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전쟁불사론, 청와대는 구경한다

보수 언론 연일 ‘북 공격설’ 앞장서…“국방부 따라붙고 청와대는 모른 척하는 국면”
등록 2010-04-06 17:24 수정 2020-05-03 04:26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의 기사만 본다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은 진작부터 명료했다. 북한의 공격이다. 가 먼저 치고 나갔다. “북한이 지난해 11월 대청해전 패배 이후 보복을 공언했다. …군 정보 소식통은 ‘반잠수정 어뢰함을 통해 은밀하게 공격을 가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인 3월27일치 3면 기사다. 도 하루 뒤, 지면을 펼쳤다. “얕은 수심·강한 폭발, 외부 요인이라면 기뢰일 확률 높아”(3월28일치 2면), “북, 자폭임무 인간어뢰 부대 있다”(〃 6면) 등을 보도했다.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이명박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30일 오후, 천안함 침몰 사건 현장인 백령도를 방문해 실종자 가족이 탑승한 광양함에 올라 장병들과 악수하고 있다. 한겨레 조보희 기자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이명박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30일 오후, 천안함 침몰 사건 현장인 백령도를 방문해 실종자 가족이 탑승한 광양함에 올라 장병들과 악수하고 있다. 한겨레 조보희 기자

도 연일 북 공격설을 주요 기사로 다뤘다. “군, 잠수정의 어뢰 공격 혹은 기뢰, 우선적으로 고려”(3월29일), “‘북한 개입 가능성 없다고 한 적 없다’ 김 국방”(3월30일), “침몰 전후 북 잠수정이 움직였다”(3월31일), “최 함장 ‘피격당했다’ 첫 보고”(4월2일) 등을 1면 머리기사로 잇따라 내보냈다.

대통령은 북 공격설이 마땅치 않다?

이런 보도를 내놓는 이유도 스스로 밝혔다. “천안함이 북한의 기뢰 또는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한 것이 사실로 입증되는 순간 대한민국은 국가적 차원의 대응을 결정해야 할 고비를 맞게 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전시에 준하는 국가적 위기도 각오해야 한다.”( 3월30일치 사설) “대한민국은 천안함 침몰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즉각적이고 확고한 결단을 내리고 행동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3월31일치 사설) 전쟁을 각오하자는 이야기다.

조갑제 전 대표는 더 노골적으로 말했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없거나 낮다고 상부에 보고한 이들을 가려내 처벌해야 한다. 전시하 국가에서 공무원이나 군인이 거짓 보고를 하면 최고 사형이다.” “어뢰에 의한 공격은 보통 선전포고에 해당한다. 이 대통령은 ‘나는 전쟁을 결심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조갑제닷컴’에 올린 글이다. 북한이 선전포고를 했으니 이미 한반도는 전시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정부 관료 가운데 이런 태도에 힘을 싣고 있는 것은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다. 4월2일 국회에 출석해 “어뢰와 기뢰 두 가능성이 다 있지만 어뢰 가능성이 좀더 실질적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TOD(열상감지장비)를 찍는 병사가 침몰 당시 ‘물기둥을 본 것 같다’는 진술을 했다”고도 말했다. “(사고 당시 측정된 지진파는) 폭발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북한 연계설을 사실상 지지하는 듯한 발언이다. 국방부 장관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이명박 정부 역시 ‘전쟁 불사’ 쪽에 무게를 둔 것일까?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반응은 어중간하다. “북한이 개입됐다고 볼 만한 증거는 아직 없다.” 4월1일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의원과 오찬을 한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한 말이다. “(사고 원인 규명이) 굉장히 오래 걸릴 수 있다. 1년이 더 걸리는 경우도 있다.” 같은 자리에서 한 말이다. 오히려 이 대통령은 보수 언론을 겨냥한 듯 “북한 기뢰 등도 (침몰)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지, 어느 하나로 몰고 가며 추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보수 언론과 군이 주도하는 ‘북한 공격설’이 마뜩지 않다는 이야기다.

북한과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것은 역대 보수 정권이 즐겨 사용했던 정치 카드다. 국민의 위기의식을 부추겨 다른 정치 현안을 덮는 데 활용해왔다. 마침 두 달여 뒤에는 지방선거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이 대통령의 태도는 ‘북풍’의 유혹에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국회 국방위 소속의 한나라당 중진의원은 “청와대의 관심은 ‘북풍’을 지방선거에 이용하는 데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에 목을 매고 있다. 북한이 연계됐다고 주장하면, 당장 국민이 단호한 조치를 하라고 할 텐데, 그렇게 할 자신도 없을 것이다.” 이 의원은 “오히려 이 대통령은 실제로 북한이 관련돼 있을까 싶어 골치 아파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전문가들은 국가 신인도 악화 등이 불가피한 ‘안보 위기’가 이명박 정부에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북이 한 일이라 해도 이명박 정부가 안보를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며 “현 정부로선 이번 사건의 정치적 파장을 줄이려 최대한 애를 쓸 것이고, 심지어 사고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어중간한’ 행보가 앞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이 교수는 “현 단계는 여권의 정치적 참모 역할을 하는 가 앞장서고 국방부가 못 이기는 척 따라붙고, 청와대는 그냥 모른 척하는 국면”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강성 발언’에 대해 “일개 장관이 청와대와 내적인 교감 없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며 “뉴라이트 인사 등이 포진한 청와대가 등에 정보를 흘리면서 여론을 떠보고, 그게 잘 먹혀들면 그다음 구상을 하되, 만일 북한 공격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청와대의 책임은 피해나가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들면 순식간에 돌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구 미제로 남으면 계속 ‘북풍’ 불 수도

북한 연계 여부를 정부가 확정 발표하지 않고 ‘영구 미제’로 남길 경우도 문제다. ‘북풍’의 유혹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청와대 주변을 떠돌 가능성이 높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사고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수 언론이 계속 북한의 책임으로 몰고 간다면, 이번 사건이 보수파의 재결집에 활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침몰한 천안함은 이명박 정부가 맞닥뜨린 치명적 도전임이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건, 국민 역시 까다로운 숙제를 안게 될 것이다. 전쟁인가, 평화인가. 또 한 번의 대논전이 다가오고 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