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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방 한 칸 없는 청춘들

물량 많지 않은 전세에 국한해 실효성 없는 정부의 대학생 전세임대 지원사업… 대학가 전셋값 동반 상승 부작용에 당첨돼도 전셋집 드물어
등록 2012-02-24 15:36 수정 2020-05-03 04:26
» 새 학기를 맞아 대학가는 집을 찾으려는 대학생들의 아우성으로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앞 담벼락에 붙은 원룸·하숙집 광고지를 한 학생이 살펴보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 새 학기를 맞아 대학가는 집을 찾으려는 대학생들의 아우성으로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앞 담벼락에 붙은 원룸·하숙집 광고지를 한 학생이 살펴보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첫 번째 방을 떠올려본다. 학교 정문 앞에 흐르는 작은 개천 주변에 있던 12㎡(5평)짜리 단칸방이었다.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15만원짜리였다. 친구들은 개천을 ‘세느강’이라고 불렀다. 주변에 중국집이 있어서인지 어른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나왔다. 문고판 책으로는 잘 죽지도 않았다. 사전류나 양장본으로 때려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창문이 서쪽으로 나 있어 석양이 기울면 미칠 듯 더웠다. 함께 살던 3학년 선배는, 언젠가 쥐가 자신의 발가락을 물었던 기억 때문에 아예 학교에서 자고 오는 날이 많았다. 취재를 시작하면서 그 골목길을 다시 찾았다.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신 주변 시세는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40만~50만원으로 올라 있었다.

월세 거주 학생이 훨씬 많은데 전세만 지원

새 학기를 맞아 대학가에 ‘집’을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전세, 월세, 하숙집, 고시원 등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 학생들의 아우성은 ‘내 한 몸 누일 공간’이라는 한 점으로 수렴된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고, 두껍다. 누군가는 친구나 선후배의 방에 의탁하고, 성공회대 학생들의 경우처럼 학교 안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기도 한다(898호 문화 ‘저항의 텐트가 매일 밤 꾸는 꿈’ 참조). 특히 전세 물량이 크게 줄고, 월세를 선호하는 집주인이 늘어나자 대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은 배가되고 있다. 서울 YMCA가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 동안 수도권에 거주하는 비수도권 출신 대학생 5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생 주거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세 주택에 거주하는 학생은 9%(68명)에 불과했다. 월세가 36%로 가장 많았고, 기숙사와 하숙이 각각 20%, 15%로 뒤를 이었다. 월세도 “40만원 이상, 50만원 이하”라는 응답이 37%로 가장 많았다. 여기에 수도요금과 전기요금, 난방비 등은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경제적 이유로 2명 이상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크게 늘어났다. 현행 주택법은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의 주거 기준’을 1인 가구의 경우 14㎡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절반 이상(52%)이 이보다 좁은 공간에서 생활했다. 고시원은 절대다수(96%)가 이 기준에 미달했다. 5㎡(1.5평) 이하의 면적에서 생활한다는 응답자도 19명(6%)에 달했다. 이런 고시원에서는 의자를 책상 위로 올리고, 책상 아래 공간에 다리를 구겨넣은 채 잠을 청해야 한다. YMCA는 “대학생 주거비의 부담 증가는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교육 불평등과 주거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며 “대학생 주거 문제는 등록금 문제만큼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고 경고한다.

정부가 시행하는 대학생 전세임대 지원사업도 대안은 되지 못한다. 국토해양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난해 12·7 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전국 9천 명의 대학생들에게 최대 7천만원(광역시와 도 지역은 4천~5천만원) 한도 내에서 전세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당첨된 학생이 전세주택을 물색해 신청하면, 일정한 심사를 거쳐 LH가 집주인과 계약을 체결한 뒤 대상자는 LH에 보증금 100만~200만원에 월세 7만~17만원을 내고 이를 재임대받게 된다. 전국에서 2만2천 명의 신청자가 몰려들었다. 이지송 LH 사장은 접수 첫날인 1월9일 “이게 대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현실이다. 나도 여기 와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내놓은 정책이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줄 리 만무했다. 기초수급자·한부모가정의 자녀 등 1순위 당첨자가 전체의 97.7%인 8790명에 달했다.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한 학생, 그중에서 일부만이 당첨됐다는 이야기다. 2순위 당첨자는 210명에 불과했다.

» 에어컨·화장실·냉장고 등의 설비를 갖춘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고시원. 이 정도의 시설을 갖춘 고시원은 월 45만~50만원의 임대료를 내야 입주할 수 있다. <한겨레> 김명진

» 에어컨·화장실·냉장고 등의 설비를 갖춘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고시원. 이 정도의 시설을 갖춘 고시원은 월 45만~50만원의 임대료를 내야 입주할 수 있다. <한겨레> 김명진

