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 짐이 가득 든 배낭을 메고 큰 캐리어를 끈다. 그들이 들뜬 표정으로 관객석을 향해 외친다. “수학여행이다∼.” “잘 다녀올게요!” “엄마 아빠, 3일만 참아~. 도착해서 얼마나 좋은지 말해줄게.”
4월2일 오후 경기도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에 있는 별무리극장. 무대에 선 그들은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배우이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의 엄마다. 이날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는 4월5~6일에 열리는 ‘헬로우 옐로우(Hello Yellow) 안산’ 예술제에서 선보일 작품을 연습하고 있었다. 엄마들에게 무대는 낯설지 않다. 2015년 10월 연극치유모임으로 시작했다가 2016년 3월 정식으로 극단을 만들어 전국 곳곳에서 공연했다. 공연 횟수는 110여 회에 이른다.
이날 연습한 연극 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수학여행에서 보여줄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그래서 엄마들은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밝고 쾌활한 고등학교 2학년 역할을 해야 한다. 최근 유행하는 걸그룹 춤을 추고 10대들 말투도 따라한다. 40∼50대 엄마들은 10대 연기가 어색하지 않도록 남모를 노력을 해야 했다. 대본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보고 또 보고 시간 날 때마다 춤을 췄다.
“세월호 5년… 잊히는 것 같아”연극이 끝나고 분장실에 온 이미경(이영만군 어머니)씨 얼굴이 굳어진다. 무대에서 내려온 그는 이제 춤추고 크게 웃던 고등학생이 아니다. “힘들어요. 아이들 교복을 입고 아이들 흉내를 내고…. 이 교복을 처음 입었던 날 엄청 울었어요.” 무엇보다 5년 전, 수학여행 갈 생각에 설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 우리 아들 밤 12시 넘도록 안 잤어요. 친구들한테 보드게임 사진 찍어 보내고 ‘이거 가져갈까, 저거 가져갈까’ 물어봤는데. 그때 들뜨고 설레던 아이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짠해요.”
연극 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약전(간략한 전기)을 엮은 책 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노란리본 엄마의 아이들 이야기도 담겼다. 김명임씨는 아들 수인이의 이야기가 나오는 대사가 가장 또렷이 들린다. “‘힘과 지혜를 갖춘 장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루빨리 대학을 졸업해 다국적기업에 취직한 뒤 평생을 떠돌이로 살고 싶어요.’ 극중 태수가 하는 이 대사가 우리 수인이 이야기예요. 다른 엄마가 이 대사를 할 때 푹 빠져들어요. 다른 엄마들도 자기 아이 이야기가 나오면 그럴 거예요.”
“우리가 잃은 것 생각하는 시간 되길”김씨는 “항상 눈물이 나지만 그걸 꾹꾹 누른다”고 했다. 무대에 서는 배우 엄마는 울 수 없다. “아이가 얼마나 기다렸던 수학여행인데…. 그 아이들처럼 최대한 즐겁고 밝게 보이려고 노력해요. 아이들 이야기를 엄마들이 대신 하는 거니까. 춤이고 뭐고 물불 안 가리고 해요.”
노란리본 엄마들이 연극 무대에 계속 서는 이유는 단 하나다.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해요. 그런 바람으로 힘들지만 무대에 서요. 그리고 하늘에서 아이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잖아요.”
세월호 참사 5주기에 선보이는 은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비극을 다시 마주하게 한다. 노란리본의 김태현 연출가는 “세월호 참사가 5년이 지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것 같다”며 “을 통해 세월호 참사로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무대, 세월호 기억투쟁의 장이 되다4월, 또 다른 무대에서도 세월호를 기억하고 아픔을 나누는 연극이 펼쳐진다. 서울 대학로 젊은 연출가 모임인 ‘혜화동1번지’ 7기 동인은 4월4일부터 7월7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기획 초청공연 를 한다. 혜화동1번지는 2015년부터 매년 연극 ‘세월호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 문제를 관객과 함께 바라보는 (4월4~14일), 황정은 작가의 동명 연작 소설집 중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엮은 (4월18~28일), 평범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겪은 뒤 빚어지는 풍경을 그린 (5월2~12일), 고통을 직접 겪는 당사자들의 곁에 있는 연대 활동가 이야기 (5월23일~6월2일) 등이 무대에 오른다. 각각의 작품은 세월호로 상징되는 여러 참사의 아픔과 트라우마를 이야기한다. 이 작품들에 이어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엄마들의 연극 (7월4~7일)이 이번 기획공연의 마침표를 찍는다.
세월호 5주기를 맞는 올해 세월호 프로젝트의 부제는 ‘제자리’다. 왜 제자리일까. 혜화동1번지 7기 동인은 말한다. “세월호 참사로 누군가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고, 그 원인과 책임을 밝히기 위한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진상 규명을 향한 길은 여전히 제자리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공연에서는 우리는 왜 아직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 있는지를 묻고 참사 이후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제자리’는 어디인지를 찾는다. 의 이재민 연출가는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으며 지금도 일어나는 사회적 참사, 그리고 그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에서는 제자리인 듯 제자리가 아닌 희망의 걸음도 쫓는다. 의 신재 연출가는 “사회적 참사를 겪은 그들 곁에 선 활동가들, 현장에서 계속 싸우는 그분들의 멈추지 않는 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하나의 사건이 아닌 사회적 참사의 ‘상징’이 되어버린 세월호 참사는 연극 무대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글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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