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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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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평리조트, 누군가의 음모!

등록 2002-11-14 00:00 수정 2020-05-02 04:23

석연찮은 땅 거래와 가짜 외자유치… 공개매각 뒤로 미룬 채 이어지는 비밀스러운 일들

서울에서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 사람의 생활리듬을 최적으로 유지시켜준다는 해발 700m의 높이의 종합휴양지. 500만여평의 단지에 지난 1975년 국내에서 처음 문을 연 스키장과 48홀에 이르는 3개의 골프장, 4개 단지에 1천실이 넘는 콘도미니엄이 들어서 있다. 돈 있고 힘있는 사람이라면 하나쯤 회원권을 갖고 있다는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의 용평리조트는 꿈의 휴양지다.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현 명예회장)이 자동차사업과 함께 가장 애착을 많이 가진 곳이다.

김석원씨 둘째 누나에 몰래 땅 넘기다

용평리조트는 애초 쌍용양회의 한 사업부문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 4월 자금난에 봉착한 쌍용양회가 별도법인으로 분사해 지금은 (주)용평리조트가 됐다. 현재 지분 50%를 갖고 있는 쌍용양회는 올해 말까지 용평리조트를 팔아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을 갚기로 약속했다. 이제 용평리조트는 누구의 손으로 넘어갈 것인가 그러나 용평리조트를 인수하려는 기업들은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 일이다. 누군가 용평리조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비밀스러운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 최근 용평리조트 단지 등기부등본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용평리조트 단지 안 노른자위 땅 11만4300평의 소유권이 지난 99년 2월5일 쌍용양회에서 김석원 회장의 둘째누나인 의정씨에게 넘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매각가격은 평당 3천원, 총액 3억6200만원이었다고 회사쪽은 밝혔다. 그러나 부동산시장 관계자들은 현재 이 땅의 가치는 최소 100억원이 넘고, 개발할 경우 수백억원의 개발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 그런 석연찮은 거래를 한 것일까 쌍용양회 관계자는 “회사가 어려우니까 선친의 묘소가 있는 땅이라도 의정씨가 관리하겠다며 매각을 요청해 장부가격으로 넘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제 김 회장 선친 묘지는 매각토지 가운데 한 필지인 용산리 산 194번지 안에 있다. 호화묘역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 묘지는 현재 용인리조트쪽에서 사람을 두고 지키며 외부인의 접근을 막고 있다. 그러나 묘지 때문에 땅을 넘겼다는 회사쪽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매각토지는 모두 8필지로 11만평이 넘는다. 이 정도면 9홀짜리 대중 골프장(퍼블릭 코스) 하나는 충분히 지을 수 있는 규모다. 이에 비해 묘지 터는 많이 잡아야 2천여평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묘지관리 때문이었다고 해도, 땅 매매가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회사 재산을 빼돌리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는 것은 매각가격이 시가보다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지역 부동산업자들에 따르면, 용평리조트가 현재 분양 중인 버치힐 콘도는 땅 조성원가가 1평에 10만원가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매각된 땅은 최근 분양 중인 버치힐 콘도 건설지역보다 조건이 더 좋다. 버치힐 콘도 자리는 대체로 북서향이지만 이 일대 땅은 남향인데다, 경사가 완만해 용평리조트 단지 안에서 미개발상태로 남은 가장 좋은 곳 가운데 일부로 평가된다. 시장가격보다 아주 싼 표준지 공시지가를 봐도, 근처 용평스키장의 체비지가 평당 7만원, 용평 2차콘도 대지는 평당 50만원이 넘는다.

팬퍼시픽 리조트의 실체

상장법인이 대주주나 특수관계인과 부동산을 매매하거나, 임대차할 때는 공시를 해야 한다. 주주들이 이를 감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쌍용양회쪽이 이 땅을 판 사실을 공시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쌍용양회 관계자는 “매각은 이사회 의결사항이 아니었고, 당시 규정에는 공시대상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 유병철 공시심사실장은 쌍용쪽이 땅을 판 당시에도 ‘상장법인 등의 주요 경영사항 신고 및 사업보고서에 관한 규정’(5조1항6호)에 “특수관계인과의 부동산 거래를 했을 경우, 다음날까지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욱이 당시 자금난에 시달린 쌍용양회는 매각토지 가운데 일부에 설정된 조흥은행과 서울보증보험의 저당권도 소유권 등기 이틀 전 말소한 것으로 밝혀졌다.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선웅 변호사는 “장부가격으로 매각했어도 시가보다 싼 값으로 회사재산을 매각했다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행위로 매각결정은 형법상 배임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땅이 김석원 회장의 누나에게 넘어간 지 1년 뒤 쌍용양회는 용평리조트 사업부문을 별도법인으로 분사했다. 금융기관들이 쌍용양회에 대한 지원 조건으로 용평리조트를 분사한 뒤 매각해 그 돈으로 금융권 채무를 갚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외국계 컨설팅회사들도 용인리조트를 분사해 “외자를 유치”하라고 권고했다. 분사된 용인리조트는 현재 자본금 1900억원으로, 쌍용양회가 지분 50%를 갖고, 팬퍼시픽 리조트 인베스트먼트2(PPRI12)라는 회사에 지분 50%를 넘겼다. 당시 쌍용쪽은 “팬퍼시픽은 해외의 리조트 투자전문회사다. 외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팬퍼시픽 리조트는 말레이시아의 유명한 휴양지다. 그런 이름의 회사가 리조트 투자전문회사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당시로선 없었다. 그러나 팬퍼시픽은 국내 증권사가 만든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인 것으로 드러났고, 또 외자유치는 단지 돈을 빌린 것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금융계와 쌍용양회에 따르면, 팬퍼시픽은 영국 국적의 자본금 1천달러()짜리 페이퍼컴퍼니다. 당시 분사업무를 주관한 ㅎ증권 최아무개 전무가 대표였다가 지금은 같은 증권사의 김아무개 이사가 대표다. 페이퍼컴퍼니는 자기자본 없이 회사채(해외변동금리부사채, FRN)를 발행해 용평리조트 주식을 인수했다. 특히 팬퍼시픽이 회사채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원금과 이자에 대해 전액 보증을 섰다. 결국 팬퍼시픽이 보유 중인 용평리조트 지분 50%는 산업은행의 보증으로 해외에서 자금을 빌려 사둔 것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증권시장에서는 뒷날 되살 목적으로 주식을 별도로 확보해두는 이런 수법을 흔히 ‘파킹’(Parking)이라고 부른다.