지원대상자 돼도 반 이상 전셋집 못 구해

운 좋게 당첨됐다고 해도 기뻐할 일이 아니다. 조건에 맞는 전셋집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다. 이번 사업의 ‘저작권’을 갖고 있는 당사자가 정작 그 혜택을 보지 못하는 아이러니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년 주거권 문제를 고민하려고 연세대 학생들을 주축으로 설립된 ‘민달팽이 유니온’ 김은진 위원장(23·신학과 4학년)의 이야기다. ‘민달팽이’는 집(껍데기)을 갖지 못해 맨몸으로 현실의 밑바닥을 헤쳐나가야 하는 대학생들을 상징한다. 청년 주거권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자 이 단체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를 이끌고 있는 김씨는 지난해 11월 청와대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참여해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보증금 대출제도가 도입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전세, 월세 등 다양한 임대주거 형태에 맞춰 보증금을 지원해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그는 “임대 보증금이 조금 올라가더라도, 이를 정부 차원에서 지원한다면 월세 부담을 크게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주무 부처 관계자들의 반응이 호의적이었다. 곧 그의 제안은 현실이 됐다. 하지만 전세나 월세 등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이 지원 대상이 될 것이라는 애초의 기대와 달리, 정부의 정책은 실제 물량이 많지 않은 전세에 한정됐다. 김은진씨는 “나도 신청했고 당첨이 됐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학교 근처에서 전셋집을 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까지 15군데의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전셋집을 물색했다. 하지만 결국 포기했다. 정부는 애초 지원 기준이던 전셋집의 부채비율을 80%에서 90%로 완화하는 등의 조처를 단행했지만, 그렇다고 없는 물량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2월16일까지 이번 지원사업에 당첨됐지만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지원을 받지 못하는 대학생은 절반 이상(55%)에 이른다.

대학가 주변은 학생들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집을 찾으려는 직장인,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졸업생들로 이미 포화상태다. “지금 젊은이들은 언제 내릴 수 있을지 모르는 만원버스에 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대학가 인근의 주거 수요가 지나치게 누적돼 있기 때문이지요. 대학만 졸업하면 뭔가 희망이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도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어요. 지금 학생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현재의 고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참 좋은 정책이다, 희망이 생기겠구나 싶었는데 결국 우리 모두가 속은 거죠. 전형적인 탁상행정입니다.” 지원 금액을 전세금 7천만원(서울 기준)으로 명시한 조처는 오히려 대학가 인근의 전셋값 동반 인상이라는 부작용까지 낳고 있다. 집주인들이 당초 5천~6천만원인 전셋값을 7천만원으로 올려 받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 “사실 취지는 좋은 사업이지만 집주인 처지에서 별다른 이익이 없고, 게다가 별도의 서류 준비 등 번거로운 점이 많기 때문에 굳이 이를 통해 세입자를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나마 대학가에 조금 있던 전세매물도 덩달아 전세금이 올라가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원 대상을 전세에 한정하지 말고, 바우처 제도 등을 활용해 월세 혹은 보증금의 일부를 더욱 폭넓게 지원하는 등의 대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지원 금액을 전세금 7천만원(서울 기준)으로 명시한 조처는 오히려 대학가 인근의 전셋값 동반 인상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집주인들이 당초 5천~6천만원인 전셋값을 7천만원으로 올려 받고 있는 것이다.

3년 동안 동아리방에 살다 우울증도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인 김아무개(26)씨는 어머니의 주소지가 서울이어서 이번 전세금 지원사업 신청을 끝내 포기해야 했다. 아버지는 직장이 있는 경기도 안산의 한 고시원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다. 동생이 서울의 다른 대학에 합격해 어머니가 상경했다. 어머니, 동생과 함께 생활할 수도 있었지만 반지하 월세방은 세 식구가 살기에는 너무나 협소한 공간이었다. 한쪽 방에 불을 켜면, 다른 방으로 불빛이 스며들었다. 그는 “가정 형편으로 휴학을 거듭하다 보니 벌써 8년째 대학생이지만, 그동안 독립된 생활 공간을 가져본 것은 2년뿐”이라고 했다. 얼마 전까지 친구 집이나 선배의 하숙방 등을 전전했다는 그는 최근 학생회관의 동아리방으로 아예 거처를 옮겼다. “친구 중에는 동아리방에서 3년 동안 살았던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방을 얻어서 나온 뒤에는 한 달 만에 건강을 되찾았어요.” 마찬가지로 학생회관에서 생활한 뒤부터 기관지염 등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김씨는 “만일 월세를 부담할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도, 제 방을 구하기보다는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남루한 현실은 어떻게든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어진다. 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인 이연상(24)씨는 친구 6명과 한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방 3개짜리 빌라를 보증금 1천만원, 월세 100만원에 구할 수 있던 것은 행운이었다. 월세와 각종 공과금을 합해 1인당 월 20만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한 중앙 일간지의 지역 취재 본부장으로 오랫동안 근무해왔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상황은 아니라는 이씨는 “하지만 집안에 대학생이 2명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에 있다고 해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라며 “화장실이 하나뿐이어서 아침에는 번거로운 경우가 많고, 공간이 좁아서 함께 사는 친구들 대부분이 간단한 옷가지 외에는 짐이나 세간을 들여오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디에 가든 마음이 편하지 않다. 가장 기본적인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서울 생활의 불안함’은 계속될 것 같다”고 했다.

“오히려 고시원이 더 좋았던 같다”

‘나만의 방’을 갖지 못한 청춘들은 오히려 열악한 고시원을 선호하기도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2학년인 황아무개(23)씨는 “고시원을 나온 뒤 서울의 다른 지역에 있는 친구의 자취방에 들어가 함께 살고 있다”며 “실질적으로는 고시원이 더 불편하지만, 독립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스트레스는 오히려 덜하다. 고시원이 더 좋았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한국외국어대 3학년 박아무개(23)씨는 “방은 개인의 역사와 추억이 시작되는 곳이 아닌가. 하지만 아직까지 독립적인 공간, 내 방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들의 개인사, 그중에서 가장 빛나야 할 첫머리를 장식할 단어는 아마도 질박한 빈곤에서 오는 절망이 아닐까.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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