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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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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배반했다”

성주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200여 명 사드 저지 실패…

경찰 8천여 명 동원해 강제해산 “박근혜 정부와 다른 게 뭐냐”
등록 2017-09-12 17:02 수정 2020-05-03 04:28
9월7일 오전 8시11분 사드 발사대를 싣고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도로로 지나가는 주한미군 군용트럭. 사드 발사대가 지나는 동안 경찰은 주민들의 접근을 원천 봉쇄했다. 정용일 기자

9월7일 오전 8시11분 사드 발사대를 싣고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도로로 지나가는 주한미군 군용트럭. 사드 발사대가 지나는 동안 경찰은 주민들의 접근을 원천 봉쇄했다. 정용일 기자

“이 도로는 통제돼 갈 수 없습니다. 월곡교를 통해 소성리로 들어가주세요.”

지난 9월6일 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추가 배치가 임박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는 고립돼 있었다. 이날 밤 9시께 초전면 동포리 동포장로교회 앞 삼거리에 도착하자 경광봉을 든 경찰관들이 기자의 출입을 막았다. 삼거리를 지나면 소성리가 코앞이다. 승용차 내비게이션은 이곳에서 북쪽 주천로를 따라 5km 더 달려야 소성리 마을회관에 도착한다고 안내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드 가고 평화 오라”</font></font>

동포로를 따라 우회해 4km 더 달렸다. 소성리를 2.7km가량 앞두고 초전면 월곡리 제남지(저수지)에 도착하니 승용차와 트럭, 농기계가 도로를 막고 있었다. 사드 배치를 막기 위해 주민들이 가져다놓은 것이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제남지 주변 도로가에 차를 댔다. 휴대전화 불빛으로 길을 밝혀 정적이 도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걸어갔다.

1km를 걷자 저 멀리 월곡교 앞에서도 경광봉을 든 경찰관 몇몇이 소성리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경찰관에게 취재를 왔다고 하니 오른쪽 길을 따라가라고 했다. 월곡교를 건너 소성저수지를 따라 다시 걸었다. 소성리 마을회관은 이곳에서 1.7km 떨어져 있다. 도로 양쪽에 주차된 차량들이 어둠 속에 보였다. 소성저수지를 지나 소성교에 도착하니 저 멀리 소성리 마을회관 쪽에서 불빛이 보였다. 저만치에서 알아듣기 힘든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한 걸음씩 다가가자 외침이 또렷해졌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주한미군이 9월7일 새벽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 배치한다는 소문은 이날 오후 2시께부터 돌았다. 오후부터 성주와 김천에 경찰이 배치됐다. 이 소식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고,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이 하나둘 소성리로 모였다. 먼저 소성리에 들어온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200여 명은 이날 오후 3시께 소성리 마을회관 앞 도로를 수십 대의 차량으로 막고 농성을 시작했다.

이날 밤 10시쯤 소성리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아수라장이었다. “집회를 계속 하면 집시법과 형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지금 즉시 해산해주십시오. 경찰은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10분 간격으로 경찰은 해산 명령을 내렸다. 도로와 마을회관 앞마당에서 농성하는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경찰의 해산 방송에 “사드 배치 미국 반대” 등의 구호로 맞섰다.

소성리 마을회관 앞 왕복 2차선 도로 위에는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200여 명이 서로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도로에는 주민 차량 수십 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주민들은 차량 안에 들어가 시동을 끄고 문을 잠갔다. 이 도로는 사드 기지가 있는 달마산(해발 680m)에서 남쪽으로 2.5km 떨어져 있다. 사드 포대를 실은 대형 차량이 기지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도로다. 소성리 마을회관 앞마당과 도로에도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200여 명이 경찰과 대치했다.

