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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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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해안선이 사라지고 있어요

사람과 자연이 만든 곡선을 뭉개는 직선의 개발… 사라지는 것들의 끝자락에서 보내는 제주 시인의 긴급 타전
등록 2016-08-03 19:18 수정 2020-05-03 04:28
2010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비자림으로 향하는 길의 모습. 허영선 제공

2010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비자림으로 향하는 길의 모습. 허영선 제공

한때, 그랬던가요. 오목조목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집약된 이 화산도, 제주는 한반도의 마지막 남겨진 보루라고. 정말 아끼는 보석 하나는 남겨두자고. 지치고 힘들 때 품어줄 그런 마음의 고향 하나쯤 남겨두자고. 그렇습니다. 이건 화산의 분출, 격류라고나 해야 할까요. 터진 물줄기처럼 이 섬의 지형은 변해도 너무 변했습니다. 이런 소리도 나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가 아니라 “6개월이면 변한다”. 만약 당신이 제주에 온 지 몇 년 되었다면 아마 기억의 장소가 없어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은 종종 말합니다. “내 집이 내 집 같지 않다”고. 5년 만에 모슬포 친정집을 찾아온 포항댁 친구가 한숨을 쉽니다. 집을 찾지 못해 한참 애를 먹었다고. 세계자연유산이 있어 관광지가 된 마을에 사는 친구가 한탄합니다. “밭 하나, 녹색 하나 볼 수 없어. 매일 공사 예정지투성이니.”

<font size="4"><font color="#008ABD">바람이 길을 낸 에스(S)자의 섬</font></font>

제주섬. 바람이 닦아놓은 에스(S)자의 섬. 바람의 섬이죠. 바람은 아름다운 섬의 곡선, 해안선을 빚어냈지요. 그 해안선 끝자락을 보셔요. 낮은 마을이 보입니다. 그 마을의 좁다란 돌담 올레길은 굽이치는 바다로 향하고, 집과 집을 잇고, ‘삼춘’(제주에서는 가까운 이웃을 삼춘이라고 부른다)과 삼촌들이 우연히 만나 소통하는 길. 그렇게, 자연과 사람이 만든 마을의 동선은 기막힙니다.

그 마을, 둥근 섬의 바람은 팽나무의 가지를 바람 부는 방향으로만 틀고 있죠. 돌과 돌의 트멍(틈)을 통과한 바람의 갈기는 한라산을 넘고, 오름과 오름의 관능적인 곡선을 관통하고, 검은 바닷돌과 부딪히며 기막힌 제주의 선을 빚었습니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font size="4"><i><font color="#991900">“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가 아니라 “6개월이면 변한다”. 만약 당신이 제주에 온 지 몇 년 되었다면 아마 기억의 장소가 없어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font></i></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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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에서 보면 오밀조밀 이어진 현무암 돌담, 오름 자락의 둥근 봉분과 그 울타리를 친 산담이 보입니다. 탐라산과 오름, 바다, 햇빛, 바람, 구름, 곶자왈은 제주의 질감과 색감을 이루는 성분입니다. 아래아가 살아 있는 제주의 언어가 낯설듯 투박한 질감과 색감은 전혀 새롭지요. 섬의 냄새는 분명 육지에서의 냄새와 다릅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치명적인 자연, 모든 토속적인 삶의 문화가 조화로운 섬입니다. 해서, 이미 오래전 나비박사 석주명은 제주도를 만나는 순간 제주도 채집에 온몸을 걸었지요. 그는 거친 토양 속의 제주도 생태, 민속, 언어 등이 보배임을 일찍 감지한 사람이었습니다.

화산이 빚어낸 용암의 섬 위로 피 토하듯 생존과 싸우는 숨소리가 흘렀습니다. 거친 밥의 시대, 한때는 순응의 대지였고, 섬을 위협하는 것들과 맞서던 저항의 대지였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야 했던 뜨거운 삶의 대지였습니다. 제주 중산간의 황무지에서 노을을 보신 적이 있던가요. 중산간 마을 사람들의 삶은 그대로 제주의 맨살을 보여줍니다.

