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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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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의 정체는 무엇인가

등록 2003-04-10 00:00 수정 2020-05-02 04:23

파라믹소 바이러스냐 코로나 바이러스냐… 전문가 의견 엇갈려

사스(SARS), 즉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과 인간과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인간은 이 전염병의 병원체와 감염 경로에 대한 얼개는 대충 잡았지만 아직 정확한 것은 모르고 있다. 특히 정확한 병원체를 밝혀내고 이를 토대로 예방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에이즈처럼 몇십년이 지나도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난 2월 중순 중국 광둥 지역에서 사스 환자가 처음 발견된 이후 이 전염병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유명 방역기관과 연구소 등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첫 사스 환자가 보고된 지 한달 남짓 지나 과학자들은 사스의 정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맨 처음 사스의 진범 용의선상에는 파라믹소 바이러스가 올랐다. 홍콩과 캐나다에 있는 몇몇 연구진들은 이 바이러스를 사스의 진범으로 보고 있다. 반면 세계적인 명성과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와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등은 사스를 일으키는 진범이 코로나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집중 연구하고 있다.

파라믹소 바이러스와 코로나 바이러스는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유전물질인 핵산으로 DNA(디옥시리보핵산)가 아닌 RNA(리보핵산)를 갖고 있다는 점과 분자량, 즉 크기도 엇비슷하다. 정확하게는 파라믹소 바이러스의 입자 크기가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약간 크다. 핵산의 모양과 구조도 비슷하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증상도 비슷한 점이 많으며 잠복기 등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사스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서로 다른 답안을 내놓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두 바이러스는 완전히 다른 종류이다. 파라믹소바이러스과(科)에는 홍역 바이러스, 유행성이하선염 바이러스,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이 속한다.

현재로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무게 중심이 놓여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이며 닭, 돼지, 고양이, 소, 개 등 가축이나 애완동물에게도 감염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전염병 전문가들은 닭과 같은 가축의 몸 안에 있던 변형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 속으로 들어와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고 여기고 있다.

과거에는 환자의 몸에 있는 바이러스를 순수분리해 그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으나 최근에는 분자생물학 등의 발전으로 그 기간이 매우 짧아지고 있다. 바이러스를 순수하게 분리해 그 정체를 파악했다고 해서 그것을 질병을 일으킨 병원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사스 환자의 몸 안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는 것이 확인됐다고 해서 이 바이러스를 사스의 진범으로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정 미생물이 특정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결핵균 발견으로 1905년 노벨상을 받은 코흐가 제시한 네가지 가설을 만족시켜야 한다. 코흐의 네가지 가설은 △같은 질환을 가진 환자(숙주) 모두로부터 같은 병원체를 발견해야 하고 △이 병원체를 분리해 순수배양에서 자라야 하며, △순수배양한 병원체가 감수성이 있는 동물(숙주)에서 다시 같은 질병을 일으켜야 하고 △실험적으로 발병케한 동물(숙주)로부터 그 병원체를 다시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4단계를 완벽하게 거쳐야만 비로소 그 전염병의 원인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코흐의 가설은 역학(疫學) 또는 전염병학에서 금언처럼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사스의 정체 파악에 있어 4단계 가운데 겨우 1단계에 와 있을 뿐이다. 아직 갈 길이 훨씬 더 멀다. 그리고 인간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사스를 궤멸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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