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00847C">손희정</font> 중간 다리 같은 느낌?
<font color="#638F03">한채윤 </font> 세대로 묶으면 1990년대 중·후반 영페미니스트이기는 하죠. 근데 저와 희정씨는 영페미는 아니었으니… 성정치라고 해야 하나? 1990년대 성정치운동과 소수자운동을 시작해서 페미니즘을 만난 사람들?
<font color="#00847C">손희정</font> 2010년대 페미니즘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것을 말할 언어를 가진 사람들 같아요. 한 출발점이 아니라 지금 만난 지점이 비슷한 사람들이네요.
1990년대 이후 페미니즘을 ‘염탐해온’ 기자로선 ‘아는 언니들’의 뜨거운 과거사, 치열한 근황 같아요. 나영정이 학생 시절 통일운동을 했었단 말이야? 전희경이 살림 여성주의협동조합에서 일하네…, 이런 것들을 알게 됐죠. 독자들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이야기로 읽히겠어요.<font color="#00847C">손희정</font> 저는 역사책이라고 생각해요. 시간과 여성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요. 6명이 모여 썼다는 게 중요해 보여요. 운동의 과실을 혼자 집어먹는 영웅 이야기가 아닌, 서로 이어져 있다는 ‘페미니스트 연결감’이 중요한 주제죠.
<font size="4"><font color="#008ABD">‘나랑 정말 똑같네’ 했으면</font></font>
그녀들의 이름은 권김현영, 손희정, 한채윤, 나영정, 김홍미리, 전희경. 최근 출간된 (그린비 펴냄)의 표지에 적힌 필자들이다. 확실히 여성주의적이고, 대부분 퀴어하며, 여전히 활동가이고, 여성혐오 이슈가 터지면 그 생각을 묻고 싶은 이들이다. 6명을 합치면 최소 100년은 페미니스트로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어온 40대 언니들이다.
이렇게 이름의 조합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데, 한 단어로 설명하긴 어렵다. 한채윤씨 말처럼 ‘옛날에 어땠어’보다 ‘지금은 그래서’ 모였단 것이 옳겠다. 어쨌든 ‘페미니즘이 다시 뜨거운 지금, 누구 이야기가 궁금해?’라고 물어본다면 잠시 생각한 다음에 읊을 이름이 모였다.
게다가 그들이 ‘나는 어떻게 페미니즘을 만났나, 페미니스트가 되어서 어떤 일을 겪었나, 그래서/그럼에도 계속, 끝까지,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나’를 에세이로 썼다. 한국에선 처음 보이는 작업이다. 더구나 읽어보면 ‘대박’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여성운동 역사는 물론 성소수자운동·장애운동 일부까지, 퀴어한 것들의 흐름이 때로는 뜨거운 격랑으로 때로는 서늘한 계곡물로 흐른다. ‘질문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던 여성들이 ‘되돌아갈 길 없’는 페미니즘 영토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서로 다른 목소리와 손짓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내 이야기가 뭐라고,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은 복잡한 생각을 누르며, 2015년 이후 도처에서 솟구친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들’과 연결되기 위해 썼다고 한다. 한줄 한줄 뜨겁고, 여기저기 주옥같은 글의 바깥이 궁금해 한채윤(‘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 손희정(대중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 필자를 만났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font></font>
6명의 필자는 어떻게 연결돼 있었나요?<font color="#638F03">한채윤 </font> 아주 일상적으로 만나는 친구는 아니라도, 각자 어떤 영역에서 어떻게 자기 역할을 하는지 서로 느끼고 있었던 사람들이죠.
<font color="#00847C">손희정</font> 물리적 거리보다 감정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 같아요. 제 감각 안에서, 내 세대라고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들과 작업하고 싶었어요.
5년, 10년 전에는 어색한 조합이었을 것 같아요.<font color="#00847C">손희정</font> 없는 조합이죠. (웃음)
젊은 페미니스트들을 독자로 염두에 두고 쓰신 건 맞죠?<font color="#00847C">손희정</font> 그렇긴 한데, 선배 페미니스트… 그런 느낌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font color="#638F03">한채윤 </font> 저희가 ‘이렇게 살아라’ 할 나이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는 걸 배격하는 게 페미니즘 정신이죠. ‘언니질’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어요. 오히려 ‘나랑 정말 똑같네’ 했으면 해요. ‘어떻게 살아야겠다’보다 ‘내 삶도 이렇게 정리해볼까’ 싶어지면 좋겠어요. 제 글의 제목이 ‘페미니스트이기보단,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싶지 않은’인데, 글 쓰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문장이에요.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생각하다 나온 일종의 경유지인 거죠.
친구 페미니즘? 그런 거면 좋겠네요.<font color="#00847C">손희정</font> 페미니스트가 된 순간의 경험을 ‘페미니스트 모먼트’라고 한다면, 제 모먼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다른 분들의 글도 모먼트의 끝이 아니라 매번 다시 찾아오는 모먼트와 접속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font color="#638F03">한채윤 </font> 2015년 이후 등장한 이들을 ‘영페미니스트’라고 하죠. 그런 명칭이 생긴 건 1990년대 영페미니스에 대한 강한 인상이 남아서라고 생각해요. 저는 당시 영페미니스트 활동가는 아니었지만, 1990년대 영페미니즘 운동이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각자의 위치는 바뀌었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고 있거든요. 그 시절의 영페미니스트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기도 해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질문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font></font>
조곤조곤하고 쓸쓸하고 뜨겁다고 해야 할까? 권김현영 글의 제목은 ‘질문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영페미니스트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20년을 살면서 만나고 부딪힌 이야기를 그는 여성들의 시를 인용하며 조곤조곤 들려준다. 글은 “버릴 수도 없고 취할 수도 없는 여성이라는 이름의 역설, 그리고 그것이 주는 긴장 속에서 현실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페미니즘이 내게 알려준 길이다”라는 문장으로 마감된다.
