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상문학상 사태’를 이렇게 요약해보자. 2020년 1월4일, 김금희 소설가가 문학사상사를 대상으로 작품의 저작권을 3년간 양도한다는 계약서 항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수상 거부를 시작해, 최은영·이기호 소설가가 이에 동참한다. 그렇다면 ‘이상문학상 사태’는 김금희 소설가가 자신에게 전달된 계약서를 꼼꼼히 읽고 이것이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에서 시작된 셈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저작권’이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창작자 권리 담론이 형성된다. 그런데 1월31일, 전년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인 윤이형 소설가가 부당함과 불공정함을 뒤늦게 깨달았으며, 이 상에 항의할 방법이 활동을 영구히 그만두는 것밖에 없다고 판단해 절필을 선언했다.
절필의 숨은 이유여기서부터 ‘창작자의 권리’ 의제가 문학출판계의 ‘오랜 관행’ 문제로 핵심점이 옮겨간다. 절필 선언을 담은 윤이형 소설가의 입장문에서는 이상문학상 운영이 그동안 문학사상사 대표 책임자의 의사에 따라 원칙 없이 오래 운영됐다는 사실이 강조됐고, 이런 문장이 포함됐다. “지금까지 문학계에서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이 일이 연루된 작가들에게만 상처를 남길 뿐 절대 투명하게 해결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장에 담긴 절망감에 공감한 작가들이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해시태그 운동을 이어갔고, ‘#문학사상사_소비_거부’와 ‘#문학사상사_보이콧’ 등 독자 역시 이에 동참했다.
조금은 냉정하게 묻자. 이때 ‘투명하게 해결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뜻할까? 문학사상사가 불공정 조항을 바꾸고 사과하는 것?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저 문장에 담긴 절망감의 방점은 ‘투명한 해결’보다는 “지금까지 문학계에서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에 찍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저 문장의 ‘지금까지’를, 2015년을 그 시작점으로 현재까지의 긴 흐름으로 묶어 읽는다. 2015년 6월 신경숙 표절 사태, 2016년 10월 문학출판계 성폭력 말하기 운동, 2017년 9월 최영미 시인의 미투 운동, 2020년 1월 이상문학상 저작권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는 모두 기존 문학출판계를 향한 ‘질문하기’의 역사다. 윤이형 소설가는 이 ‘질문하기 역사’가 작가들에게만 상처를 남길 뿐 절대 투명하게 해결될 리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읽힌다.
잃지 말아야 할 것, 잊지 말아야 할 것들단 한 명의 여성 작가도 더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여성 독자인 나는 그 방법이 무엇이든 가능하기만 하다면 윤이형의 절필 선언을 어떻게든 되돌리고 싶지만, 문학출판계 구성원 중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질문하기를 통해 ‘다르게’ 바꿔나가기를 꿈꾸는 문학출판계 모습이 정확히 무엇인지 충분히 이야기할 경험과 기회가 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6년 10월, 문학출판계 성폭력 말하기 운동으로 모였던 여성들에게서 그 운동의 방식과 방향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직접 체감하고 목격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투명한 해결’이란 말을 함께 쓰는 순간에도, 같은 단어 속에서 떠올리는 구체적인 모습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이 곤란함이야말로 우리가 더욱 집요하게 붙들고 논의해야 하는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이상문학상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일단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힐 것이고, 잊힌다면 반복될 것이다. 요 몇 주간 자고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관련 검색어들을 넣어 기사를 모으고 정리하는 일이었다. ‘이상문학상 사태 타임라인 및 칼럼 모음’ 아카이빙 페이지를 만들어 흩어지기 쉬운 목소리를 일자별로 차곡차곡 모으면서 하나의 단어가, 놓인 위치에 따라 얼마나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체감했다. 이를테면 2월5일 한국출판인회의에서 내놓은 입장문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러한 행태가 회원 출판사에 벌어지는지를 살폈으며, 문제되는 것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였습니다. (…) 그러나 이번 사태가 창작자와 출판사의 대결 구도로 비화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로부터 5일 뒤, 2월10일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가 내놓은 성명서는 이 문장들을 이렇게 반박한다. “창작/노동 환경을 억압하는 폐습이 여전한데도, ‘출판계를 대표하는 책임 있는 단체’라는 곳에서는 겨우 한두 줄짜리 설명으로 실태를 모두 파악했다고 섣불리 넘겨짚는다. (…) 누구도 ‘대결’을 원하지 않았다. 노동자와 창작자를 대등하게, 제대로 대접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김금희 소설가의 문제제기가 ‘창작자의 권리 문제’였다면, 윤이형 소설가의 절필 선언이 ‘문학출판계에 던져진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면, 언론노조의 성명서에 이르면 외주노동자들뿐 아니라 회사에 재직하는 노동자들조차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출판계의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목소리 얻지 못한 질문들이 질문들에 누가 답해야 하는가? 특정한 문제제기가 일어나면 그 상황을 바꿀 책임이 있는 결정권자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들에게 분명한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담론이 만들어져왔다. 그것이 전부일까?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해시태그를 사용한 작가들이 이상문학상 사태 해결을 위한 지지 의사를 밝히는 그 순간조차, 자신이 지지 의사를 발화할 자격이 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 검열하는 일을 목격하면서, 우리의 싸움은 결정권자를 향해 책임을 요구하는 일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동시에 서로를 동등하게 대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질문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질문이 사유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결정권과 권위를 강화해 오히려 우리의 움직임과 사유를 제한하는 일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싸움에서 무력감을 느낀다면, 이 질문이 삭제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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