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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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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씹지 마세요

등록 2004-12-31 00:00 수정 2020-05-03 04:23

[마음살리기]

▣ 우종민/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drwoo@freechal.com

연금술은 돌이나 값싼 금속을 귀금속으로 만들려고 시작됐다. 비록 금을 만들 수는 없었지만, 그 과정에서 쓸 만한 화학물질이 많이 발견됐고, 덕분에 인간의 물질생활도 풍요로워졌다. 현대인에게는 새로운 연금술이 필요하다. 모든 사물을 금으로 바꾼다는 ‘현자의 돌’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새해부터 독자 여러분과 함께 ‘마음의 연금술’로 행복의 보석을 찾아나가겠다.

평소 스트레스를 잘 받는 사람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되씹기’이다. 마치 소가 되새김질하듯 게워내서 되씹기를 반복한다. 그것도 이미 지나간 일, 돌이킬 수 없는 일만을.

은혜는 물에다 새기고 원수는 돌에다 새긴다는 말이 있다. 이제껏 살면서 내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나 고마운 사람이 더 많은가, 아니면 내 인생을 망치고 해를 끼친 원수들이 더 많은가? 고마운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감사해야 할 일은 물에 흘러보내고, 얼마 안 되는 원수 같은 일만 돌에다 새기면서 산다.

부정적인 생각만 계속 되씹는다면, 우리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선 우울증에 잘 걸린다. 재발도 잘 한다. 이런 사람들의 뇌를 연구해보면 정서와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이 위축돼 있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세포가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매 앞에는 장사 없다. 뇌가 가진 맷집도 한계가 있다. 반복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세포가 죽는다. 결국 뇌가 쪼그라든다.

누가 나의 뇌를 위축시켰는가. 원수가 그랬는가?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이다. 처음엔 분명 스트레스가 한번 있었다. 이미 지나간 일 어쩌겠나 털어버리면 한번으로 끝난다. 하지만 백번을 되씹으면, 뇌에는 백번의 스트레스가 가해지는 셈이다.

뇌를 위축시키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소해 보이지만 좋은 방법이 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고마웠던 사람, 감사했던 일을 되새겨보자. 이런 건 아무리 되씹어도 괜찮다. 오히려 뇌는 더 힘차게 활동한다. 격렬한 운동이나 화끈한 노래방 나들이도 좋다. 그래도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면? 누군가와 수다를 떨어보자. 일단 끄집어내놓고 나면 문제를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다. 되씹는 것과 합리적 해결책을 찾는 것은 전혀 다르다.

물론 무지하게 미운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정말 밉다. 그런데 그 미움의 대가로 내 뇌를 쪼그라뜨릴 만큼 그렇게 미운가. 그것만 생각하자. 지금 나는 내 뇌에 무엇을 새기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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