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대학가에 낯설지 않은 단어가 있다. 개나리 투쟁. 개나리가 필 만하면 시작해서 질 만하면 마무리짓는 싸움이라는 의미다. 나이 든 복학생들은 등록금 투쟁이라고 쓴 펼침막을 보곤 개나리 투쟁이라고 읽으며 짐짓 아는 척하곤 했다. 개나리라는 어감이 주듯 봄철이면 등록금 인상을 둘러싼 학생회와 대학 당국의 줄다리기는 일방의 규탄과 일방의 침묵으로 그럭저럭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개나리가 피고 지는 지난 10년 동안 등록금은 두 배가 올랐다. 지난해 사립대학의 한 해 등록금은 1인당 평균 768만원이다.
학생들의 호주머니에 의지하는 대학
요즘 각 대학의 펼침막을 보면 개나리가 철도 모르고 피었다. 등록금 이슈로 뜨겁다. 지난해 반값 등록금이 여당에서부터 이슈로 부각되고,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발표된 뒤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됐다. 한 대학의 학생회 간부는 “지난해 이맘때쯤 분위기와는 다르다”며 “매해 운동권 학생들이 비운동권 학생회가 학교 편을 들어 등록금 문제에 미온적이라는 등 신경전을 벌이는 게 전부였는데, 올해는 게시판·전자우편 등을 통해 학생회 일을 하지 않는 일반 학생들도 등록금 이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말 대학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먼저 나서서 5% 등록금 인하를 공언했다. 정부도 1조7천억원 규모로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을 늘리는 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학생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선 그 인하 폭 때문이다. 반값 등록금을 보여준 서울시립대를 제외하면 전국 대학의 평균 인하율은 2% 정도다. 학교법인이 ‘정상적인’ 회계 운영만으로 내릴 수 있는 등록금이 12%라고 밝힌 것은 다름 아닌 감사원이었다. 지난해 감사에서 지출을 많이 계상하고 수입은 적게 잡은 다음 교비 수입을 법인회계 등으로 돌려쓰고, 법인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교비로 충당하는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대학 당국이 반발을 사는 것은 인하 폭만이 아니다. 인하한 만큼의 등록금을 보전하겠다고 작심이라도 한 듯 노골적으로 비용 절감에 나선 대학 당국의 태도 때문이다. 속속 드러나는 등록금을 둘러싼 백태는 대학 재정이 얼마나 학생들의 호주머니에 의지하고 있었던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 정도면 위력 시위에 가깝다.
우연한 발견이었다. 광운대 총학생회 정책국장인 김민주씨는 ‘혹시나’ 해서 학사일정 수첩을 꺼냈다. 한칸 한칸 세어나갔다. “어? 줄었네?” 교직원용 달력의 학사일정은 15칸에서 멈췄다. 16칸이어야 했다. 광운대의 수업일수가 줄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김씨의 공인 셈이다. “한양대에서 수업일수를 줄였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본 거거든요. 그때는 학사를 담당하는 몇 명을 제외하면 교수님도 잘 모르시더라고요.”
“수업일수 줄여 전기·수도요금 절약”
학교 쪽도 나름대로 할 말은 있었다. 현재 고등교육법상 대학의 의무 수업일수가 학기당 15주로 규정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15주로 운용되고 있던 학교는 서울대·홍익대 등 소수에 불과하다. 숙명여대는 지난해까지 15주 수업을 하다가 수업일수를 오히려 16주로 늘리기도 했다.
“수업권과 직결된 수업일수 조정을 학교 쪽에서 학생들과 소통없이 이미 2년 전 바꿨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죠.” 광운대 총학생회 김민주 정책국장의 얘기다. 수업권이라는 기본권과 직결되는 교칙 개정이 학생의 의견은 배제된 채 이뤄진 것이다.
‘불통’에는 이유가 있었다. 광운대는 이번에 등록금을 2% 인하했다. 그런데 2011년 연평균 등록금 810만원에 32주 수업을 하는 경우 주당 수업료는 25만3000원 정도가 된다. 2% 인하를 기준으로 30주 수업을 계산하면 약 750만원, 주당 26만5000원의 수업료를 지불하는 셈이다. 결국 등록금 총액은 2% 줄었지만 주당 수업료는 오른 셈이다.
이렇게 수업일수를 줄여 비용을 절감해보겠다고 나선 대학이 확인된 곳만 광운대를 포함해 한양대와 단국대까지 3곳이다. 학생들과의 사전 논의는 없었다. 한양대는 중간고사 기간에도 강의를 하도록 권고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수업일수 축소는 없다는 태도이지만, 교수의 재량 사항이고 학생들이 사실상 휴강을 원하는 기간이라는 점에서 해명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에 불과하다. “수업일수를 한 주 줄이면 전기료와 수도요금을 1억원 정도 아낄 수 있다”는 한 대학 관계자의 솔직한 답변이 수업일수 줄이기의 진실에 가깝다. 수업일수만 줄이는 것이 아니다. 한양대는 계절학기 수업을 4주에서 5주로 늘린다. 계절학기 이수 가능 학점도 6학점에서 9학점으로 늘어난다. 학점 관리 등 다양한 이유로 계절학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학생들은 또 그만큼의 부담을 져야 한다.
