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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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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20% 지지율, 지킬 수 있을까?

호남 쟁탈전 속에서 어렵게 쌓은 정당 지지율 지켜려는 진보정당의 고민… “호남이 아니면 어디서 가능하냐?”는 물음
등록 2016-02-05 17:59 수정 2020-05-03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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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광주에서 얻은 득표율이다. 전국 평균 득표율 3.89%보다 낮은, 전국 광역시·도 중에서 가장 저조한 득표율이었다. 호남의 진보정치는 여기서 시작했다. 호남이 아니면 안 되지만, 호남에서도 안 되는 상황은 한국 진보정치의 슬픔이자 딜레마였다. 가장 진보적인 지역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당이 견고한 지지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서글펐다. 그러나 지방의회·국회의원 선거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호남 전략이 없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지난 1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총선 전략을 발표하면서 “호남 지역에 특별당사를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진보정당 존립에 중요한 지역이란 것이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지난 1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총선 전략을 발표하면서 “호남 지역에 특별당사를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진보정당 존립에 중요한 지역이란 것이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호남에서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과거 20~30%에 육박했기 때문에 이 지지율을 회복하겠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지난 1월5일, 제20대 총선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말했다. 그는 “호남 지역에 정의당 특별당사를 운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만큼 호남이 중요하단 것이다.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도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의 광주 득표율은 2.05%로 여전히 전국 평균 3.01%보다 낮았지만, 총선과 지방의회 선거는 달랐다. 2012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진보신당·녹색당이 광주에서 얻은 광역의원 비례대표 득표율은 20%에 달했다(전남 16%·전북 16%). 노동자 밀집 지역인 울산(18.5%)보다 높은 전국 최고 득표였다. 종북 논쟁 속에서 진행된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진보정당들의 광주 지역 비례대표 득표율은 20%를 기록했다. 전남과 전북의 지지율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윤난실 정의당 당원은 민주노동당 창당 이전부터 광주에서 진보정당 활동을 해왔다. 제4대 광주광역시 의원을 지낸 그는 “진보정당의 호남 전략이 부재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윤난실 정의당 당원은 민주노동당 창당 이전부터 광주에서 진보정당 활동을 해왔다. 제4대 광주광역시 의원을 지낸 그는 “진보정당의 호남 전략이 부재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진보신당으로 분당되기 전 민주노동당은 울산, 창원, 거제로 이어지는 영남 벨트에 당력을 집중했다. 경남 창원에서 권영길 의원, 울산에서 조승수 의원이 당선되는 성과도 있었다.

윤난실씨는 “한국에서 호남과 노동은 다르지 않다”며 “(진보정당이) 호남의 중요성에 진작 주목하지 못해 요동치는 호남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등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오른쪽의 정당들이 호남 쟁탈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진보정당의 존재감이 흔들린단 것이다. 호남 진보정치의 복원을 위해 그는 “이름이 알려진 당의 간판 인물이 호남에 출마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과감한 선택이 필요하단 것이다.

호남에서 진보정당이 더민주를 비롯한 주류 야당의 벽을 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장석준 글로벌경제정치연구소 기획위원은 “소선거구제가 발목을 잡았고, 비례대표 당선을 넘어설 힘을 만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지방선거 등에서 진보정당 후보들이 지역구 30%대의 지지를 받기는 했지만, 당선으로 연결되긴 역부족이었다. 그는 “진보적 민심이 새누리당 반대에 막혔다”며 “이명박 정권 이후 양당 구조 틀은 더욱 강해졌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호남의 주축인 통합진보당 세력이 정당 해산으로 전면에 나서지 못한다. 통합진보당은 지난 총선, 호남에서 2석을 얻었다. 전남 순천·곡성의 김선동, 광주 서구을 오병윤 전 의원은 야권 연대를 통해 진보정당 최초의 호남 지역구 의원이 됐다. 통합진보당은 전신인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마지막 거점이 광주·전남”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호남에 집중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호남에 집중해 후보를 내고, 상당수 당선됐다. 종북 논란이 벌어지고, 정의당이 분당한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통합진보당은 광역의원 비례에서 광주 13.37%, 전남 12.31% 지지율을 얻었다. 새누리당을 누르고 제2당의 위치를 지킨 것이다. 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지역민에게 성실성을 인정받은 기초의원이 당의 지지율을 떠받치는 기둥이었다”며 “지역구에서 30~35%를 득표한 지방선거 후보도 많았는데 양당 구도가 아니라면 당선도 가능한 득표였다”고 말했다.

