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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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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줄여서 가격 내렸나

등록 2001-06-20 00:00 수정 2020-05-02 04:21

다단계상품 특성상 가격 비교 불가능… 고수익 배당 대물림은 이론상 가능

정말 그렇게 질좋고 값이 쌀까? 또 회원가입만 하면 손쉽게 큰돈을 벌 수 있을까?

다단계판매 회원으로 가입할 것을 권유받은 이들에게 우선 들었을 법한 의문점은 이 두 가지일 것이다. 제품이 좋고 값도 싸다면야, 다단계이든 뭐든 어떻다는 말인가. 거기다 돈까지 벌 수 있다는데.

파격적 가격에 숨어 있는 진실 찾기

다단계판매회사는 서울지역에만 300개를 넘는데다 한 회사가 취급하는 품목이 수백 가지에 달해 가격이 싼지, 질이 좋은지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다만 회사쪽의 설명대로 광고비를 절약하고 유통단계를 줄이는 것만큼 파격적으로 값이 싸다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로 의문점이 많다. 또 다단계판매를 통해 돈을 버는 경우는 극소수의 행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다단계판매업계 1위인 한국암웨이를 예로 들어보자.

우선 제품값. ‘암웨이제품 카탈로그 2001 여름호’에 소개된 고급중성농축 액체세제 ‘쿨 워시’ 1리터짜리의 권장소비자가는 1만7900원, 회원판매가는 1만3750원이다. 이 정도로 가격이 싼지, 비싼지 단정하기는 힘들다. 회사쪽은 농축액 상태로 희석해 쓸 수 있어 국내 다른 제품보다 훨씬 싸고 질도 우수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내 세제류도 희석해서 쓸 수 있고 이런 것을 감안할 때 암웨이제품이 훨씬 비싸다는 실험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농축-희석’ 논란과는 상관없는 제품의 값은 어떨까. 암웨이 카탈로그에는 ‘글리스터 칫솔’(4개들이)의 권장소비자값 1만5400원, 회원판매값은 1만1800원으로 씌어 있다. 이 또한 싼 것인지, 비싼 것인지 판별하기 어렵다. 비교대상이 되는 국내 제품이 회사별로, 제품별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한국암웨이가 판매하고 있는 제품은 무려 400가지를 웃도는데, 세제·칫솔처럼 대부분 미국에서 들여오는 것들이다. 따라서 국내에는 마땅한 비교대상이 없으며 이 때문에 가격수준을 평가하기 곤란하다. 회사쪽은 써본 소비자가 안다고 하지만 제한된 정보에 갇힌 일반인들이 제대로 판단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따른다.

그렇다면 국내 제품은 어떨까. 한국암웨이는 지난 98년부터 현지화 전략의 하나로 원포원(one-for-one)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외제품만 들여다 팔아 국부를 유출시킨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미국서 개발된 새 상품을 국내에서 판매할 때마다 한국기업 제품 하나씩을 선정해 함께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지난 4월 말 현재 국내 업체 31개사의 140여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암웨이가 취급하는 국내 제품의 경우 미국에서 들여오는 제품과 달리 대리점이나 할인점에서도 팔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비교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난점이 있다. 국내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백화점, 대리점, 할인점 등 납품처마다 다른 사양(모델)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능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는 유사한 모델을 비교하는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암웨이에 공급하고 있는 김치냉장고 ‘다맛’(모델명 SKR1351SA). 암웨이 카탈로그에는 권장소비자값 91만8390원, 회원판매값은 83만4900원이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와 가장 유사한 모델은 SKR1352BD이며 대리점 판매가는 80만∼85만원 수준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암웨이에 납품하고 있는 제품의 경우 옵션을 달리하는데, 그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설명대로 기능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면 암웨이제품이 대리점보다 싸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대리점보다 더 싼값에 공급될 것으로 보이는 할인점값을 감안해야 한다.

