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집회·표현의 자유 부문에서 미국산 수입쇠고기의 위험성을 보도한 문화방송 〈PD수첩〉 관련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판결(2009고단3458)과 12월2일 선고된 서울중앙지법의 항소심 판결(2010노380)을 심사위원 전원이 일치해 ‘디딤돌 판결’로 선정했다.
국민의 기본권 위협받는 현실 반영
노동 부문에서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판결, KTX 여승무원 판결 등이 후보로 올랐으나,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판결(대법원 2008두4367)이 최종 낙점을 받았다. 2009년 이 ‘최고의 판결’로 선정한 대법원의 예스코 판결과 앞의 현대중공업 판결을 합쳐놓은 것과 같은 소중한 판결이라는 노동법 학계의 의견을 감안했다. 나아가 교원단체 및 노동조합에 가입한 교사의 실명과 그들이 가입한 단체 등이 포함된 자료가 해당 교원들의 사생활 비밀과 자유 및 개별적 단결권, 그리고 교원이 가입한 노동조합의 집단적 단결권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보라고 판단한 서울남부지법 판결(2010카합211)도 노동조합의 단결권 보장에 실질적 기여를 하는 판례로 보아 선정했다.
경제정의 부문에서는 최종 선정된 판결(대법원 2008두14296)과 용산 사건의 발단이 된 용산4구역 재개발 관리처분계획의 절차상·내용상의 하자를 인정한 판결(서울고법 2009누28461)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논의 결과 선정된 대법원 판결은, 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하면서까지 대기업의 부당한 하도급 관행을 바로잡아 앞으로 대기업의 올바른 하도급 관행을 정착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의견이 모아졌다. 덧붙여 지난해 이 재개발 조합의 설립 무효를 인정한 판결(서울고법 2008나38341)을 선정한 바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형사사법 부문에서는 용산 참사와 관련해 검사의 수사기록 열람·등사 거부는 위법하다며 피고인들에게 손해배상을 인정한 판결(서울중앙지법 2010가단67744)을 선정했다. 참고로 검사의 수사기록 열람·등사 거부 결정를 취소한 헌법재판소의 결정(2009헌마257)도 거론됐으나, 이는 피고인들이 우여곡절 끝에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이미 수사기록을 입수한 뒤에 내려져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 실질적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선정에서 제외됐다.
여성·가족 부문에서는 2010년 한 해 동안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데 기여한 판결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다만 지난해 12월11일에 선고돼 2009년 ‘올해의 판결’ 선정 과정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판결을 찾아내 선정하게 됐다. 자녀의 성과 본을 양부의 성과 본으로 변경하는 것을 허가한 이 판결(대법원 2009스23)은 가부장적 전통을 탈피하고 개인의 존엄과 행복을 보장함으로써 아동과 여성의 인권 보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교육 부문에서는 고등학교 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판결(대법원 2008다38288)을 선정하자는 의견도 상당수 있었다. 하지만 전 국민의 관심사인 대학입시에서 고려대가 이른바 ‘고교등급제’를 실시한 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창원지법 판결(2009가합2682, 2009가합3043(병합))이 더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환경 부문에서는 선정된 판결(대법원 2009누36363)과, 공장 설립으로 수질오염 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물금취수장에서 취수된 물을 공급받는 부산광역시 및 양산시 주민들에 대해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침해되거나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하여 원고적격을 인정한 판결(대법원 2007두16127판결)을 두고 고심했다. 논의 결과 후자에도 큰 의미가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환경영향평가를 거치지 않은 경우 공사가 진척됐다는 등의 사정을 감안해 미온적인 판결을 할 수 없음을 명백히 한 판결을 선정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행정 부문에서는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보조금 지원을 중단한 것이 위법하다는 판결(서울고법 2010누3253, 대법원 2010두17113)을 선정했는데, 서울고법은 사단법인 ‘한국여성의 전화’에 대해서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한 바 있다(2010누537).
마지막으로 생활 속의 권리 부문과 관련해서는 발암우려물질인 ‘브론산염’을 국제기준보다 과다 함유한 생수 제품을 적발하고도, 이에 대한 정보공개를 거부한 환경부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한 판결(서울고법 2010누12246)이 거의 만장일치로 선정됐다.
10개의 판결(같은 사건에 대한 하급·상급심 판결을 공동 선정한 경우 1개로 셈)을 선정해놓고 보니 일반 시민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판결이나 소수자 인권 보호와 관련된 판결은 소수이고, 표현의 자유, 노동기본권, 환경권 등과 관련한 판결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이명박 정부하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추려진 10개의 판결 중 최고의 판결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결국 현 정부하에서 대표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 반영돼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PD수첩〉 무죄판결을 선정했다.
최악의 판결도 헌재 결정 중에서 나와
한편 ‘걸림돌 판결’과 관련해서는 군대에서 불온도서 소지 등을 금지하는 군인복무규율 16조의 2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한 헌재 결정(2008헌마638결정)과, 군법무관들이 이와 같은 헌법소원을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파면한 것이 정당하다는 서울행정법원 판결(2009구합14781)이 공동으로 ‘최악의 판결’로 선정됐다.
최악의 판결 이외에도 심사 과정에서 도마에 오른 헌재 결정이 많다. 2차 미디어법 권한쟁의 기각결정(2009헌라12)이 걸림돌 판결로 선정됐고, 사형제 합헌결정(2008헌가23), 국회 앞 집회금지 규정에 대한 합헌결정(2006헌바20 59(병합)), 48시간 유치장 구금행위 각하결정(2008헌마628) 등이 후보로 올랐다. 헌법재판소가 최고이자 최후의 헌법수호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제 기능을 다하도록 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숙제를 남겨주었다.
한택근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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