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인정받는 모성, 아쉬움 쌓이네!

등록 2001-07-04 00:00 수정 2020-05-02 04:21

노동계 반발에 직면한 모성보호법 개정안… 출산·육아에 대한 미완의 사회적 대책

‘모성보호법’이 지난 6월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여성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모성보호 관련법 개정이 국회 발의 1년여 만에 드디어 본회의 통과라는 마지막 수순만을 남겨놓게 됐다. 꾸준히 법개정을 요구해온 여성계는 오랜 숙원을 풀게 됐다며 즉각 환영을 표시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한국여성민우회로 구성된 여성노동법개정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모성보호 확대와 사회분담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며 조속한 본회의 통과를 촉구했다.

그러나 여성계의 감격이 미처 잦아들기도 전에 한쪽에선 법안 통과에 항의하는 거센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모성보호법이 엄청난 추가부담을 불러올 것이라며 줄곧 반대해온 재계만이 아니다. 이번엔 모성보호법의 한축을 이루는 노동계가 오히려 이 법안의 본회의 통과를 저지하겠다며 일전불사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여성계 환영 표시에도 노동계 저지 나서

그 중심엔 민주노총이 있다. 상임위 통과 나흘 만인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와 민주당사, 한나라당사 앞 등에선 민주노총 여성간부 6명이 모성보호법 본회의 통과 저지를 위한 동시다발 1인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가사와 육아, 특근과 야근, 연장근로를 형상화한 5개의 돌덩이를 목에 매단 채 너덜너덜해진 근로기준법 우산을 쓴 모습으로 3시간 남짓 항의시위를 벌였다.

여성노동자들의 모성보호를 위해 마련된 법안의 통과에 여성노동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은 퍽이나 역설적이다. 모성보호법안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심대한 내부균열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모성보호 강화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모성보호법 개정안에 감춰진 근로기준법의 여성보호조항 ‘개악’을 향해 비난의 눈초리를 세우고 있다.

일반적으로 모성보호법이라고 뭉뚱그려 지칭되고 있지만, 사실 이번에 상임위를 통과한 것은 단일법안이 아니다. 정확히는 모성보호와 관련한 3개 법률의 개정안이 통합처리된 것이다. 근로기준법 중 모성보호조항과 남녀고용평등법 중 육아휴직조항 관련 개정안, 그리고 이 두 조항의 개정에 필요한 재원과 관련된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이들 개정안은 일단 모성보호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부담을 크게 늘린 것으로 평가된다. 먼저 출산휴가일수를 현행 60일에서 90일로 한달 더 늘렸다. 또 현재 무급으로만 허용하던 육아휴직을 유급으로 바꿨다. 금액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되지만, 그동안 받던 봉급 전체를 보상해주지는 않을 것이며, 대략 한달 20만∼25만원선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추가재원은 고용보험과 국가재정에서 절반씩 부담하도록 했다. 이 개정안은 본회의를 통과하면 이르면 올 11월부터 시행되게 된다.

그러나 이와 함께 근로기준법의 일부 여성노동 관련 조항도 동시에 바뀌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여성노동자의 야근과 연장·휴일근로, 위험유해작업 및 갱내근로를 규제해온 근로기준법의 4개 조항도 이번 개정안에 포함돼 대폭 완화·삭제된 것이다. 민주노총은 “여성노동자에게 야간근로 등을 시킬 때 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게 한 조항을 없애, 여성노동자의 모성과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들이 사라지게 됐다”며 “되로 받고 말로 빼앗긴 셈”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여성노조도 성명을 내어 “이번 개정은 출산휴가 연장을 미끼로 한 노동법 개악이며, 근로기준법의 전면적인 개악의 출발”이라고 규탄했다.

민주노총은 애초 연대회의 출범 때부터 모성보호법 개정활동에 참여해왔다. 하지만 지난 5월 중순 바로 이 문제를 두고 의견이 갈리면서 연대회의를 탈퇴했다. 민주노총의 한 여성 간부는 “연대회의가 민주노총의 동의없이 소수의 권리를 보장받는 대가로 전체 여성노동자의 중요한 권리를 일방적으로 양보했다”고 말했다. 연대회의쪽은 당연히 달리 보고 있다. 김기선미 연대회의 정책부장은 “근로기준법 개정조항들은 남녀평등과 일부 배치되는 측면도 있고, 직무배치 등에서 여성노동자에 불이익을 주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며 “이번 개정안도 본인 동의를 얻고 연장근무 등을 시키게 돼 있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총이 연대회의 안에서의 합의를 깨고 나간 것은 현 정권에 대한 정치적 저항의 성격이 크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모성보호 확대비용 일부 정부지원

