히 접속에 성공했지만 김 과장은 허탈했다. 메일함은 스팸메일로 넘쳐나고 있었다.

평소 출근해서 노트북을 켜도 김 과장이 막상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건 한 시간이 지난 뒤다. 스팸메일을 남겨둔 채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러운 몸을 씻지 않은 채 자는 것처럼 찜찜하다. 그래서 스팸메일을 하나씩 하나씩 확인하며 지워나가야만 직성이 풀린다. 예전에 외국 바이어가 보낸 영문 메일을 스팸메일로 오인하고 완전 삭제하여 곤욕을 치른 뒤로는 스팸메일도 일일이 제목을 확인하고 있다. 어차피 하루만 지나면 다시 가득 찰 것을 빤히 알면서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최근 등장한 ‘이메일 강박증’이다.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로그아웃을 한 채 다른 일을 하려면 뒤통수가 당긴다. 여기에 ‘스팸 강박증’까지 보태지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스팸메일과의 전투로 만신창이가 된다. 업무는 뒷전, 이를 지우는 데 시간을 소비한다.

하지만 그까짓 이메일이 내 인생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건 난센스다. 난센스엔 난센스로 대응하는 법. 우선, 일주일이고 한달이고 스팸메일이 꽉 차서 넘치도록 내버려두자. 중요한 메일만 처리하고 스팸메일은 아예 지우지 말라는 뜻이다. 메일함에 내버려둬도 아무 일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확인해야 한다.

둘째, 메일은 읽는 즉시 답장을 하되, 분량이 세줄을 넘지 않게 한다. 이렇게 하면 왠지 권위적이고 차가워 보일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이도 남의 눈을 너무 의식하는 사람이다. 필자도 예전엔 장문의 이메일을 쓰곤 했는데, 어깨와 등의 통증으로 몇년 고생하고 나서야 습관을 바꿨다. 내 어깨 아픈 것보다는 좀 건조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게 낫다. 최소한 업무용 메일만큼은 용건만 간단히 쓰도록 습관화하자.

셋째, 메일 처리하는 시간을 정한다. ‘한 시간’이라고 딱 시간을 정해놨으면 반드시 그 시간 안에 처리를 한다. 퇴근할 때까지 못 읽은 메일은 그냥 내버려둬라. 그래도 세상은 돌아간다. 가끔은 아예 메일을 열어보지 않는 것도 좋다. 이건 응급상황에서 쓰는 방법인데, ‘급하면 자기가 다시 연락하겠지’ 이런 배짱으로 버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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