(주)동양매직의 ‘매직 가스오븐 레인지’(모델명 GOR-40M1A)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제품의 암웨이 회원가는 76만3950원으로 돼 있다. 동양매직에 확인한 결과 유사한 모델은 GOR-4M01Q이며 대리점 가격이 70만원 안팎이다. 오히려 암웨이 회원값보다 싸다. 이에 대해 동양매직 관계자는 “암웨이로 공급되는 제품은 기계식 중에선 최고급이며 대리점의 유사모델에 비해 원가가 6만∼7만원 더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암웨이 회원가와 대리점 가격이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요약하자면, 대부분 제품들은 비교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어느 정도 비교할 수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싸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국내 제품만을 취급하고 있는 다단계판매회사도 마찬가지이다.

복잡한 회원 보상체계는 누굴 위한 건가

제품광고를 하지 않고, 유통단계를 확 줄였다고 하는데도 다단계판매회사의 제품값이 회사쪽의 주장과 달리 그다지 싸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건 물론, 회사와 판매원에 돌아가는 몫(매출에 따른 보상) 때문이다. 매출에 따른 판매원 몫을 감안하면 그만큼 제품이 싼 측면도 있긴 하다.

제품값 비교가 어렵듯이 회원에 대한 보상체계 또한 다단계회사마다 각각 다르고 너무나 복잡해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먼저 사업을 시작한 상위 라인이 몫을 많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공통된 사항이다.

여기서도 암웨이의 예를 들어보자. <그림 참조>. 그림에서 S는 나에게 암웨이 정보를 전달한 스폰서이며 A, B는 나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은 이들이다. 넷 모두 암웨이로부터 제품을 사서 쓰는 소비자이다. 점선은 정보전달 경로를 가리키며 실선은 각자 필요한 제품을 사 쓴다는 뜻이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각자 20만원을 소비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80만원의 매출이 발생한다. 암웨이는 직접 광고를 한다거나 유통을 시키지 않았는데, 80만원의 매출을 올린 셈이므로 보상체계에 따라 6%(4만8천원)를 지급하게 된다. 여기서 4만8천원은 S가 다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넷에게 기여도에 따라 나뉘는데, 암웨이의 보상방식에 따르면 나에겐 2만4천원이 배당된다.

여기서 나아가 내가 6명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6명이 각각 4명, 그 4명이 각각 2명을 가입시키면 총79명이 되며 이들이 모두 각 20만원씩 소비할 경우 나에게 돌아오는 배당금은 모두 144만6천원에 이른다. 이는 ‘6-4-2 법칙’이라고 하며 암웨이쪽에선 대단히 현실적인 가정이라고 설명한다.

직장에서 받는 월급과는 별도로 140여만원을 다달이 꼬박꼬박 받는다고 생각해보자. 더욱이 이같은 고정적인 돈줄이 대대손손 상속까지 된다고 한다. 노력 여하에 따라 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수도 있다. 얼마나 환상적인가.

그렇지만 이런 환상이 실현되려면 많은 `가정'이 전제돼야 한다. 회원을 그만큼 가입시켜야 하며 또 그렇게 가입시킨 하위 회원들이 지속적으로 그만큼의 소비를 해줘야 한다.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암웨이에선 그룹매출이 1천만점(1천만원에 상당)이 넘으면 SP라고 하고, 이 상태를 6개월 지속하면 DD라고 부른다. DD 이상을 6명 배출하면 다이아몬드DD라고 부르며 이들의 연봉은 보통 1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암웨이 회원은 활발히 사업에 나서고 있는 이들만 해도 14만명을 웃돈다. 그런데 각 단계마다 몇명씩인지는 공개되지 않고 있어 고소득을 올리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쏟아지는 다단계상품, 불법도 수두룩

그나마 이는 합법적인 공간에서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있는 사례다. 예전에 문제가 된 적이 있는 고가의 자석요, 건강식품 등을 불법·변칙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회사들에선 값 비교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욱이 제품에 불만을 느껴 환불받으려고 하면 이미 회사가 문을 닫고 없어진 경우까지 있다. 각 시도에 등록하는 절차를 거쳐 합법적으로 하고 있다 하더라도 회사의 통제권 밖에 있는 판매조직별로 고가의 제품을 아래 조직으로 떠넘기는 불법·사기 행각이 벌어지는 수도 많다. 돈을 벌기는커녕 자칫 패가망신할 수도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다단계판매회사에 관심이 있더라도 단기간에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은 버려야 뜻밖의 낭패를 면할 수 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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