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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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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약, 가짜 약

등록 2004-06-17 00:00 수정 2020-05-03 04:23

[몸살리기]

전세일/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 원장

원래 ‘플라세보’(Placebo)는 라틴어로 ‘나는 기분 좋을 것이다’(I shall please)라는 뜻이다. 전문적 의학용어로 쓰이던 ‘플라세보 효과’라는 말은 이제 일반인들의 일상 대화에도 쉽게 오르내리고 있다. 우리말로는 위약효과(僞藥效果)라고 하는데 문자 그대로 ‘가짜 효과’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가짜 약을 먹었는데도 진짜로 치료효과가 나타났을 때를 일컫는다. 가령 두통 환자 200명을 상대로 약 효과를 실험할 때 100명의 실험군에게는 진짜 약을, 다른 100명의 대조군에게는 밀가루나 설탕을 반죽한 가짜 약을 준 뒤 실험을 하는 식이다. 그런데 치료효과를 비교하면 놀랍게도 가짜 약을 먹은 환자의 약 30%가 실제로 증상이 호전된다. 이것이 바로 위약효과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정신적 착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좀더 깊이 살펴보면 놀라운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가짜 약을 먹고도 통증이 없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서 통증을 없애주는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많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이 약을 먹으면 내 병이 나을 것이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에 따라 인체 내의 생리적 변화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여주는 까닭이다. 이런 긍정적 위약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약을 먹으면 통증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피부에 두드러기가 나거나 위를 자극해 소화불량이 생기는 수도 있다”고 일러두면 가짜 약을 먹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두드러기가 난다든가 소화불량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부정적 위약효과로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생길 거라는 부정적 사고방식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이처럼 약의 효과도 생각하기 나름일 때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밀가루 덩어리를 먹고도 치료효과가 나타날 수 있고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과 인체의 생리적 변화가 서로 영향을 끼치는 관계에 있는 셈이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는 자기 건강에 스스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며,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는 자기 건강을 스스로 해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낙관론자는 위기에서도 기회를 보지만 비관론자는 좋은 기회에서도 위기를 느낀다”는 말은 건강 유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가르침이다. 플라세보는 단순한 위약이 아니라 기적의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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