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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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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의 깃발 든 책사들

등록 2002-09-18 00:00 수정 2020-05-02 04:22

대선후보 각 진영의 브레인들이 내놓는 선거 전망 “이래서 우리는 승리한다”

하다못해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에게 꼭 당선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주변에서 아무리 비관적 전망을 내놓아도 후보들은 “꼭 당선될 것”이라고 큰소리를 친다. 청와대 입성을 꿈꾸며 12월19일 대선을 손꼽아 기다리는 대선 후보들도 예외가 아니다. 책사역할을 하는 각 진영의 핵심 두뇌들은 나름의 전망과 분석틀을 들이대며 승리에 대한 확신에 넘친다.

윤여준·김문수… 4자 필승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주변엔 수많은 참모들이 포진해 있다. 그 중에서도 특급 참모를 꼽으라면 ‘이회창의 정치적 분신’으로 불려온 윤여준 의원(비례대표)과 당 기획위원장 겸 대선기획단 기획위원인 김문수 의원(경기 부천소사)이다. 이들은 “이회창 후보의 승리를 의심해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이유는 많다. △인물경쟁력 △영남과 보수층을 중심으로 한 30% 정도의 확고한 지지기반 등이다. 거대 야당 한나라당이 일사불란하게 이 후보를 총력지원하는 것도 큰 강점이다. 여기에 대선구도까지 유리하게 형성되고 있다. “최근 정몽준 의원에게 몰리는 표는 대부분 노 후보쪽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정 의원이 출마하면 이 후보는 더없이 유리하다.” 윤 의원의 이런 분석에 김 의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른바 ‘4자 필승론’이다. 12월 대선에서 4자간 대결이 펼쳐지면 이 후보 지지표는 결속한다. 반면 정몽준·권영길·노무현 세 후보는 서로 지지표를 잠식한다는 것이다.

물론 몇 가지 변수가 아직 남아 있다. 먼저 병풍 등 여권의 네거티브 공세. 하지만 대세를 흔들 정도의 파괴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문수 의원은 “병풍이 몹시 거세지만 이 후보 지지율은 그리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 이 후보 지지기반이 그만큼 견고해졌고, 여권이 이를 붕괴시킬 새로운 무기를 찾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권이 세풍, 안풍 등 온갖 네거티브 공세를 계속하겠지만 폭발력 있는 새로운 공격거리가 없는 한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후보쪽이 가장 경계하는 대목은 오히려 노 후보 중심으로 반창세력이 총결집하는 상황이다. 두 의원 모두 12월 대선에서 “‘주적’은 노무현 후보”라고 입을 모았다. “언론은 4자 구도를 예측하고, 우리도 그 구도를 희망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회창과 노무현의 한판 승부로 갈 수밖에 없다.” 단지 새롭다는 이미지에 의존한 ‘정풍’은 검증과 동시에 잦아들고, 정 의원에게 쏠렸던 민심은 노 후보쪽으로 다시 이동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풍이 이회창 후보를 넘어서는 돌풍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고 진단한다. 윤 의원은 “한때 지지율 50%를 넘어선 노무현의 잠재력은 인정한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 그 가능성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 없다. 하지만 ‘노풍’이 재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무엇보다 노 후보가 지도자의 자질부족과 불안정성을 확인시켜준 만큼 지지세력이 폭발적으로 결집할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표도 뿔뿔이 흩어진 상태다. 결국 박근혜·정몽준까지 포함한 모든 반창세력이 노무현 중심으로 총결집하는 위기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후보의 집권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다만 얼마만큼 큰 표차로 이기느냐가 우리 관심사”라고 주장했다.

문희상·이강래… 노 후보 단일화 향해

민주당의 지략가인 문희상(경기 의정부), 이강래(전북 남원·순창) 의원 역시 노 후보의 승리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문 의원은 대선기획단장, 이 의원은 대선기획단 전략기획실장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노 후보 진영의 핵심 책사다. 이들은 지금 노 후보가 고전 중이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정풍’에 부닥친 일시적 장애로 곧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문 의원은 “정풍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혐오·불신에 기반한다. 아직 검증이 안 된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는 이미지만으로 큰 점수를 땄다. 하지만 출마 선언과 동시에 정치권의 흙탕물에 몸을 담글 수밖에 없다. 혹독한 검증이 시작되면 그 결과는 참혹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생력 없이 부풀어오른 정풍은 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 의원 지지자가 상당수 노 후보쪽으로 이동한다는 분석까지 한나라당과 흡사하다.