“거버넌스 힘으로도 가능하다”

녹색당은 호남에서 희망을 보았다. 김수민 녹색당 총선대책본부 대변인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광주와 전남의 기초의원 후보가 20% 안팎으로 기대 이상의 득표를 했다”며 “귀농인이 많은 지역에서 녹색당 지지율이 높은데 호남 일부 지역이 그렇다”고 말했다. 산업화에서 소외된 호남 지역의 특성이 녹색당 친화적이란 것이다.

한편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단체의 협력에 기반한 ‘거버넌스’가 활성화된 호남에서 진보정당만 능사는 아니란 지적도 있다. 한 마을공동체 활동가는 “거버넌스의 힘으로 진보적 사회 실천이 가능하다”며 “야권 연대 이후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구분이 흐려진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과연 호남에서 주류 야당을 넘어선 진보정치는 가능할까?’라는 물음에 통합진보당 관계자, 마을공동체 활동가는 같은 대답을 했다. “호남에서 진보정치가 불가능하다면, 과연 어디에서 진보정치가 가능할까?” 정당이 난립하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호남은 여전히 진보정치의 보루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광주


낯선 광고가 말하는 것
<한겨레> <조선일보> 등에 실린 광주광역시기독교교단협의회의 동성애 반대 광고.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조선일보> 등에 실린 광주광역시기독교교단협의회의 동성애 반대 광고.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용과 명의가 일치하지 않을 때 광고 효과는 배가 된다. 2014년 11~12월, 등에 실린 광고가 그랬다. 제목부터 강하게 호소했다. “윤장현 시장님·장휘국 교육감님! ‘동성애·종교·인권교육 조항’을 개정해주십시오!” 그리고 이어진 첫 줄은 “동성애 문화의 수용을 조장하는 인권헌장·인권조례의 문제점”이었다.
광주인권헌장에 명시된 “성적 지향 등에 관계없이 자신의 문화를 향유하고…”라는 문구를 삭제하란 것이다. 이것을 ‘독소조항’이라고 하는 광고를 낸 주체는 광주광역시기독교교단협의회. 그 옆에 적힌 소속단체 이름에는 광주NCC, 광주YWCA가 있었다. 반민주를 규탄하는 성명에서 보았던 이름이 반동성애 광고에 등장한 것이다. 민주화운동의 한 축이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광주’ 지부 이름이 들어간 광고는 낯설었다. 이처럼 지역 단위 교회에서 반동성애 광고를 낸 곳은 광주가 유일했다. 여러 차례 전국 일간지 전면광고였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노동, 여성, 소수자 등 배제된 자들의 권리를 핵심으로 한다. 진보정당은 이들을 대변하려 한다. 이병훈 노동당 광주시 당원은 “호남 정치인이 장애인, 여성,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다른 지역과 구분될 만큼 진보적인 정책을 제시한 적이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고속버스를 만들라고 요구하며 광주 터미널에서 시위하면 ‘왜 나를 불편하게 하느냐’는 시민의 타박을 듣는다”며 “내 불편을 감수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지키겠다는 반응이 많지는 않다”고 전했다. 시위하는 학생들을 경찰로부터 보호해주던 민주화운동 시대의 광주와 다른 것이다.
민주화 성지에서 인권 도시로 가려는 노력도 있다. 동성결혼을 한 영화감독 김조광수씨가 2015년 4월21일 광주트라우마센터의 초청으로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소수자라서 행복하다’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개신교 단체는 강연장 밖에서 반대시위를 벌였다. “민주 성지 광주는 性정치를 반대한다!” “광주를 이용하려는 소수자 이익단체들은 광주를 떠나라!” 강연을 반대하는 젊은이들이 들었던 손팻말 문구다. 과연 광주가 민주를 넘어 진보로 가는지, 이날의 풍경은 묻는다.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의 광주도 여전히 다른 지역과 다른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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