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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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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기적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국가대표>로 관심 크게 늘어난 스키점프…
‘창공의 자유로움’ 기본이념 대신 메달 획득 부담감만 늘어
등록 2010-02-09 15:04 수정 2020-05-03 04:25

일본인 지인이 물었다. “영화 를 봤느냐?”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봤다고 했다. 재밌었단다.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가족에게 영화 이름을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일본엔 ‘국가대표’(國家代表)란 말이 없다”고 했다.

유달리 국가주의 깊이 밴 한국 스포츠

스키점프. 한겨레 박종식 기자

스키점프. 한겨레 박종식 기자

실제로 일본엔 그런 말이 없다. ‘내셔널팀’(national team)이란 표현을 쓴다. 언뜻 비슷한 뜻 같지만, 차이는 크다. 국가대표는 말 그대로 국가를 대표하는 이다. 국가대표팀은 국가를 대표하는 팀이다. 그러나 내셔널팀은 나라·지역 단위로 결성되는 팀을 말한다. 국적을 초월하는 광범위한 의미다.

‘국가대표 선수’처럼 개인을 따로 부르는 말도 없다. 대개 ‘내셔널팀의 일원’으로 부른다. 일본뿐만이 아니다.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자국 선수단을 가리켜 “국가대표” “국가대표팀”으로 부르는 나라는 거의 없다. 자칫 ‘국가주의’로 비칠 수 있다는 게 그네들의 생각이다.

영화 를 보며 극의 소재인 스키점프에서 받은 인상은 그래서 묘했다. 영화명이 주는 국가주의의 엄숙함과 달리 스키점프는 그야말로 자유와 역동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스키점프는 1924년 제1회 샤모니 동계올림픽 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당시 안내서에는 스키점프를 ‘인간 새의 향연’이라고 부르고 ‘하늘을 나는 즐거움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이 하늘을 난 건 그로부터 74년이 지난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였다. 결과는 13위. 꼴찌였다.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 8위로 껑충 뛰어오르며 스키점프에 대한 관심을 불러모으긴 했다. 그러나 잠시였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다시 13위로 주춤하며 스키점프는 이윽고 모두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정부나 협회도 시큰둥했다.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처럼 메달 유력 종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08년 만난 협회의 한 관계자는 “1993년에 비해 스키점프 선수층이 3배가 늘었다”라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그래봤자 초·중·고·일반을 통틀어 12명이 전부였다. 지금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강원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가 틀어지면 언제나 폐기처분이 가능한 종목으로 비쳤던 스키점프. 그 스키점프가 지난해 엉뚱한 곳에서 재도약했다. 영화였다. 가 대성공을 거두며 덩달아 스키점프까지 유명해졌다. 거짓말처럼 대표팀 선수들이 차례로 직장을 얻고, 유수의 자동차 회사에서 후원자를 자처하고, 기자들이 달려들고, CF 제의가 들어왔다.

올림픽 유치 여부 따라 명운 오간 종목

그래서일까.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최흥철(29)·김현기(28)·최용직(28) 등 스키점프팀의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주변의 관심과 주목을 후대에까지 전달하려면 반드시 좋은 성적이 필요하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다. ‘태극전사’가 된 이상 올림픽은 더는 인류의 화합장이 아니라 ‘전쟁터’임을 그들은 누구보다 경험으로 체득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국가대표다. 자신이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메달 색깔로 표현하길 바라는 이 나라 체육 현실에서 그들은 부상 투혼을 발휘해서라도 더 멀리 날아야 한다.

얼마 전부터 체육계는 스키점프를 마치 아직 덜 익었지만 다 익으면 큰돈을 벌어줄 푸른 과일처럼 보기 시작했다. ‘메달 육성 종목’으로 기르겠다고 덤벼들기 일보 직전이다. 하지만 그러한 논리 가운데 어디에도 ‘하늘을 나는 즐거움과 자유를 만끽하자’라는 스키점프의 기본 이념은 없다. 스키점프 인프라 확충이나 동호인 증가를 위한 고민이 전혀 없는 이유다.

박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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