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라종금에서 SK 비자금 사건까지 거센 질주… 곧 10여명 정치인 줄줄이 불려갈 듯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흔히 ‘대검 중수부’라고 불리는 이 검찰 내 수사기관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어떤 자리에서 물어봤다. 다양한 대답이 돌아왔다. “왠지 무섭다는 느낌이 든다.” “불려갔다 하면 그냥 걸어나온 사람이 없다는데….” “노태우, 뭐 그런 사람들 구속한 곳 아닌가” “글쎄, 잘 모르겠다.” 이렇게 설왕설래 꼬리를 물던 말은 이내 ‘모범답안’으로 이어졌다. “난 몰라도 되는 곳 같은데.”
대검중수부, 당신의 느낌은?
평범하게, 법을 크게 어기지 않고, 이마에 땀흘려 정직하게 먹고사는 사람들은 몰라도 되는 곳, 그런 곳이 중수부다. 말 그대로 ‘장삼이사’라면 평생 불려갈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각종 이권을 대가로 ‘검은돈’을 주고받는 정치인이나 전·현직 고위 관료, 재벌 등 기업에게 그 이름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요즘, 대검 중수부의 활약이 눈부시다. 거칠 게 없어 뵌다.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불과 6개월 남짓한 짧은 동안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의 재수사를 끝냈고, 지금은 현대 비자금 ‘150억원+α’에 이어 SK그룹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에까지 손을 댔다.
가장 먼저 착수한 나라종금 사건에선 로비 의혹이 아니라 로비가 실재했음을 밝혀냈다. 그 과정에서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용근 전 금융감독위원장, 염동연 민주당 인사위원, 김홍일 민주당 의원의 최측근인 정학모 전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등 무려 4명을 구속했다. 또 박주선 민주당 의원과 박명환 한나라당 의원 등 현역 국회의원 2명의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보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큰아들 김홍일 의원과 노무현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은 불구속 기소해 재판에 부쳤다.
이 사건이 끝나기 무섭게 대북송금 특검이 넘긴 현대 비자금 ‘150억원+α’에서는 지난 8월14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구속하는 개가를 올렸다. 권씨는 8월31일 200억원 수수 혐의(특가법의 알선수재)로 구속기소했다. 중수부는 특검이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기소를 포기했던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도 150억원 뇌물수수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그뿐이 아니다. 추석 연휴 직전까지는 현대쪽 비자금을 받은 혐의가 있는 여야 의원 등 정치인 5~6명이 차례로 소환될 예정이다. 8월 중순께부터 본격화된 SK해운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수사도 예측불허의 파장이 예상된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현대 비자금 수사와는 별도로, SK해운에서 거액의 비자금이 조성돼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단서가 있어 중수1과에서 이를 조사하고 있다”며 “여기서도 일부 정치인의 금품수수 혐의가 나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결국 현대와 SK, 양쪽을 합쳐 경우에 따라 10명 안팎의 정치인들이 중수부에 줄줄이 불려올 가능성이 예고돼 있는 것이다.
이런 양적 측면만이 변화의 전부는 아니다. 현직 대통령이 “동지이자 동업자”라고 지칭한 안희정씨에 대해 두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례나, 그동안 여당인 민주당에 집중포화를 퍼부은 것 등은 주로 야당쪽을 겨냥했던 과거 정권들 초기의 사정(司正)에 비해 괄목할 만한 변화로 해석된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먼저 나서 ‘검찰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되레 야당인 한나라당이 ‘검찰 잘 한다’고 박수를 치고 있으니 뭔가 변해도 한참 변한 것”이라는 한 변호사의 ‘관전평’에는 최근 검찰의 변모가 반영돼 있다.
청와대-검찰 핫라인이 사라지다
그 맨 앞엔 중수부가 있다. 그래서 혹자는 “중수부의 르네상스”라고도 말한다. 이렇게 중수부가 ‘검찰의 르네상스’를 주도하게 된 배경으로는 몇 가지 요인이 꼽힌다. 우선 외부환경 변화로, 청와대와의 단절이다. 노 정권은 출범 이후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직접 나서 여러 차례 “검찰의 수사권 (행사)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DJ정권까지만 해도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파견 검사를 통해 검찰이 수사 또는 내사 중인 사안을 소상하게 파악하고, 때로는 제어까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청와대와 검찰을 잇는 ‘핫 라인’은 거의 사라졌다. 과거 표적사정을 지시하던 ‘청와대 하명사건’도 성격이 달라져 범죄첩보로 검찰에 넘겨지고 있다. 수사 착수 여부는 검찰이 스스로 정한다.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에 적혀 있는 대로, 중수부는 이제 “검찰총장이 명하는 범죄사건의 수사”(제6조)에 전념할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 이런 외부환경의 변화와 맞물려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은 ‘송광수 검찰총장-안대희 중수부장’ 라인의 공세적인 태도다. 지난 1999년 대구지검에서 ‘지검장-1차장’으로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은 대검에 포진한 지금, “거침없다”라는 평을 들을 만큼 수사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평검사-부장검사를 거치며 다양한 특별 수사 경험을 쌓은 안 중수부장은 “사건 욕심이 너무 많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의욕에 충만해 있다.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의 재수사는 안 중수부장이 지난 3월 말께 국회 청문회를 기다리고 있던 송 총장 지명자를 찾아가 “이 사건은 검찰의 신뢰회복을 위해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 결재를 받았다. 당시 송 지명자는 “비겁하게 (수사)했다는 얘기는 듣지 않도록 하자”는 짤막한 당부만 했다고 한다.

정식 취임 이후 송 총장은 수사에 관한 한 중수부장의 판단과 건의 등을 거의 대부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총장의 전공이 기획쪽이라서 수사는 잘 모르는 편이지만, 중수부(장)의 의견을 존중하고, 더 적극적으로 수사를 독려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오히려 편한 면이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현대 비자금 사건은 송 총장이 “비리가 있다는데 중수부가 손을 놓고 있어서야 되겠느냐”며 중수부장에게 먼저 수사 지시를 내렸다.
“백화점식으로 사건 벌인다”비판도
중수부의 최근 행보가 구조적인 비리, 그 가운데서도 정경유착이라는 ‘거악’(巨惡)을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검찰 안팎에는 ‘우군’이 많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건을 백화점식으로 벌여놓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중수부, 좀더 범위를 넓혀 검찰 특수부의 수사권은 절제를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며 가와이 노부타로 전 도쿄지검 특수부장의 말을 전했다.
“특수검찰은 정치가, 관료 등의 오직(汚職)과 같이 국가기관에 기생하는 암을 잘라내는 외과의사와 같은 존재다. 오직·탈세 등의 암이 만연한다면 국민들 사이에 법을 무시하는 나쁜 풍조가 생겨나고, 머지않아 민주사회는 붕괴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외과의사는 어디까지나 암에 걸린 환부를 잘라낼 뿐이지, 결코 정치를 잘 하도록 하게 한다거나, 정치의 흐름을 바꾸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밖에 없다. 검찰은 어디까지나 범법자를 재판에 세울 뿐이며, 결코 검찰이 일당 일파에 치우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강희철 기자 | 한겨레 사회부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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