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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 맞선 인도 여류작가

등록 2002-03-13 00:00 수정 2020-05-02 04:22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한 인도 여류작가 아룬다티 로이(42)와 인도 대법원이 법정 비판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여 세계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도 대법원은 3월5일 로이가 “법원이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고 한다”고 법원을 신랄하게 비판한 데 대해 법정모독죄로 상징적인 1일 구금형과 벌금 2천루피(42달러)를 선고했다.

사건의 발단은 2000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도 대법원은 논란이 일던 나르마다 수력발전댐 건설을 승인하는 결정을 내렸다. 인도 사상 최대인 40억달러가 투입되는 이 댐은 인도 중부 3개 주에 걸쳐 흐르는 나르마다 강에 건설되는 것으로, 248개 마을이 수몰되고 막대한 환경파괴가 예상돼 환경운동가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로이도 이 항의 대열에 참여해 당시 대법원 앞에서 벌어지던 시위에 참가했다. 로이는 법원에 대한 모욕혐의로 기소된 뒤 증거불충분으로 혐의를 벗었으나, 법정 선서에서 “법원이 비판에 침묵을 강요한다”고 비판했다는 이유로 다시 기소된 것이다.

대법원은 “연설의 자유에는 합리적 제한이 가해질 수 있다”며 로이가 법원에 받아들일 수 없는 모욕을 안겨줬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또 사안의 엄중함에 미뤄볼 때 6개월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나,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해 상징적인 차원의 구금형을 내린다고 밝혔다. 로이는 3월6일 인도 최대 교도소인 뉴델리의 티하르 교도소에 구금됐다.

로이는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서 “법정의 존엄성은 판결의 질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의 메시지는 법정을 비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위험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이가 구금된 교도소 밖에서는 수백명의 지지자들이 ‘비판은 모욕이 아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과학자이자 저명한 시민운동가인 반다나 시바는 과의 인터뷰에서 “인도 대법원은 상징적인 선고를 내리면서 로이가 여성이라는 이유를 들었다”며 “법정의 존엄성을 모독한 것은 로이가 아니라 판사들”이라고 비판했다.
로이는 97년 기독교도 여성기업인과 힌두교도 하층민 남성의 정사 묘사로 파문을 일으킨 첫 소설 으로 순수 인도인으로는 처음 부커상을 수상했다. 그는 환경운동 외에 세계화가 인도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에 주목해왔으며, ‘상상의 종말’이라는 에세이에서 인도 핵실험을 강력 비판한 바 있다.

박종생 기자/ 한겨레 국제부 j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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