여인들은 새벽이면 바닷가 용천수의 물을 길어올리고, 거친 밥을 지어먹고, 물질하러 바다로, 밭으로 나갔습니다. 살아 있는 서사무가의 본향이자 신화의 섬. 마을마다 모두의 안녕을 위해 치성을 드리던 신당, 간혹 바다를 떠도는 무가 소리가 가슴을 울리기도 했죠. 육지완 확연히 다른 노동요로 노동의 시름을 달래던 사람들, 어려울 땐 몸을 아끼지 않던, 공동체가 살아 있었죠. 한여름, 물외에 된장 하나 풀어넣으면 뚝딱 완성되던 냉국, 자리물회, 자리젓, 멜젓(멸치젓)에 콩잎쌈 하나면 행복해하던 별의 밤이 있었습니다.

신이 빚어낸 이 아름다움 앞에 무릎 꿇었던 이방인이 어디 한둘인가요. 저 일본의 작가 오다 마코토는 제주의 독특한 삶의 문화에서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연상했고, 노벨상 작가 르 클레지오는 제주는 지구상 얼마 남지 않은 자연을 가진 섬이라고 했고, 중국 작가 위화 역시 돌과 제주 바다의 포말마저 신비롭다 했죠. 그러면서 그것의 배경이 되는 아픈 4·3의 고통을 일출과 일몰처럼 마주해야 하는 제주인들은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하더군요.

한데, 왜 그럴까요. 이것은 내내 마음에 각인된 과거의 제주입니다. 그렇게, 이 섬 땅에 태어나 유전하고 있는 사람의 기억엔 다행히도(어쩌면 불행히도) 과거의 제주와 현재의 제주가 살아온 만큼 공존합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생명들이 먼 데로 가버리고</font></font>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에 뿌리 내린 제주 팽나무. 허영선 제공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에 뿌리 내린 제주 팽나무. 허영선 제공

새로운 길 위로 묻혀버린 기억이 기어갑니다. 작은 마을길을 걷다가 사라진 그 자취의 흔적과 냄새를 따라 들어가다보면 그렇습니다. 제주도의 현재는 서서히 사라져간 것이 아닙니다. 부숴지고 무너뜨리고 밀어버리고 휩쓸리면서 그토록 지켜오던 수백 년 된 팽나무가 사라지듯 마을의 기억을 지워가고 있습니다. 사라지는 것들의 이름이 어디 한둘인가요. 마을 어디서든 보이던 한라산과 오름의 스카이라인은 고층 빌딩, 펜션으로 시야를 가립니다. 물줄기의 흐름을 오래도록 스스로 잡아내던 마을의 하천들은 무참하게 콘크리트로 뒤덮여지고 있지요. 구불구불 길들은 나날이 직선으로 펴지면서 각을 세웁니다.

