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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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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의 외로운 대화


크로스컨트리 출전하는 이준길·이채원…
스키를 탄 채 눈 쌓인 산허리를 빠르게 걸어갈 그들의 선전을 기원하네
등록 2010-02-09 15:28 수정 2020-05-03 04:25

지난해 이맘때 북유럽에 다녀왔다. 누가 억지로 보낸 게 아니라 내가 자발적으로 간 거다. 한국문학번역원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을 선택했다. 한겨울 북구의 지독한 추위를 느껴보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잠깐 미쳤나? 나도 모르겠다. 추웠다. 당연히 춥지, 그럼 안 추울 거라고 생각했냐, 자책하다가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내가 한겨울의 스톡홀름을 경험해보겠나며 자신을 위로했다. 따뜻하면 위로하고 추워지면 자책했다.

사방이 눈이었던 스웨덴의 추억

(왼쪽부터) 이준길·이채원 선수. 연합 유형재

(왼쪽부터) 이준길·이채원 선수. 연합 유형재

사방이 눈이었고, 눈은 절대 녹지 않았다. 눈은 벽이자 카펫이자 숲이자 국경이었다. 그래, 요즘 한국엔 이렇게 눈이 오지 않지. 어릴 땐 참 눈이 많이 왔는데. 할 일이 없었으므로, 쌓인 눈을 자주 보았다. 사방의 눈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에 고립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도 나를 찾아올 수 없고, 내가 누구에게도 찾아갈 수 없는, 완벽한 외로움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유럽 여행 중 산꼭대기 뮈르달 기차역에 놀러 갔을 때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아보았다. 발목까지 눈이 찼다. 어쩌면 북유럽의 모든 길은 눈으로 연결돼 있는 것은 아닐까. 이들에게는 눈이 곧 길이 아닐까. 눈에 귀를 갖다 대면 이웃 나라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까. 북유럽 사람들은 아마도 오래전부터 스키를 신고 이 눈길을 쓸쓸히 걸었을 것이다. 스키를 신고 전쟁을 하고, 스키를 신고 친구를 만나러 가고, 스키를 신고 사냥을 했을 것이다.

크로스컨트리라는 경기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과장도 심하시네, 어떤 스포츠이기에 나라를 가로지른다는 표현을 쓴단 말인가” 싶었는데, 북유럽에 다녀온 이후에는 그 이름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크로스컨트리라는 이름만 들어도 어떤 풍경이 떠오른다. 눈 쌓인 산허리, 한 남자가 스키를 타고 빠른 속도로 걸어가고 있다. 주위엔 아무도 없다. 주위는 완벽한 하얀색이다. 그는 외롭게 나라를 가로지른다. 지역을 가로지르고 마을을 가로지른다. 숲을 지날 때 나무에 쌓였던 눈이 바람에 툭, 떨어진다. 눈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고요한 숲에 울려퍼진다. 그 사람은 잠깐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길을 달린다.

물론, 실제 경기는 그렇지 않다. 주변은 시끌벅적하고, 선수들은 죽을 힘을 다해 달린다. 산길과 숲길을 조용히 가로지르는 모습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스키를 타는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바깥은 아무리 시끄러워도 선수들의 마음은 아주 고요할 것이다. 고요한 마음으로 눈길을 달릴 것이다. 크로스컨트리 중계를 볼 때마다 그들의 고요하고 외로운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처연해질 때가 있다.

그들의 외로움만큼 조용한 응원을 해야지

중계를 볼 때마다 아나운서나 해설자 없이 그들의 가슴에 마이크를 달아두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숲과 나무에서 떨어지는 눈 소리와 선수들의 숨소리만으로 중계를 해야 제대로 된 크로스컨트리 중계가 아닐까. 대한민국에서는 이준길(24)·이채원(29) 선수가 출전한다. 그 선수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어떤 길에서 연습을 했는지, 어떤 이유로 크로스컨트리를 선택했는지 전혀 모른다. 텔레비전 중계에서 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까. 중계 화면에서 그들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조용히 그들의 외로움을 응원해주고 싶다. 올해에는 한국에도 눈이 많이 왔으니 외로운 산길을 달리는 게 조금은 익숙해지지 않았을까.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

김중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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