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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이 웃음거리를 놓치리오

등록 2008-08-01 00:00 수정 2020-05-03 04:25

1박2일팀 뒤로 ‘사수! 공영방송’, 무한도전의 ‘미친소’ 개그… 화면 가득 넘치는 MB풍자

▣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아무래도 시절이 수상하긴 수상한 모양이다. 현 정부 정책이 도마 위에 오르고 거침없이 난타당한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이 아닌, 웃고 떠들고 즐기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다. 물론 프로그램의 특성상 그 과정은 딱딱하거나 무겁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오징어를 씹으며 즐겨도 좋을 정도로 가볍고 경쾌하다. 정신없이 즐기다 보면 어느새 키득키득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정부 정책을 대놓고 ‘까대기’도 하고 사소하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배경이나 자막을 이용해 교묘하게 비꼬거나 풍자하기도 한다.

‘미국산 소 쓰러지듯’ 자막 작렬

7월20일 나간 한국방송 의 ‘1박2일’은 배경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오프닝 무대는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 앞. 여섯 명의 ‘1박2일’ 멤버가 백두산에 다녀온 후유증을 유쾌하게 풀어가기 시작한다.

“설사를 40번 정도 했어요. 작가 누나에게 전화를 해서 증상을 이야기했더니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야! 누나는 내일모레가 마흔인데, 기침하다 똥 쌌다.’ 알고 보니 제작진 반 이상이 배탈이 난 거였어요.”(은지원) “으하하하.”(일동)

이들의 이야기에 정신없이 웃다가도 멤버들 뒤로 보이는 본관 벽면의 걸개 현수막이 심상찮다. ‘사수! 공영방송’ ‘쟁취! 정치 독립적 사장 선임제’란 글귀가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정책에 반발한 한국방송 노조가 걸어놓은 것이다. 자칫 정치적으로 비쳐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카메라는 피하지 않고 여과 없이 화면에 담는다. 시청자가 좋아하는 멤버들 위로 보이는 구호. 어쩌면 예능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1박2일’은 말하지 않고도 할 말을 한 것인지 모른다.

문화방송의 은 ‘1박2일’보다는 좀더 직설적인 표현으로 정부 정책을 풍자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5월, 에는 집회 현장의 구호만큼 다양하고 재치 있는 자막이 등장했다. 노홍철이 “송아지가 꼬끼오, 병아리는 으음메”라고 노래하자 ‘미친 소’ ‘병든 닭’이라는 자막이 입혀졌고, 정준하가 기뻐 날뛰다 바닥에 넘어지자 ‘미국산 소 쓰러지듯’이라는 자막이 떴다. 또 “우리가 만든 동요가 히트를 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유재석에게 ‘그랬다간 바로 촛불시위’라고 응수한 자막이 등장했다. 특히 5월24일 방송의 경우 정준하가 정형돈의 도움으로 “기가(GB)가 메가(MB)보다 크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미국산 소 백스텝으로 쥐 잡은 격’과 같은 자막이 같이 등장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반면 ‘본격 태클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문화방송의 는 배경과 자막이란 간접적 방식이 아닌 직접적 방법으로 ‘태클’을 건다.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는 문구가 적힌 옷을 입고 나온 이하늘은 쇠고기 협상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얼리버드’여서 비몽사몽 잠이 덜 깬 상태라 그런 협상을 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김구라는 취임 100일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이 벌써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는 데 대해 “백일 된 아기가 고혈압, 당뇨 등의 온갖 성인병에 걸린 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예능은 예능일 뿐, 깔깔대며 봐주길

예능 프로그램에서 정부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프로그램 제작진은 대부분 의도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자제했다. 다만, 시사풍자를 즐겁고 유쾌하게 봐줄 것을 당부했다. 의 김유곤 프로듀서는 “예능 프로그램의 목적은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며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정색하고 볼 것이 아니라 깔깔대며 즐겁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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