노 후보 진영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노무현 중심으로 반창세력이 결집하면서 이 후보를 꺾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10월 말에서 11월쯤 가면 노 후보와 이 후보의 지지율이 거의 같아질 것이다. 분위기가 바뀌는 순간 노 후보쪽에 탄력이 붙는다. 지금까지 정몽준 의원 중심으로 전개돼온 반창세력 단일화 논의가 노 후보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회창 후보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강래 의원은 “거품 빠진 정 의원은 결국 노 후보와 단일화를 이루라는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까지 전망했다.

이 후보와의 인물 대결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모든 국민은 3김 정치 유산에 넌더리를 낸다. 그런데 이 후보는 3김 정치의 폐단인 1인보스, 지역주의, 부패정치에 온존하고 있다. 이 후보가 지금까지 부패정권 심판론으로 큰 재미를 봤지만 노 후보와의 싸움이 본격화되면 이런 치명적인 결함 때문에 좌절할 것이다.” 문희상 의원이 노 후보의 승리를 확신하는 핵심 근거다. 이강래 의원은 본선경쟁이 시작되면서 유권자들은 대통령 선거 이후 상황까지 고려하며 선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경우 닥칠 남북관계의 퇴보, 정몽준 의원이 대통령이 된 뒤 직면할 친재벌정책 등을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지역주의를 넘어 탕평책을 펼치며 역사의 진보를 이뤄낼 후보는 노무현밖에 없다” 이 의원은 “노 후보가 5% 이상 차이로 이 후보를 이기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강신옥… ‘반창후보’는 정몽준

정몽준 의원쪽은 이회창·노무현 두 후보쪽의 ‘거품론’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정 후보의 정치자문 역할을 맡고 있는 강신옥 전 의원은 “거품론은 그들의 바람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강 전 의원은 “정치세력이 없으면 어떠냐. 현역 국회의원 몇명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월드컵을 좋아하는 사람, 깨끗한 정치를 원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지지세를 계속 넓힐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정 의원의 핵심적인 대선전략은 ‘지지율 고수를 통한 정몽준 중심의 반창후보 단일화’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구한 한 핵심인사는 그 속내를 상세히 드러냈다. “이회창 후보는 병풍에 걸려 지지율이 30%선에서 답보한다. 더 꺼질 가능성도 많다. 노무현 후보는 아직 당내 분란에 휩싸여 있다. 민주당 안에서는 결국 ‘4자 대결 필패론’이 나오게 돼 있다. 그런데 우리쪽 지지율이 훨씬 높다면 결국 민주당 안에서도 정몽준을 밀어주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번 쏠리면 그 여세를 몰아 이회창 후보도 거뜬히 이길 수 있다. 지금 당장의 정치세력보다 좀더 시간이 흐른 뒤의 지지율이 중요하다. 아직 지지율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세력화에 치중할 때가 아니다.” 출마 선언 뒤 닥쳐올 검증공세를 이겨내면서 지금처럼 높은 지지율을 계속 유지한다면 대통령 자리에 성큼 다가설 수 있다는 논리다.

문제는 어떻게 가혹한 검증 과정을 통과하느냐는 점이다. 이회창·노무현·권영길 등 경쟁후보쪽에서는 “쉽게 거품을 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아직 그들이 어떤 공격거리를 확보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정 의원이 구체적인 대응법을 갖추기도 쉽지 않다. 강신옥 의원은 “젊고 깨끗한 이들이 정 의원에게 희망을 잃지 않도록,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처신하겠다”는 원칙론만 밝혔다. 풍부한 자금력을 갖춘 정 의원이 ‘실탄’을 앞세워 현역의원을 영입하는 것을 꺼리고, JP나 자민련과의 연대 방침을 철회한 것도 현재의 이미지와 지지율을 지속시키려는 나름의 전략적 선택인 셈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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