베일에 가려진 해외자금의 출처

팬퍼시픽은 왜 만들었고, 해외자금은 어디에서 들어온 것일까 김 이사는 “우리는 투자목적으로 팬퍼시픽을 만든 것이 아니라, 단지 쌍용양회가 용평리조트를 분사할 때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준 것뿐”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의 말은 쌍용양회쪽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관리했다는 것을 뜻한다.

해외자금의 출처는 아직 베일에 가려 있다. 다만 산업은행이 보증한 액수가 ‘104억엔’으로, 일본 엔화로 결제됐다는 점에서 일본에서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현재 쌍용양회 최대주주인 태평양시멘트가 일본 회사고, 지난 2월 용평리조트 사장으로 취임한 김대욱씨가 쌍용 일본법인 사장이었다는 점은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끈다. 용평리조트가 분사한 2000년 쌍용양회 사업보고서를 감사한 삼일회계법인은 “회사의 채권, 채무 및 자금거래 등과 관련해 일부 조회 확인을 하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감사 의견을 ‘거절’했다.

쌍용양회 주거래은행인 조흥은행을 놔두고 국책은행이 페이퍼컴퍼니가 발행한 회사채를, 그것도 전액 보증해준 일도 비정상적이다. 산업은행 담당임원은 이에 대해 “팬퍼시픽과 쌍용양회가 보유 중인 용평리조트의 주식 전량을 담보로 잡았으므로, 우리가 손실을 입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절차가 문제다.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을 돕기 위한 정책적 차원에서 다른 기업의 회사채에 보증을 서준 것과 팬퍼시픽에 대해 보증을 서준 것은 성격이 다르다. 팬퍼시픽은 쌍용양회가 외자유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차입을 위해 만든 서류상의 회사에 지나지 않았으며, 산업은행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왜 그런 편법이 동원됐느냐는 질문에 “쌍용의 구조조정 방법은 정부 차원에서 동의해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시 산업은행 총재는 이근영 현 금융감독위원장이었다.

보증선 산업은행은 왜 방관하고 있을까

쌍용양회는 어쨌든 올해 말까지 용평리조트를 팔아 금융기관 빚을 갚는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11월 현재까지 실질적인 매각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공개매각 절차를 밟으려면 연말까지 남은 기간으로는 이제 사실상 불가능하다. 회사채를 보증한 산업은행쪽은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 2월까지 용평리조트가 매각되지 않으면 원금과 이자를 대신 물어줘야 할 형편이다. 그러나 산업은행쪽도 느긋하다. 산업은행은 올해 초 쌍용양회에 용평리조트의 매각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쌍용쪽은 컨설팅 회사에 회사가치 평가를 의뢰하는 등 움직임을 보였으나 더 이상의 진척은 없다. 회사쪽은 “쌍용정보통신이 매각되면 용평리조트는 매각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발을 빼기도 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연말까지 매각하든 말든 아무렇게나 하라. 안 되면 내년에는 우리가 매각작업을 벌인다고 말해두었다”고 설명했다. 만기가 연장되지 않으면 대지급을 각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쌍용양회는 이처럼 공개매각을 뒤로 미루며 물밑으로 다른 작업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소액주주들을 모아 용평리조트 지분을 인수한다는 내용이다. 쌍용양회쪽은 용평리조트 신규 회원과 지역 유지들에게 한 사람당 10억~20억원씩 1천억원가량의 투자를 유치한다는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원도 지역의 한 사업가는 “쌍용쪽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주식 매입의사를 타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기관으로서는 공개 경쟁매각이 가장 비싼 값을 쳐서 받을 수 있고, 그래야 빚을 조금이라도 더 회수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쌍용쪽이 지급보증만 해소해주면 된다”며 방관하고, 쌍용양회는 석연찮은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용평리조트노동조합은 지난 2월 이란 의견서를 일부 금융기관에 보냈다. 노조는 의견서에서 “많은 의혹을 사고 있는 ‘PPRI사 지분관계’와 ‘용평 부동산에 관한 사항’에 대해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향후에도 용평리조트를 사유화하기 위한 의도로 친족을 요직에 등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족이란 현재 용평리조트 등기이사인 김석원 회장의 장남 지용(30)씨를 말한다. 그런데 누가 용평리조트를 사유화하려 한다는 얘기일까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지분을 관리하는 사람은 그 대답을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글·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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