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열등반 아이의 눈빛을 본 적 있습니까

등록 2008-04-25 00:00 수정 2020-05-03 04:25

경기도 비평준화 지역 고교 교사가 겪은 우열반과 강제 보충·야간학습의 현실

▣ 송승훈 남양주 광동고 교사 wintertree91@hanmail.net

“이제 우리도 기숙사 짓겠네.”

“우리 학생들은 거의 이 지역에서 다니는데 기숙사가 필요 없지 않아요?”

“모르는 소리 마. 건너편 학교는 기숙사를 지어서 학생들을 먹고 재우며 공부시킨다고 이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데.”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다음날 교무실에서 오고 간 이야기다. 자신이 당선되면 우리 학교에 기숙사를 짓도록 예산을 얻어오겠다고 한 후보가 당선되었기에 나온 말이다. 그 교사는 기숙사가 필요 없지만 학부모들이 그 필요 없는 것을 좋아하니, 우리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기숙사를 짓는 일에는 몇억원이 들어가기에 국가 예산이 그렇게 쓰여도 되는가 싶었지만, 그 교사는 상위권 학생이 대거 저쪽으로 가버릴 수 있어서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교사는 학생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사람이고 성실하게 글을 읽는 분이었다. 품격 있는 분이 그렇게 하시는 데 대해 나는 놀라고 마음이 상해서, 나도 모르게 “글을 읽어봐야 소용이 없군요” 하고 쏘아붙였다가 나중에 사과를 해야 했다.

갈수록 ‘특별대우’ 바라는 우수반 학생들

나는 경기도 비평준화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서울에서 평준화된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교사 생활은 경기도 변두리 비평준화 지역에서 죽 십년 넘게 했다. 요즘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를 자율화하겠다고 하면서 허용한 우열반과 0교시와 야간 보충수업을 나는 오래전에 다 겪어보았다.(교과부 발표 이후 시·도부교육감협의회에서는 우열반과 0교시 부활에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고 전해진다-편집자)

‘학교 자율화 정책’은 학교 사이에 경쟁을 시키면 학교들이 각자 애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모두 발전하게 된다는 생각에 바탕해 있다. 그러나 내가 지켜본 현실은 달랐다. 비평준화 지역에서 우리 학교는 인근 학교와 경쟁 중이어서, 학부모 여론에 늘 신경을 쓴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의 학부모에게는 더 신경을 쓴다. 때로 어느 학교에서는 돈으로 학생을 ‘매수’해 전학시켜서 데려오기도 하고, 그런 일을 성공(?)했다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언젠가는 건너편 학교에서 몰래 우열반을 만들어 운영하다가 누군가 교육청에 알려서 우열반이 없어지고 교장이 바뀌는 일이 있었다. 그 뒤에 학생들 일부가 수업을 거부하겠다고 옥신각신했는데, 시위를 한 학생들은 ‘열등반’ 학생들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우수반’ 학생들이 ‘우리가 어떻게 다른 아이들과 같은 대우를 받느냐’고 불만을 터뜨린 것이었다. 내가 있던 학교에서도 그랬다. 우열반이 있던 예전에, 그 우수반 학생들은 서울의 평준화된 학교에서 보통반만큼도 성적이 안 나오는 아이들이었지만, 그 학생들의 선민의식은 대단했다. 그 아이들은 때로 노골적으로 특별대우를 요구해서, 우수반을 이끄는 교사도 가끔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당시 고전 공부에 열심이던 보수적인 학자풍의 한 선생이 한 말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학생들이 입학할 때는 참 착한데, 왜 한 학년을 올라갈 때마다 눈빛이 점점 사나워지는지 모르겠어요.” 자신들이 따로 분류되었다는 낙인이 예민한 청소년기 학생들에게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는, 그 뒤에 열등반에서 일어난 몇 번의 끔찍하고 흉한 일로 증명이 되었다. 약한 아이를 한 학급 전체가 집단으로 돈을 뺏고 놀려먹던 일, 그래서 그 아이가 손목을 그었던 일, 담임교사가 학생들을 꾸짖었지만 그 열등반 학생들은 단체로 ‘우리보고 어쩌란 거예요’라는 표정으로 눈을 빤히 뜨고 쳐다보던 일이 있었다. 결국 논의 끝에 학교에서는 수년 동안 해오던 우열반을 없앴는데,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학생들이 거짓말처럼 순해졌다.

밤늦게까지 잡아놓을수록 ‘좋은 학교’

지역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한밤에 학교 불이 다 켜져 있으면 학교가 열심히 학생들을 잡아놓고 공부시킨다고 좋아한다. 특히 어머니들이 그렇다. 심하게 강제 보충수업을 시키고 강제 야간자율학습을 시키던 예전에도 학부모 모임에 가면, 우리 학교는 공부를 덜 시킨다고 동네 사람들이 꺼린다는 말을 듣곤 했다. 안타깝게도 학생들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잡아놓고 강제 공부를 심하게 시킬수록 그 학교는 지역사회에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다.

그 당시 강제학습을 무리하게 추진하던 교장 선생님도 다 알았다. 늦게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기를 원하는 학생은 공부를 하고, 그것을 원하지 않는 학생은 학교를 떠나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동네 사람들의 뒷말이었다.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합의가 되는 지점은, ‘원하는 사람은 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안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양쪽 모두 불만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가 학교에서는 동네사람들의 눈총 때문에 꽤 힘들다.

명색이 교육청 논술위원이라 교육청에 가서 논술 기획회의에 참여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던 중 장학사들이 한탄을 했다. “이렇게 좋은 연수를 마련해도 우리 선생님들은 보충과 야자(야간자율학습)에 치여서 잘 참여하지 않아요. 서울 선생님들은 수업만 하면 되지만, 우리는 상황이 달라 늘 참여가 저조해요.” 쉬는 시간에는 교사들이 수원 지역의 고등학교 발령을 피해가려는 현상에 대해 교장 선생들이 이야기를 했다. “수원에 있는 고등학교에 근무하면 정말 처녀 선생은 시집가기 어려워요. 언제 애인을 만나? 왜 이렇게 세상이 변했는지 모르겠어요.” 모두들 지금 상황이 정상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이 현실에 모두들 끌려간다.

“저 학교는 저렇게 열심히 많이 한다는데, 우리도 저래야 좋은 대학에 많이 가겠지.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지?” 이게 사람들 생각이다. 어느 한 학교가 무리한 방법이지만 지역 사람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어떤 일을 하면, 금방 다른 학교에서 그 방법을 따라잡으려 한다. 그 경쟁 속에서 나중에는 전체가 이상하게 된다. 개인이 고뇌 끝에 이 현실을 개선하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지역의 분위기에서는 안 된다. 교사와 학생이, 교장과 장학사도 다 이건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름대로 노력하는 사람조차 그 구조에 빠져들어간다.

구조 바꾸려면 공적 질서를 잡아야

그러기에 악순환을 멈추려면, 국가의 공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공적인 질서를 잡지 않으면, 보통 사람은 동네 사람들이 무서워서 이 이상한 경기에서 발을 빼지 못한다. 나는 한때 국가의 개입을 제어하면 착한 사람들이 힘 모아 좋은 세상을 이루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이기심이 얼마나 무섭고 기운이 센지를 알아간다. 국가의 조절능력, 국가의 역할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한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