수업일수가 아니라 교과 자체가 없어지는 곳도 있다. 동아대는 지난해부터 교양과목을 줄이기 시작해 전체 120개 교양과목이 50개로 줄어들었다. 선택권을 잃은 학생들은 동요하고 있다.
“없어진 대표적인 과목이 ‘현대사회와 NGO’ 같은 과목이에요. 말하자면 취업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과목들이죠.”(박규태 동아대 학생복지위원장)
학교 쪽에서 내세운 이유는 경쟁력이다. 공청회를 연 사안이라는 해명도 있었다. 하지만 학생회 관계자의 말은 다르다. “공청회에서는 수업이 어떤 방식으로 감축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안이 논의되지 않았다”며 “다만 교양과목 축소가 순수학문을 죽이는 처사라며 반대 여론이 거셌다”고 말했다.
교양수업, 장학금 축소 등에 나서기도
교양과목조차 경쟁력을 이유로 없앨 수 있느냐는 반론은 끼어들 틈이 없다. 줄어든 과목은 대부분 시간강사가 맡던 과목이다. 시간강사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줄인 것이다. 이렇게 비용 절감에 나선 대학은 동아대만이 아니다. 한양대는 월급제 전임교수들의 의무수업을 주당 6시간에서 7.5시간으로 늘리고 시간강사 강의 비중을 줄였다. 비용 절감 효과는 학기당 2억1천만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같은 방식으로 한국외대·서강대·중앙대 등이 시간강사 과목을 줄였다.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고명우 서강대 총학생회장은 “전임교수의 개인당 수업시간이 늘어나면서 수업의 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며 “강사가 진행하는 다양한 수업이 없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수업 선택권도 침해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교가 비용 절감을 하겠다는 것을 두고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지만 수업권을 침해하는 방식밖에 없었는지 학교 당국에 묻고 싶다”며 “정말 학생을 위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연세대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장학금을 줬다 뺏는 학교’라는 글이 올라왔다. 연세대가 장학금 확충과 함께 장학금 정책을 소득분위 중심으로 변경하면서 원래 장학금을 받기로 한 학생들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하지만 연세대는 최근 장학금 수령이 확정된 학생들에게 취소를 통보했다가 논란이 빚어지자 “가계곤란 장학금을 늘리는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다”며 방침을 번복했다.
연세대의 해프닝이 다른 학교에서는 현실이다. 서울과학기술대·부산대·부경대 등은 성적장학금을 축소하는 것으로 드러나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한양대처럼 신설 학과의 신입생 30명 전원에게 4년 장학금을 준다고 홍보했다가 20명에게만 지급하기로 한 곳도 있다. 장학금만 줄이는 것이 아니다. 동아리 활동 등을 지원하는 예산을 감축하는 경우도 있다. 항공대에서는 동아리 지원금을 감축하기로 해 논란이 되고 있고, 연세대에서도 단과대 지원금 항목에서 예산을 줄인 상태다.
전진희 한국대학생연합 교육실장은 “이 밖에도 상당수 학교에서 장학금을 축소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대학별 자료 공개는 이뤄지지 않는 상태”라며 “학사운영 규칙 변경의 공개가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 생활과 직접적 관계가 있는 사안임에도 학생회가 일일이 요구해야 하고, 그것마저도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은 등 비민주적 대학 운영이 일반적인 관행처럼 뿌리내려 있다”고 말했다.
대학 당국의 노골적인 꼼수에도 교육과학기술부는 침묵한다. 오히려 지난 2월13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대학의 자체 노력으로 등록금 부담이 전체적으로 19%나 줄었다”고 말했다. 학생, 학부모의 인식과 격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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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반값 등록금은 가능한 것인가. 반값 등록금 현실화에는 총 5조7천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리라는 계산이 나와 있다. 반값등록금국민본부는 “이미 예산 1조 8323억원이 확보돼 있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며 “올해는 2학기만 일단 적용된다는 점과 대학들이 2% 정도의 등록금을 이미 인하한 점을 고려해, 추경예산에서 2조원을 편성하면 2학기부터 반값 등록금이 가능하다”는 자료를 내놨다. 일부 대학에서는 희망이 발견된다. 서울시립대는 1학기 등록금부터 이미 반값을 적용하고 있고, 충북도립대는 30% 인하와 단계적 실현, 강원도립대도 20% 인하와 향후 무상교육으로의 점진적 전환 등을 공언하고 있다.
한 취업 사이트의 조사를 보면, 대학생들의 평균 학자금 대출 빚은 1353만원에 이른다. 등록금으로 진 빚 때문에 신용불량이 된 20대가 최근 5년 사이 8배 가까이 급증해 3만 명을 넘어섰다. 겨울에 핀 개나리는 힘겹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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