여성노동권 조항의 개정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빚는 가운데서도, 모성보호조항 개정만을 떼놓고 보면 여성계와 노동계 모두 진일보한 조처로 평가하는 데 이견이 없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인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본격 제기해 일정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한국의 모성보호 수준은 무척 열악한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국제아동보호단체인 ‘어린이구하기’가 지난 5월8일 발표한 모성지수에서 한국은 세계 22위에 그쳤다. 사회주의국가인 쿠바(11위)는 물론 칠레(17위), 체코(20위) 등보다 낮았다. 여성계는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터키나 멕시코보다도 낮은 54%에 머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며 “출산과 육아의 부담으로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의 수많은 고학력 여성인력이 노동시장에서 사장되는 현실이야말로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주요인”이라고 주장해왔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출산율 저하도 취약한 모성보호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적돼왔다. 지난해 한국 여성의 출산율은 1.4명으로 프랑스보다 낮았다. 정영숙 한국노총 여성국장은 “사회성원의 온전한 재생산이 불가능한 ‘출산파업’ 수준의 낮은 출산율을 돌이키려면, 출산과 육아를 개별 가정의 책임이 아닌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모성보호법 개정안은 이런 견해를 상당부분 반영해, 사회적 책임과 부담을 강조하는 쪽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재계는 그동안 출산휴가 연장과 육아휴직 유급화에 따른 기업 부담의 증가를 우려해왔다. 이번 개정안은 모성보호 확대에 필요한 금액을 고용보험과 정부예산으로 감당하게 해 개별기업의 부담을 많이 덜었다.

물론 고용보험은 기업과 노동자가 절반씩 내는 보험료로 운영하게 돼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부담이 전혀 없다고 하긴 어렵다. 재계는 벌써부터 막대한 추가비용에 따른 고용보험 부실화를 우려하고 있다. 김영배 경영자총협회 전무는 “유급 출산휴가가 한달 늘어나고, 유급 육아휴직을 대상자의 70%가 신청한다면 1조3천억원, 50%만 신청한다면 9614억원가량의 비용이 추가된다”며 “고용보험이 흔들리면 기업부담도 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계의 이런 계산은 너무 과장된 엄살이라는 반박을 받고 있다. 출산휴가 확대에 따른 추가부담은 대략 한해 1천억원 정도로 고정돼 있고, 육아휴직의 유급화 비용도 경총의 계산보다는 훨씬 적으리란 것이다. 경총은 육아휴직 대상자인 여성노동자 13만명과 남성노동자 23만명의 대부분이 최대 10.5개월인 육아휴가 기간을 완전히 사용하는 경우를 상정하고 있다. 반면 연대회의는 “유급화한다고 해도 남성들의 육아휴직률은 미미할 것이고, 여성들의 육아휴직률도 20% 정도에 그칠 것”이라며 “추가부담은 연 632억원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도 유급 육아휴직 신청자가 처음 20%로 시작한 뒤 매년 10%씩 늘어나 2004년 2천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재계는 추가비용 타령… 모성보호 아직 멀었다

국제적 기준에 비춰보더라도, 이번 모성보호관련법 개정은 그다지 파격적인 것은 못 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제노동기구는 지난해 6월 출산휴가의 최저기준을 12주(84일)에서 14주(98일)로 늘렸다. 프랑스가 16주 출산휴가를 시행하는 등 출산휴가를 14주 이상 법제화한 나라는 이미 57개국에 이르고 있다. 북한도 지난 93년 제정한 어린이 보육교양법에 따라 150일의 유급 출산휴가를 보장하고 있다. 선진국가 중 이에 못 미치는 나라는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 정도가 유일한 실정이다. 김기선미 연대회의 정책부장은 “미국은 연방법상 모성보호와 관련 유급휴가 규정이 없지만, 주에 따라선 소득의 60∼70%를 보전해주는 유급휴가를 주는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제도 오스트리아와 벨기에,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 이미 유급화가 시행되고 있다. 스웨덴은 12개월간 임금의 80%를 휴직급여로 지급하고 있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정도가 무급제를 고수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이번의 개정안은 모성보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환기이긴 하지만, 모성보호의 충족과는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다. 그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결정하는 것은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와 시행령 확정을 둘러싼 여성계와 노동계, 재계, 정치권의 얽히고 설킨 각축일 것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