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김희완이 일거리 물어오면…"

등록 2002-05-15 00:00 수정 2020-05-02 04:22

최규선과 함께 각종 이권 개입 의혹… '이회창 후보 20만달러 수수' 폭로 배후설까지

대통령 아들에 대한 검찰 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김희완씨에게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애초 검찰은 ‘최규선 게이트’가 터진 직후부터 최씨의 비리의혹과 관련한 핵심인물로 일찌감치 김씨를 수사대상에 올렸다. 특히 지난 4월19일 설훈 민주당 의원이 “최씨 측근에게서 제보를 받았다”며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최씨에게서 2억5천만원을 받았다고 폭로한 뒤 김씨를 둘러싼 의혹은 더욱 커졌다. 당시 설 의원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제보한 인물이 김씨라는 주장이 곳곳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의약품 납품 비리, 타이거풀스…

김씨는 최씨의 검찰 출두가 임박한 지난 4월12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대책회의에 참석했다는 내용이 보도된 뒤 모습을 감췄다. 김씨는 잠적하기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이 있어 호텔에 갔다가, 최씨를 위로하기 위해 잠시 들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김씨는 한동안 측근 등을 통해 외부와 연락을 취했으나, 검찰이 4월26일 자신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하자 변호사와의 연락마저 끊어버리고 잠행하고 있다.

검찰은 이미 김씨가 각종 이권에 적극 개입한 정황을 상당부분 확보했다. 먼저 김씨는 지난 1999년 서울 ㅊ병원에 대한 경찰청의 의약품 납품비리 의혹수사 무마 명목으로 1억5천만원과 벤처회사 주식 14만주를 받고 최성규 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에게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서도 김씨가 2000년 12월께 자신의 고등학교 후배인 타이거풀스 대표 송재빈씨에게 최씨를 소개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또 지난 1998년 1월 당시 박태준 국무총리의 측근이던 조용경 포스코건설 부사장을 최씨에게 소개한 인물이 김씨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검찰조사 결과, 최씨는 이때 쌓은 친분을 바탕으로 2000년 6월15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조 부사장을 만나 폐기물 납품 사업권을 달라고 부탁하는 등 포스코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2001년 1월 김씨가 포스코 계열인 포스코 경영연구소 고문으로 영입된 뒤, 최씨는 다시 조 부사장에게 접근해 타이거풀스 주식매입을 권유했다.

결국 포스코 쪽은 타이거풀스 주식 20만주를 시세보다 턱없이 비싼 가격인 70억원에 사들였다. 김씨는 이에 대한 대가로 타이거풀스 송재빈씨가 최규선씨에게 건넨 24억원을 나눠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김씨는 자신의 밑에서 일하던 주아무개씨의 누나 이름으로 타이거풀스 주식 2만3천주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김씨가 최씨와 타이거풀스, 포스코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 각종 이권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씨의 측근 천호영씨의 주장이 눈길을 끈다. 천씨는 최근 “최규선·김희완씨는 서로 형님·동생 하는 사이”라며 “김희완씨가 돈 되는 일을 물어오면, 최씨가 김홍걸씨를 등에 업고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최씨와 김씨의 관계가 단순한 친분관계를 넘어 일종의 ‘동업자’였음을 내비친 것이다. 특히 김씨는 이런 식으로 챙긴 돈을 ‘알뜰히’ 모아 적지 않은 재산을 모았다는 게 천씨의 주장이다.

설훈 민주당 의원의 폭로와 관련한 김씨의 역할도 관심을 모은다. 최규선씨 주변 인물들은 “김 전 부시장이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을 통해 최씨를 한나라당 쪽에 연결해줬다”며 “최씨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방미 지원과 금품제공 여부 등에 대해서도 가장 상세히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미 구속된 송재빈씨는 최근 검찰에서 “최씨로부터 ‘한나라당에 보험을 들어뒀다’는 말을 들었다”며 “김희완씨도 ‘최씨가 윤여준 의원을 통해 방미 경비로 20만달러를 줬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회창 관련 제보로 구명로비 했나

물론 이 같은 내용은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에 가깝다. 최씨의 자금이 한나라당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을 폭로한 설 의원은 아직까지 제보자의 신원에 대해 ‘최씨 측근’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검찰도 “설 의원이 제보자를 정확히 밝히지 않아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의혹의 당사자인 최규선씨마저 이 같은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씨가 검찰 소환을 앞두고 청와대와 검찰을 통해 자신의 구명로비를 벌였다는 의혹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김씨가 설 의원을 만나 최규선씨가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에게 20만달러를 전달했다고 제보하면서 검찰수사를 피할 수 있는지를 타진했으나, 설 의원의 폭로 뒤 한나라당의 반발이 거세지고 검찰수사가 본격화하자 구명이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해 잠적한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도 사정기관 등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김씨의 검거는 최규선 게이트뿐만 아니라 여야 간의 정치대결의 판세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검찰은 김씨의 휴대전화 통화 흔적을 여러 차례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수도권 일대 모텔 등을 전전하고 있는 정황을 파악하고, 여러 차례 검거반을 급파했지만 번번이 허탕을 친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소신 있고 깨끗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던 김씨는 지금 뒷골목을 전전하며 자신의 구명을 위한 묘수찾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