손희정의 ‘할머니들’은 아름답고 쓸쓸한 단편소설 같다. 가족사 안에서조차 삭제되고 배제됐던 ‘나의 일본인 할머니’로 시작해 일본군 ‘위안부’ 최초의 증언자인 오키나와 배봉기 할머니로 확장되는 이야기는, ‘할머니들’과 연결로 만난 ‘페미니스트 모먼트’를 로드무비처럼 보여준다.
한채윤의 글은 “레즈비언인 것으로 ‘충분’했”던 성소수자 활동가가 20년 운동의 현장에서 분란과 화해를 겪으며 어떻게 페미니즘을 자기해석의 자양분으로 삼고, 이제는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싶지 않은 이들의 연대’를 꿈꾸는지 보여준다. 그의 글은 독자를 “페미니스트는 내게 있어 ‘정체성’이라기보다는 확실히 내가 지켜야 할 ‘의리’에 가깝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장을 이해하는 여정으로 이끈다.
나영정의 글에는 ‘빨갱이, 종북게이, 이등시민’ 같은 버려진 생명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사회가 오염됐다고 낙인찍는 것들과 밀착하는 스킨십을 통해 그가 자기해방에 이르는 과정이 생생하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여성/소수자 운동의 역사가 ‘나영정’이란 이름을 통해 살아난다. 그러나 그는 “이 글에 내내 박힌 ‘나는’ ‘내가’라는 주어들이 매우 낯설지만, ‘나는’이라는 단어가 나의 자아로 환원되지 않고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던 좌표로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당부한다.
한채윤씨는 ‘이제는 페미니스트다’ 할 것 같은데 끝까지 버티네요.<font color="#638F03">한채윤 </font> 그러게요. (웃음) 다들 이미 저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며 대하시죠. 페미니스트라고 하기도 아니라고 하기도 그런, 정확하게 저와 같은 느낌을 가진 분이 꽤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들과 고민을 나누고 싶었어요.
필자들의 출발점과 경유지가 조금씩 달라요. 접근 방향이 달라서 전체로 기막힌 균형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독자가 읽는 방법도 다양해질 거고요.<font color="#638F03">한채윤 </font> 분명히 하나의 이야기는 꽂힐 것이다, 써주세요. (웃음)
<font color="#00847C">손희정</font>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것에 엄청난 쾌감도 있어요. ‘페미니스트 부심’이라고 하죠. 다른 것에 대해선 내가 괜찮지 하는 느낌이 별로 없는데, 페미니스트라는 자부심은 있어요. 남한테 부끄럽지 않게 ‘제가 참여한 작업입니다’ 하고 내미는 첫 번째 책이에요.
표지에 적힌 ‘되돌아갈 길은 없다, 너와 나의 페미니스트 모먼트’가 핵심이라고 하셨죠.<font color="#00847C">손희정</font> 이걸 접하고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font color="#638F03">한채윤 </font> 한국에서 딸로 태어나, 여자라고 불리면서 느끼는 갑갑함이 있죠. 그 의문을 푸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만난 거죠. 서로 다른 경로로. 페미니즘을 만나서 의문이 풀렸는데, 풀리고 났더니 또 다른 장벽이 생겨요. 여성주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고…. 이걸 넘어서기 위해 다시 노력하는 과정에 있죠.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내가 이전보다 많이 나아졌다’는 안도감이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이기도 한데, 나한테만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과도 나누고 싶었어요. 많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font size="4"><font color="#008ABD">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사람들</font></font>
는 그렇게 ‘부심’ 넘치는 책이다. “페미니스트 때려치우기를 최소 네 번, 최대 스물일곱 번 정도 해본 걸로 기억하는 20년차 페미니스트” 김홍미리는 “홀로 단단했”던 “페미니즘 고딕체” 시절을 어떻게 통과해 ‘여성의 전화’ 활동가로 정주하게 됐는지를 뜨겁게 돌아본다. 1990년대 영페미니스트 운동의 공과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의 글은 그 시절의 태도와 실험과 실수에 대한 논의에 밑절미를 깐다.
전희경의 글은 지금도 뜨거운 숙제인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 시절을 돌아본다. 어렵게 써낸 글인 만큼 그의 글에 대한 반응이 독자들 사이에 가장 뜨겁다. 오랫동안 이어진 100인위 후유증을 딛고 “여성 망명 정부 같은 곳”이었던 ‘언니네트워크’를 거쳐 이질성이 공존하는 살림 여성주의협동조합 활동가로 정주지를 옮겨온 그의 글은 이렇게 끝난다.
“무엇에 기대어 계속 페미니스트로 살아갈 수 있는가. 대답은 나도 모르겠다. 다만, 막다른 길이라 생각한 곳에서 벽을 뛰어넘는 놀라운 사람들이 있고, 답이 없다 생각한 문제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답을 발명하는 끈질긴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언제나 그랬다. 그러니 나도 그들 곁에서 계속, 끝까지,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손희정씨는 필자들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끈질긴 여성들”이라고 말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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