이 격류는 분명 낯설기만 합니다. 비밀의 정원은 사라졌습니다. 공기가 달라지고 있고, 제주의 지형이 갈수록 달라지고 있습니다. 속살은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더 드러나는 법입니다. 자본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제주의 모든 정원을 벼락 치듯 덮치고 있으니! 중산간에서 비로소 보이던 그 야생의 황무지는 더 이상 야생이 아닙니다. 흔적도 없어졌습니다. 무지하게 밀어붙이는 개발의 이름 아래.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font size="4"><i><font color="#991900">강정마을, 화순마을, 제주시 탑동, 어디든 그 몽글몽글한 돌들을 무참하게 묻어버린 채. 해안선이 사라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와 함께 모든 생명체들은 먼 데로 가버리거나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font></i></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농어촌의 목가적인 풍경은 먼 풍경이 되고, 요술방망이처럼 돌아서면 생기는 모던한 건물들. 제주를 이루던 선이 변형되고, 그토록 아름답던 마을의 동선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선의 형태가 사라진다는 말? 너무 낭만적인가요. 이제 이 제주 생태계의 끝자락인 해안선은 더 이상 지극하지 않습니다. 사라진 해안선 대신 방파제가 바다와 만납니다. 그렇게 저무는 해를 기다립니다. 강정마을, 화순마을, 제주시 탑동, 어디든 그 몽글몽글한 돌들을 무참하게 묻어버린 채. 해안선이 사라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와 함께 모든 생명체들은 먼 데로 가버리거나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주시 가까운 삼양마을엔 겨우 남겨진 한 톨 제주 초가의 머리가 보입니다. 폭염 아래 축축 늘어진 옥수수밭을 배경으로. 돌과 지푸라기가 꼬여서 큰 바람에도 끄떡없는 지붕. 아흔둘, 송할머니 집입니다. 시집와서 70년, 그 이전 시할아버지대도 살았으니 집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요. 텃밭은 마을 길 넓힌다고 잘려나가 신작로가 되었지요. 그 집 앞 삼양 모래해변으로는 카페, 펜션이 즐비하고 그녀의 집 주변엔 오늘도 신축 건물들이 ‘공사 중’입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통팔달 뚫린 길만큼 멀어지는 마음들</font></font>
삼양마을 아흔둘 송할머니의 텃밭은 마을 길 넓힌다고 잘려나가 신작로가 되었다. 허영선 제공

삼양마을 아흔둘 송할머니의 텃밭은 마을 길 넓힌다고 잘려나가 신작로가 되었다. 허영선 제공

제주의 불지옥 4·3의 복판에서 스물둘 청상이 된 여인. 딸 하나 키워 서울로 시집보냈고, 홀로 그 집 지키는 송할머니. 그녀에게 지금의 변화는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그녀만의 삶의 문화가 소중합니다. 그녀는 올해도 바깥채의 초가 지붕을 새로 올린다 합니다. 직접 띠(새)를 엮어 지붕 이는 일은 힘들지만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긴 세월 지켜온 지고한 순정처럼.

제주시 아흔여섯 고할머니 역시 비슷한 생. 남편은 다섯 살 딸 하나 남겨두고 4·3의 광풍 속에 행방불명. 40여 년 전 자신이 지은 단독주택에 홀로 사는 그녀. 잘 가꿔진 앞마당 텃밭엔 콩잎이 성성합니다. 근데 요즘 잠이 오지 않고 가슴이 벌렁거린답니다. 그 텃밭에 얼마 전 측량기사가 말뚝을 박고 간 뒤부터죠. 길 확장 사업에 그렇게 아끼는 텃밭이 전부 잘려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말문이 막힌다 했습니다.

해안 마을 김할머니 100년 넘은 슬레이트집은 바로 그 유명한 옥색바다, 젊은 바다로 왁자한 월정리 바다 경계에 있습니다. 그녀는 자꾸 집을 팔라며 보러 오는 사람들의 유혹에 시달립니다. 집과 토지를 팔고 아파트로 이동한 노년들. 남겨놓은 마을의 집들은 삶의 집을 도시에 두던 자식들이 어떻게든 지켜내야 할 집이 되지 못합니다.

제주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은 제주의 가치가 제주 사람, 제주어, 제주 역사, 문화라고 말합니다. 돌의 섬, 제주도는 섬 전체가 자연사박물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수록 민속문화를 보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 제주의 생태계, 고유성은 야금야금 자본에 먹히고 있습니다. 과연 제주가 호텔이나 라스베이거스하고 경쟁해야 할까요. 마을과 마을의 토속성, 삶의 문화는 이미 생채기가 났습니다. 농사짓던 땅 위로 펜션이 들어섭니다. 제주 문화를 다르게 재해석한 변질된 정보가 터치폰처럼 전파됩니다. 오래전 신화적인 섬의 분위기에 전율했다던, 제주섬 전체가 거대한 무덤 같다며 쇼크를 받았던 한 프랑스 시인, 그녀는 진짜 관광지가 돼버리면 다시 찾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길은 어디서 나와 이렇게 길의 섬이 됐을까요. 행정가와 정치가들은 흡사 길의 혁명을 사명으로 한 사람들 같습니다. 사통팔달 뚫린 길, 넓어진 길의 섬. 하나 그만큼 마을 올레를 이어주던 따스한 마음에도 거리감이 생긴 것을 알까요.