이종희(60) 사드배치철회 성주초전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때도 이곳에서 주민들이 밤새 경찰과 싸움을 했다. 문재인 정부도 경찰을 투입해 주민들이 밤새 경찰과 싸우게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기자에게 울분을 쏟아내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6시간의 농성 16초의 진입</font></font>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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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지난 4월26일, 주한미군은 새벽 4시43분과 6시50분 두 차례에 걸쳐 달마산 사드 기지에 엑스밴드 레이더 1기와 발사대 2기를 기습 반입했다. 당시 소성리 마을회관에 있던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수십 명이 이날처럼 달마산으로 진입하는 길을 막았다. 경찰은 당시 자정께부터 4천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소성리로 들어오는 주요 도로를 모두 통제하고, 주민들을 강제해산했다.

9월7일 경찰은 1차 기습 반입 때의 두 배인 8천여 명의 병력을 동원했다. 지난 4월26일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경찰은 7일 0시부터 강제해산 작전을 시작했다. 도로 양쪽에서 갑자기 진입한 경찰은 도로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마을회관 쪽으로 밀어냈다.

“마을회관 쪽에 계신 분들은 빨리 도로로 나가주세요.” 이날 0시40분께 누군가 확성기를 들고 이렇게 외쳤지만 도로엔 이미 경찰 병력이 ‘주둔한’ 상황이었다. 경찰은 이어 도로 위에 앉아 농성하는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을 한 명씩 들어냈다. 곳곳에서 양쪽 사이에 거센 몸싸움이 벌어졌다. 하늘에선 4월26일 1차 반입 때처럼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작전’ 시작 5시간여 만인 이날 새벽 5시30분께 도로에서 농성하던 사람들 대부분을 소성리 마을회관 쪽으로 끌어냈다. 아침 7시30분께 견인차를 동원해 도로에 세워진 수십 대의 차량을 견인했다. 밀려난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다시 도로에 진입하려 했지만 번번이 경찰 병력에 막혔다.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이 찰과상 등 부상을 입었고, 주민 등 2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날 아침 8시11분, 소성리 마을회관 앞 도로로 사드 발사대 4기가 지나갔다.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6시간 농성했지만, 사드 발사대 4기가 지나가는 데는 16초도 걸리지 않았다. 4월26일에 이어 두 번째로 사드 발사대를 본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고성을 질렀다. 이들은 사드 발사대에 플라스틱 생수병과 참외를 던졌다. “가지 마, 가지 말라고.” 누군가 절규하듯 외쳤다. 사드 발사대는 순식간에 달마산 쪽으로 사라졌다.

이날 오전 경찰 병력이 모두 철수한 소성리 마을회관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그동안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사용하던 농성 천막과 책상, 의자 등이 부서져 곳곳에서 나뒹굴었다. 성주 주민 김상화(37)씨는 “새벽 김천나들목 근처 국도에서 사드 발사대가 줄지어 고속도로로 이동하는 것을 봤다. 정말 달려가서 패주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화가 났다”고 말했다.

사드배치철회 성주초전투쟁위원회,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 원불교 성주성지수호 비상대책위원회, 사드배치반대 대구경북대책위원회, 사드배치저지 부산울산경남대책위원회, 사드한국배치저지 전국행동 등 5개 사드 반대 단체가 함께 운영하는 소성리 종합상황실은 사드 발사대가 추가 반입된 이날 오전 10시,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국민의 염원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배반했다. 이 땅의 민주주의와 국민의 존엄성을 훼손한 문재인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겠다”고 밝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문재인 찍었던 손가락 잘라버리고 싶다”</font></font>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도 이날 ‘4기의 사드 포대가 반입된 날’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성주투쟁위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성주 주민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지난 5월 대통령선거에서 대부분 문재인·심상정 후보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 여론은 홍준표 후보의 성주군 전체 득표율이 높다는 이유로 마을 주민들에게 ‘당해도 싸다’고 비난했다. 성주투쟁위는 씁쓸한 문구로 성명을 마무리했다. “홍준표 찍었다고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마라. 문재인을 찍었던 사람들은 지금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제 성주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 어떤 도움도 바라지 않을 것이고, 희망도 가지지 않겠다.”

성주(경북)=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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