무릇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 제주특별자치도. 이 땅의 외지인들의 토지 보유 속도는 가히 폭풍 질주의 수준. 결국 자본의 문제일까요? 누구의 입장에 선 개방과 개발인지. 밀물처럼 밀려오는 1천만 제주 관광객 시대에 박수만 보내야 할까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그럼에도 제주 바다에 서 있습니다</font></font>

제주도의 5분의 1밖에 안 된 일본열도의 남쪽 외딴섬 야쿠시마는 1993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섬이죠. 일본 애니메이션 의 배경이 된 이 섬의 70대 환경운동가 효도 마사히루를 제주에서 수년 전 만났을 땝니다. 그가 그랬죠. “섬의 사람들이 왜 관광객의 비위를 맞추려는가. 무엇을 위해 우리가 만들고 있고, 최종의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순식간에 퍼지는 인터넷 세상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는 1만4천 명이 사는 야쿠시마가 하루 소화할 수 있는 적정 인원은 최대 2천 명이며,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운동을 벌인답니다. 그의 결론은 제주도는 제주도다운 것, 야쿠시마는 야쿠시마다운 것, 그것이 생명이란 거지요. 맞았습니다. 정말, 그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우리 눈앞에 현실로 확 터졌고, 터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방심하는 새, 제주의 가치를 이루던 미학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한번 무너진 것들은 어떻게 복원 가능할까요. 복원 프로젝트 자체가 대형화·고급화하면서 질감도, 색감도, 규모도 어색한 얼굴이 됐습니다. 섬 귀퉁이 하나에도 역사의 상처가 깃든 참혹한 아름다움의 섬. 변방이지만 제주섬의 가장 토속적인 것은 가장 보편적인 것, 세계적인 것이란 화두를 내걸던 말은 옛말이 되는 걸까요. 그렇다면 이 모든 원인은 어디 있을까요.

행정가와 정치인, 투자자, 건축가가 가장 큰 문제라고 한 이는 세계 건축의 거장 리카르도 레고레타입니다. 생전의 그가 제주에서 한 말입니다. 모든 도시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면 가장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까 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지 자연을 배경으로 어떻게 상업적인 곳이 되게 할까 하는 데서 문제가 나옵니다. 물론 제주인들 스스로 지켜내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또한 사랑하는 만큼 책임을 피할 수는 없는 일. 제주에 눈을 주고, 살러 오고, 제주를 사랑하는 누구나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당신이라면 어쩔 텐가?</font></font>

그럼에도, 모순되게도, 나는 지금 제주 바다에 서 있습니다. 가슴이 그럽니다. 일몰의 제주 바다 앞에. 붉은 한라의 어깨가 푸근히 감싸고, 검은 바위를 때리는 저 검으나 푸른 바다로 하강하는 노을 앞에서 어떻게 감탄사가 나오지 않겠는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해서, 요동치는 이 급류의 시대, 어쩌면 지금 우리는 제주의 사라지는 끝자락에 서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부여잡고 싶어 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저 해안선의 끝자락처럼. 저 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집을 부여잡고 있는 아흔의 할머니들처럼. 또한 제주는 묻고 있습니다. 지금 제주섬을 꿈꾸는 당신이라면 어쩔 텐가? 그렇다면 대체 제주는 어디로 가야 하지? 그럼 우리의 후대는 뭘 하지?

허영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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